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26)

출전 자격 획득 위한 첫 대회

매일 성실하게 훈련하다 보니 하루란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우리는 자격 경기에 출전하게 됐다. 처음 출전한 대회는 오스트리아 Salgen 지역에서 열린 CIC1* 경기였다. 대회 처녀 출전을 앞두고 전의가 불타올랐지만 마음을 다스리며 대회 당일이 되길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인가. 불타오르던 전의는 처음 XC코스를 답사하고 나서 완전히 상실됐다. 코스 답사를 하면 할수록 ‘이걸 말 타고 넘으라는 거야? 어떻게?’란 생각이 들었다. 장애물들은 울퉁불퉁한 곳이나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리막 한중간에는 넘어가지 말라는 듯이 장애물이 가로막고 서 있기까지도 했다. 움푹 들어간 커다란 물웅덩이 가운데에 장애물이 놓여있어 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코스 답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장애물들의 모습은 왜 그리도 무섭게 생겼는지 어떤 장애물은 소형차 티코 모양의 장애물도 있었다. 또 장애물 Take off지점과 Landing지점에는 왜 그리 크고 뾰족한 깨어진 돌이 많은지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도 나지만 말이 다칠까 봐 사실 더 많은 걱정이 됐다. 걱정스러운 상황을 코치에게 얘기할 수도 없었다. 경기에 출전한 모든 선수 누구도 웬만한 것 갖고는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만 불만을 토로할 수 없었다.

많은 기우와 걱정 속에서도 녀석과 난 두려움을 물리치며 차근차근 헤쳐 나갔다. 녀석은 날 가르치기라도 하겠단 듯이 신바람이 나서 어려운 장애물을 거침없이 넘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언덕 위 장애물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넘어주는 녀석에게 무한한 신뢰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난 8위를 기록했다. 처녀 출전치고는 꽤 좋은 성적이었다. 동시에 국제승마연맹(FEI)에서 정한 자격 요건 하나를 획득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하루가 짧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베이스캠프인 Stainburg에서 계속해 훈련에 임했다. 훈련시간에는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최대한 정신을 가다듬었고,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촬영한 비디오를 분석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이런 반복되는 생활이 결코 지루하거나 귀찮단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하루하루 흐르는 시간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녀석은 장애물과 크로스컨트리는 아주 강했다. 반면 녀석의 핏속에 아일랜드 서러브레드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걸음걸이가 우아하진 않았다. 이것이 녀석의 가장 큰 단점이었지만 보완하기 위해 과목에서 정한 정확한 지점에서의 자연스러운 실행에 중점을 두었다. 이행의 부드러움 그리고 수축과 신장이 신속하게 실행되도록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였다. 종합마술 종목에서 마장마술 과목의 평가 주안점은 말의 정확성과 복종성이다. 전문 마장마술 종목이 화려한 말의 움직임과 걸음걸이를 중요한 평가 요소로 여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난 녀석에게 이런 평가 기준을 체득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코스 이해력과 경기 운영 능력을 키워야 하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경기가 끝난 후 마장마술 심사지에 심판들의 Remark를 비디오와 비교해가면서 내 머릿속에 정확하고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마지막 실전훈련에서 1위 등극
이런 식으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고, 광저우로 향하기 바로 전 오스트리아 Milak 경찰학교에서 열린 CCI1*경기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얻었을 수 있었다. XC코스의 전장(길이)이 다른 경기에 비해 조금 더 길었고 소정 시간(감점을 받지 않게 정해진 시간)도 아주 짧았다. 난 광저우로 가기 전에 ‘토미’와의 마지막 실전훈련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경기 결과 시간 감점을 아주 조금 받았다. 그러나 날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XC경기에서는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만큼 XC경기는 쉽지 않았던 대회였다. 다음날 이어진 장애물 경기에서는 어렵지 않게 감점 없이 뛰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CCI1*에서 1위를 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종합마술이 그만큼 정체돼 있단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듯해 마냥 기쁘지만 않았다.

경기에서의 1등은 얼마 남지 않은 아시안게임을 앞둔 내게는 큰 자신감을 얻는 좋은 계기였다. 날 포함한 3명의 선수 모두 아시안게임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우리는 모든 훈련을 마치고 광저우로 가기 위해 우리의 캠프였던 Stainburg승마장 가족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우리를 친절하게 대해줬던 Stainburg승마장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먼저 코스에 대한 이해력과 경기운영 능력을 키워야 하겠단 생각을 했다. 경기 후 심판들의 마장마술 심사지 Remark를 비디오와 비교해가며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2010년 ‘토마스 오말리’와 독일 전지훈련 당시 모습.

