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현 학생은 자신의 터전인 구미에서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 꿈을 꼭 이룰 것이라고 한다.
대중에게 진솔한 승마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국마사회는 올해 ‘유소년승마사례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공모 결과 최우수상부터 장려상까지 총 19편이 선정됐습니다. 은 19편을 연재합니다. 그 열여섯 번째 순서로 경상북도지사상을 받은 이시현 도개고등학교 학생의 ‘나는 당신과 함께 할 때 행복합니다’를 소개합니다. 수상자들에게 축하와 함께 한국마사회 말산업진흥처에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편집자 주

“6학년 때 우연히 승마체험을 한 후
취미로 승마 시작.
장애물 경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합도 출전해
승마에 대한 자신감과 행복을 느꼈다.”

경상북도 구미에서 말을 타고 있는 나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시현’이다.

평소 일기도 잘 안 쓰는 편인데 대한승마협회 선수 등록을 하다가 우연히 ‘승마 사례 공모전’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글을 쓰게 됐다. 이 글을 쓰게 된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승마를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훈련을 해왔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해 볼 수 있을 거 같아서다.

내가 처음 말을 타게 됐던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여행에서 체험승마를 하게 됐는데 ‘처음 말을 타본 기분은 뭐랄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좋았고 나에겐 완전 신세계’였다. 제주도를 다녀온 뒤부터 부모님께 평소 하지도 않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핑계 대면서 말 탈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 한참을 고민하시던 부모님께서는 결국 나의 성화에 못 이겨 근처에 있는 승마장에 주말반으로 말을 탈 수 있도록 등록을 해주셨다.

드디어 처음으로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던 때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께서 학원이나 뭘 하라는 것만 대충 건성으로 하고 공부를 아주 하기 싫어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렇게 난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때부터 취미로 말을 타기 시작했다.

처음엔 평보로도 말을 잘 보내지 못했고 말발굽에 왜 편자를 하는 지조차도 모를 정도로 말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 초짜였다. 말은 잘 못 탔지만 원래 동물을 좋아하던 나는 말이 너무 좋았다. 말이 내 몸 냄새를 맡으며 침 발라도 좋았고 남들은 말똥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는데 난 그 냄새도 향기로 느껴졌다. 점점 더 잘 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승마장 코치님들이 타는 걸 지켜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잘 탈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제주도여행에서 체험승마로 처음 말을 타게 된 이시현 학생. 이시현 학생은 제주도를 다녀온 뒤 부모님께 말 탈 수 있게 부탁하고 주말반으로 승마를 시작하게 됐다.

어느 날 코치님들 사이에 학생선수라면서 말을 잘 타는 형이 한 명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형은 중2인데 장애물 대회도 몇 번이나 나가 입상도 했다고 했다. 장애물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80cm 장애물을 하나 넘는 것도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었다. 중학교 2학년밖에 안 됐는데, 그런 형이 부러웠고 형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 형에게 말을 걸고 인사도 하면서 지내다 어느 날 형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나도 형처럼 말을 잘 타서 선수를 해보고 싶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땐 진심 반 장난 반이었는데 말을 계속 타다 보니 정말 승마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장애물 레슨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원하면 늘 들어주던 부모님이라서 쉽게 장애물 레슨을 허락해 주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단호하게 반대하셨다. 부모님께서 “장애물을 시작하면 시간과 경비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위험해서 취미가 아닌 진로로 결정해야 하는 거다”라고 반대의 이유를 설명하셨다.

하지만 난 확신이 있었다. 내가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생겼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나의 확고한 생각에 결국 부모님께서는 허락하셨고 매일 말을 타면서 장애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냥 취미로만 배우던 것과 달리 말을 더 이해하고 말과 호흡을 맞춘다는 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말과 함께 뛰고 장애물을 넘을 때 벅찬 행복감을 느꼈다. 방학 때는 승마장에서 형과 함께 저녁까지 말을 타고 늦은 저녁밥을 함께 먹으며 말에 관해 이야기도 나누면서 재미있게 보냈다. 훈련이 마음처럼 잘 안 될 때는 서로 위로해주고 때론 형이 선생님처럼 날 혼낼 때도 있었고 가르칠 때도 있었다.

그런 형의 꿈은 승마국가대표였다. 난 그때까지 꿈이 없었다. 뚜렷한 목표가 있고 꿈이 있는 형이 부럽기만 했고 또 꿈이 국가대표여서 더 부러웠다. 그에 비해 나는 공부도 못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거라면 ‘이제 겨우 장애물 60cm, 80cm 넘는 걸음마 하는 정도랄까.’ 그런 내가 ‘나도 이제 꿈 정도는 있어야지’ 생각하고 승마를 통해 내 꿈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좋은 것도 잠시 그렇게 말을 잘 타던 형이 어느 날 갑자기 “승마를 포기하고 공부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내 모든 기대와 꿈이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형이 없는 승마장에서 혼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형의 얘기를 들어보니 “집안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고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갈 길이 너무 힘들어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승마가 비용이 많이 드는 건 어른들께 들어서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이유로 형이 승마를 그만둔다고 하니 덜컥 겁났다. 혹시 ‘언젠가 나도 형처럼 승마를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초심을 잃어가며 방과 후 매일 타던 말을 주말만 탔다.

