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영 학생의 꿈은 10년 안에 한국기수 최초로 미국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기수가 되는 것이다. 파트너 ‘럭키스피드’와 함께.
대중에게 진솔한 승마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국마사회는 올해 ‘유소년승마사례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공모 결과 최우수상부터 장려상까지 총 19편이 선정됐습니다. 은 19편을 연재합니다. 그 열네 번째 순서로 우수상을 받은 유준영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 학생의 ‘나의 행운의 럭키스피드’를 소개합니다. 수상자들에게 축하와 함께 한국마사회 말산업진흥처에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편집자 주

“고등학교 진학 고민 하던 중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
힘든 학교생활 하면서
‘럭키스피드’를 만나 꿈이 생기다.”

여느 남자 중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축구와 게임을 좋아하고 공부를 싫어하던 나도 고등학교 진학 문제가 닥쳐오자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머니께서는 “지리산 밑에 있는 기숙사 학교에 한번 가볼래?”라고 제안하셨지만, 그 말이 귀에 쏙 들어오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나에게 기숙사라는 단어는 꽉 막혀있는 다른 세계의 공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러 인문계 고등학교를 알아보고 고민하던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그럭저럭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그리고 어느 대학교를 성적에 맞춰 들어간 후, 국방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를 다녀온다.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까?’

군대 다녀온 이후의 내 삶은 꽉 막혀 있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꿈이 뭐지?’ 매일 아침 일어나 학교 가고, 수업시간에 졸기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체육 시간에는 축구공을 쫓아 뛰어다니고, 방과 후에는 피시방에 용돈을 소비하는 평범한 중학생. ‘모두가 Yes라고 외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라는 인상 깊었던 광고 문구가 내 머리 위로 흘러갔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던 나는 결국 모두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 밤 나는 잠이 들지 못하고 혼자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매우 흥미로웠다. 지리산에 위치한 그 학교는 말(馬)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학교였다. 동물원에서 구경한 말이 전부였던 나에게 말이라는 동물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동물이었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 동물을 좋아하고, 운동을 즐기며, 친구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말과 친해지고 승마를 배운다면 좋지 않겠냐’는 말씀이었다.

가슴 속에 호기심이 일었다. 어머니의 말씀대로라면 그 학교는 정말 나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전날과는 달리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조금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고 말씀드렸다. 친구들은 하나둘 진학할 고등학교를 선택했고, 그럴수록 부담감은 커졌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계속해서 고민해도 쉽게 결정 나질 않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나는 부모님께 늦둥이이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대화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아버지의 고지식함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철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아버지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다. 그날만큼은 철없던 나에게도 소중한 아들의 미래를 위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고, “너는 나중에 뭘 하고 싶니?”라고 물어봐 주시는 아버지에게 나의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을 정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아버지는 점점 나이를 먹고, 네 친구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너를 오래 돌봐줄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연세가 내 또래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곁에 부모님이 안 계실 수 있다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부모님께 잘해드릴 시간이 친구들보다 많지 않다는 말이었다.

이야기의 결론은 없었다. 그러나 이 짧은 대화 끝에 나는 작은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한 후 서류전형과 면접전형을 거쳤다. 합격자 발표를 보는 순간 왠지 눈물이 났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던 유준영 학생은 ‘말과 친해지고 승마를 배운다면 좋지 않겠냐’는 어머니 말씀에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에 진학을 결심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해 새벽형 인간이 돼 6시부터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생활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동물을 많이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기 때문에 말 타는 것은 마냥 재미있을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말은 겁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히 다루고 아껴줘야 했다. 그런 말을 타는 것이 무섭고 두려워 말을 타는 시간에 꾀병을 부리고 보건실에서 쉬기도 했다. 이런 고민을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자신을 다독여보려고 했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돼 전학을 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집 주위 인문계고등학교로의 전학을 알아봐 주셨지만 자리가 없었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와 통화를 하며 펑펑 울기도 했다.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자괴감이 커질 때쯤 담임선생님께서 상담을 요청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요즘 힘든 일이 있냐’고 물으셨다. 학교생활이 나의 생활방식과 너무 맞지 않아서 너무 지치고 의욕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기수’라는 직업을 추천해주셨다. 160cm 초반의 키에 살이 찌지 않는 체형, 50kg을 넘어본 적 없는 마른 체형은 기수에게 제격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기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말을 타고 매우 빠르게 달리면서 경쟁하는 역동적 직업인 기수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왠지 매력을 느꼈고, 이제 이것이 나의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의 꿈을 가지고 돌아오는 조마삭 수업에서 나와 ‘럭키스피드’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럭키스피드는 뒷발질이 심해 채찍을 맞으면서도 다시 뒷발을 차는 축벽이 심한 말이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말을 잘 타는 친구들에게만 이 말을 태우셨다. 원운동 하는 럭키스피드를 보면서 저 말만은 절대 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학교생활이 너무 지치고 의욕이 없을 때 선생님은 유준영 학생에게 ‘기수’라는 직업을 추천해줬다. 기수의 꿈을 가지고 악벽마인 ‘럭키스피드’를 만나 유준영 학생의 든든한 친구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2학년이 되고 첫 마술학 수업에서 나는 ‘럭키스피드’를 배정받았다.