말 검역소에서의 탐색
우리는 캠프를 떠나 아헨(Archen)으로 이동했다. 말 검역을 거친 후 광저우로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유럽지역에 있는 다른 나라의 모든 말이 아헨 승마전용 경기장에서 검역을 반드시 받아야만 했다. 우리는 여기서 10일가량 검역을 위해 머물렀고 다른 나라 선수와 말들을 분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다른 나라 선수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말 가운데 모든 메달이 나올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고, 그런 만큼 서로 경계하며 훈련을 했다. 가끔 전력 탐구라도 하려는 듯이 우리의 훈련 과정을 살펴보는 다른 나라 선수들의 모습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광저우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무서운 광저우 흡혈파리
유럽에서의 얻은 좋은 결과와 기억 그리고 충분한 연습은 내게 힘이 됐다.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난 절대 조급해하지 않았다. 광저우에 도착해서도 침착하게 훈련에 매진했다. 녀석은 서러브레드(Thoroughbred)의 피가 섞여 있어 ‘웜블러드’보다는 피부 접촉이 예민한 편이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광저우는 날씨가 무척 더웠고 파리들도 아주 많았다. 그것도 그냥 파리가 아닌 피를 빨아먹는 고약한 흡혈파리였다. 훈련의 어려움보다는 흡혈파리와의 전쟁이 더욱 문제였다. 훈련하기 전에 녀석의 피부에 파리약을 범벅이 되다시피 뿌렸다. 하지만 효과도 잠시뿐이었다.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토미’ 녀석이 땀을 흘리기 시작하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 놈 두 놈씩 달라붙기 시작했다. 뿌려놓은 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의 부드러운 피부만을 골라서 피를 빨아먹으려고 달려들었다. ‘토미’ 녀석은 파리에 비해 느리고 둔탁한 움직임이지만 흡혈파리를 쫓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목숨을 건 흡혈파리들의 괴롭힘에 훈련의 리듬은 중간중간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토미’ 녀석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말들도 같은 상황으로 많은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첫 경기인 마장마술 경기가 시작됐다. 마장마술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난 우리 KRA승마단 감독님에게 만약 마장마술 점수가 장애물 한 개 정도의 감점 차이만 나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제1 연습마장에서 준비운동을 하던 난 녀석의 좋은 움직임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리고 날 가르치던 마티아스 코치의 얼굴도 상기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제1 연습마장에서의 좋은 느낌을 유지하려고 마지막 연습장에서 준비 운동을 집중해서 마쳤다. 이제 모든 훈련은 끝났고 드디어 녀석과 함께 출전만 남았다. 잔뜩 긴장돼있는 경기장 안으로 천천히 입장했다. 준비운동 할 때 아주 좋았던 녀석은 경기장 안에 들어서자 조금 더 긴장한 듯했다. 이를 알아차리고는 흥분해있는 녀석을 최대한 부드럽게 달래가며 경기를 큰 실수 없이 마쳤다. 점수는 전체 5위의 성적이었다. 1위부터 3위까지가 나보다 장애물 감점 2개(10점 이상) 차이가 났다. 조금 실망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둘째 날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시작됐다. 난 우리 팀에서 마지막으로 경기에 출전했다. 장애물의 난도와 높이는 독일에서 출전한 대회보다 훨씬 쉬웠지만 긴장감은 훨씬 더 했다.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며 1번 장애물을 넘기 위해 다가갔다. 정신없이 달리고 넘다 보니 마지막 장애물을 넘고 감점 없이 완주했다. 긴장한 탓이었는지 두서너 번 실수를 했지만 녀석은 대회의 중요성을 알기나 한 듯 내 실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날 도와줬다. 둘째 날 경기 후에 상위 5명의 선수의 성적에는 변화가 없었다. 모두 감점 없이 완주를 했다.

▲‘토미’ 녀석의 도움으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토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열정을 보여줌으로 내게 큰 가르침을 줬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획득 당시 모습.

마지막 장애물 경기가 열리는 날 아침 일찍부터 마체검사(Horse inspection)를 했다. 마체검사에서 나보다 상위에 있는 말 가운데 한 마리라도 떨어져 줬으면 하는 비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모든 마체검사가 끝나고 드디어 진검승부만을 남겨뒀다. 마체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녀석은 연이틀 이어진 긴장과 격렬한 경기 때문이었는지 조금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장애물 경기에서만큼은 녀석을 무한신뢰하고 있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는 다른 대회와는 다르게 장애물 경기를 2회에 걸쳐 치렀다. 크로스컨트리와 장애물에 강한 녀석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종합마술 말들에게 마지막 날 치러지는 장애물경기는 꽤 부담스러운 경기이다. 전날 XC코스로 피곤이 쌓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격렬한 일전을 치렀기 때문에 몸 이곳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말이 대부분이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날 1회전 경기에서 내 위에 랭크돼 있던 두 명의 선수가 장애물을 낙하시켜 내 뒤로 밀려났다. 난 1회전에서 녀석의 도움으로 무감점을 기록해 3위까지 올라섰다. 장애물 경기는 성적순으로 순번이 정해지기 때문에 1위와 2위를 남겨두고 먼저 경기에 나섰다. 녀석이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해 다행히 무감점을 기록했다. 이후 남은 두 선수의 결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2위를 하던 일본 선수가 1번 장애물을 넘으면서 작은 실수로 장애물을 낙하시켰다. 덕분에 난 2위로 올라서는 행운을 얻었다. 은메달이 확보되던 순간이었다. 같이 있던 동료들과 코치 그리고 협회 관계자 모두는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1위 선수가 실수하기를 바라며 경기를 숨죽이며 지켜봤다. 그 선수는 침착하게 무감점으로 장애물을 넘었고 내 행운은 은메달에서 멈췄다. 하지만 긴 여정을 마치며 부둥켜안고 눈물을 보이기까지 한 뭉클한 순간이기도 했다.

‘토미’ 선생의 가르침
‘토미’ 녀석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열정을 내게 보여줌으로 내게 큰 가르침을 줬다. 지금도 녀석은 나와 같이 생활하며 내가 아닌 우리 팀의 다른 선수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녀석. 녀석의 숨결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기억될 것이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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