승마에 의욕을 점점 잃어 가고 있던 즈음, 승마장 원장님의 권유로 생활체육 시합을 나가기 시작했다. 대회에서 입상을 몇 번 하고 다시 승마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 반년쯤 지났나…. 나의 롤 모델이었던 형이 다시 승마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형과 연락을 하게 됐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말을 잘 타고 있는 형에게 처음엔 화내고 싶었다. 나랑 승마로 성공해보자고 할 땐 언제고 갑자기 포기하겠다했으니 말이다. 한편으론 다시 시작했다니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나는 승마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열심히 훈련하다 보니 내게 너무나 큰 영광스러운 기회가 생겼다. 전국소년체육대회에 경북 대표로 선발되고 유소년국가대표 선발전 같은 큰 대회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대회에서 비록 입상은 못해 아쉬웠지만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본격적인 선수 생활하면서 나는 하루에 말을 보통 세 마리, 많으면 다섯 마리를 탔다. 승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보기엔 “말 다섯 마리 타는 게 뭐 대수냐”, “말안장에 앉아있는 게 느긋해 보이고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집중력과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들다. 체력의 한계도 느껴봤고 햇빛 쨍쨍한 여름엔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마방을 치우기도 했다. 말을 타면서 어른에 대한 예의를 배워가며 조금씩 사회생활에 발걸음을 디디고 있는 것 같았다. “운동선수는 운동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마음가짐도 남달라야 하고 예의도 깍듯이 지켜야하고 무엇보다 공부도 하면서 운동해야 하니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지치면 포기할 수도 있으니 정신력이 강해야 한다”고 아빠는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는 많은 것을 배워 나갔다. 중학교 3학년 중반까지 열심히 경기를 나갔고 입상하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후반이 됐을 때 엘리트 입문을 위해 D 클래스 이상 대회를 나가야 하는데 내가 있는 승마장의 말로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침 승마를 다시 시작한 형이 자기가 있는 승마장으로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다. 형이 있는 승마장에는 전국체전에 뛰었던 말과 좋은 말들이 있어 승마하면서 배울 것이 아주 많은 곳이라고 했다. 또, 승마장에 선수가 형뿐이고 마침 승마장 원장님께서 내가 간다는 걸 허락하였다고도 했다. 그 순간 하늘이 날 돕고 있는 것 같았다.


▲코치님의 권유로 생활체육 시합을 나가고 입상했다. 전국소년체육대회에 구미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이시현 학생은 국가대표인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형이 있는 승마장에 가서 말을 타보고 테스트도 받았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원장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장애물을 넘었다. 처음 넘어본 높은 장애물을 넘는 순간, 나는 말을 타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짜릿함을 느꼈으며 ‘하늘을 나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했다. 정말 그날은 온종일 멍했다. 이렇게 멋진 말을 타보고 난 운이 너무 좋다는 생각과 함께 말을 더 열심히 타야겠다는 다짐했다.

테스트받은 날, 원장님께서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꿈도 마치 형과 같이 승마국가대표가 되는 게 꿈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땐 그 꿈을 말하기엔 부끄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국가대표가 꿈이라고 말할걸’이란 생각이 든다.

그 후 나는 형이 있는 승마장으로 옮겨 첫 번째 경기를 내가 테스트 받은 말로 번외경기를 뛰었다. 갑자기 클래스도 올라가고 말과 호흡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상태로 경기를 나가서인지 결과는 완전 엉망이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음 시합을 목표로 연습을 더욱 열심히 했다. 그러다 두 번째 경기에서 당당히 입상했고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다음 시합에서도 ‘꼭 입상하겠다’고 마음먹으며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한 결과 운 좋게도 경기 나갈 때마다 입상했다.

경기를 치르는 동안 진짜 나의 ‘말’이 생겼다. 그동안 승마장 말로만 훈련받고 시합을 나가다가 내 말과 호흡을 맞추게 된 것이다. 작년 마지막 경기 추계전국승마대회에서 D 클래스 국산마 통합 1위로 경기를 끝냈다. 참 뿌듯한 한해였다. 엘리트 승마의 첫 관문인 D 클래스를 나의 파트너와 함께 승리의 자리에 올라 기쁨이 더 컸다. 한 단계 한 단계 오를 때마다 훈련이 많이 부족하다. 나 혼자만 즐겁고 행복한 게 아니라 나를 진정한 친구로 아는 ‘말’ 또한 즐거운 감정으로 자신 있게 장애물에 접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말에게 사랑을 주고 소통하는 법, 말 건강관리를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이 아주 많다.

지금은 승마장에 대학생이 된 나의 롤 모델 형, 다른 지역에서 훈련받다가 온 고등학생인 형,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동생도 생겼다. 우리는 승마장에서 함께 훈련하며 힘든 것도 즐거움도 모든 것을 함께 한다. 겨울방학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하면서 추위에 참 고생도 많았지만 가족과 함께 합숙하면서 행복하기도 했다. 때로는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고 나에게 엄청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나에게 승마란 ‘꿈이고 나도 무언가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다준 신이 내려준 내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내 주위에 친구들은 나를 보고 ‘꿈이 있어서 좋겠다’고 승마하면서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한다. 아직은 갈 길이 멀겠지만 나는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 승마선수가 되려면 지방에 머물지 않고 서울이나 경기도로 올라가서 훈련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가족과 학교와 내 터전인 구미에서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 언제 내가 국가대표가 될지 잘 모르겠지만 진짜 정말 열심히 해서 내 꿈을 꼭 이룰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꿈을 키워 나갈 수 있게 옆에서 묵묵히 나를 응원해주시는 사랑하는 부모님, 아들처럼 너무나 예뻐해 주시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원해주시는 승마장 원장님께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정말 내 진정한 목표는 내 롤 모델인 형과 정상에서 만나 함께 경기해 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말이 주는 기쁨과 만족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산다. 힘들 때 서로 힘이 돼주고 웃음을 함께 나누는 내 동료이자 선의의 경쟁자인 형들과 함께 국가대표가 되는 그 날까지 이시현 화이팅!!


▲이시현 학생은 자신의 터전인 구미에서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 꿈을 꼭 이룰 것이라고 한다.

교정·교열= 박수민 기자 horse_zzang@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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