말에 올라타기 전부터 매우 긴장됐다. 1학년 때 럭키스피드에 타고 있던 친구가 말의 뒷발질 때문에 떨어지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겁도 났다.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조금 부끄럽지만 ‘이 말만은 못 타겠다고 말을 할까’ 생각했지만, 이미 말 위에 올라탄 후였다.

잘 타보겠다는 마음이 과했는지 몸이 너무 경직됐고 고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예민한 동물인 럭키스피드는 바로 이런 기운을 알아채 흥분했고, 말 탄 지 10분도 되지 않아 뒷발을 차는 동시에 나는 낙마를 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화가 나지도 않았다. 낙마를 한 날 저녁에 럭키스피드 마방에 가서 럭키스피드 앞에 쪼그려 앉아서 한참을 쳐다봤더니 럭키스피드가 내게 다가와 얼굴을 비볐다. 여태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올라왔다. 내 인생을 바꾼 낙마였다.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나는 매일 마술학 시간마다 선생님께 부탁드려 다른 친구들보다 럭키스피드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매일 방과 후에 찾아가서 손질해주고, 사료도 조금 더 주고, 말을 탈 때는 제일 뒤에 위치시켜 천천히 한 계단씩 함께 호흡을 맞추기 위해 나아갔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유별나게 말을 잘 타는 편도 아니었고 1학년 때는 오히려 말타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들지 않았다. 처음 내가 힘들었던 것은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지 수업에서 나는 큰 기대를 안고 럭키스피드를 장안하고 기승했다. 그런데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컨트롤을 잘하지 못했는지 럭키스피드의 뒷발질이 매우 심했고, 10분 동안 세 번이나 낙마했다. 나는 말을 컨트롤해야한다는 마음 하나로 럭키스피드의 엉덩이에 세게 채찍질을 했다. 럭키스피드도 계속 반항을 했지만 힘이 빠졌는지 괜찮아졌다.

그 날 저녁, 럭키스피드 마방에 다시 찾아갔다. 럭키스피드 엉덩이가 채찍 자국 그대로 부어있었다. 나는 그 채찍 자국을 보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분명 말에 탄 나의 능력이 부족했을 텐데 말에게 화를 낸 것 같아 창피했다.

그 날 이후로 지시, 훈육, 칭찬의 목적 외에는 채찍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나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말을 탔고, 점점 낙마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내 실력이 어느 정도 향상됐을 무렵 럭키스피드와 나의 호흡은 찰떡궁합이었다. 기수가 돼서 말을 조련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기수가 돼 내가 길들인 말과 함께 우승하는 상상을 하며 내 꿈을 더욱 키웠다.

체중 조절과 체력 단련에 힘쓰면서 주말마다 장수 육성목장에 찾아가 럭키스피드 보다 더한 악벽마 혹은 망아지를 타며 경주마술을 배웠다. 기수교육원의 선배에게 경주마술을 배울 때도 나는 럭키스피드만 고집했고, 경주마술 실력이 늘어서 학교 실내마장 시공행사 때 대표로 발탁도 됐을 때도 나는 선생님에게 말씀드려 럭키스피드를 탔다. 지금껏 나는 무엇인가 하나에 몰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럭키스피드를 만나 순치시키고 함께 운동하면서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힘들었을 때 부모님과 담임선생님, 친구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내 꿈을 정할 수 있게 도와주고, 앞으로 내 인생의 방향을 잡아준 일등공신은 역시 럭키스피드였다.

지금도 나는 자라고 있으며 변하고 있다. 그리고 럭키스피드는 그 모든 순간에 내 옆을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이자 지원자다. 다른 말들을 만나 함께 달리게 된다고 해도 나의 꿈과 함께 성장해준 럭키스피드와의 시간은 항상 마음속에 남아 ‘나에게 무엇보다도 큰 힘이 돼주지 않을까?’ 럭키스피드와 만남으로 나는 목표를 세우고 그를 위해 달리면서 행복해졌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꿈을 향해 달리고 있고, ‘기수’라는 목표를 세운 것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 나에겐 헤맬 시간은 지났고 해낼 시간만 남았다. 나는 꼭 10년 안에 한국기수 최초로 미국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기수가 될 것이다. 지금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의 파트너 럭키스피드와 함께.


▲유준영 학생의 꿈은 10년 안에 한국기수 최초로 미국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기수가 되는 것이다. 파트너 ‘럭키스피드’와 함께.

교정·교열= 박수민 기자 horse_zzang@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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