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Dear My Classicgirl’

Classic Girl(이하 CG)을 훈련시키기로 결심하자 난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CG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찾아 차근차근 훈련 준비를 해나갔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빠른 시일 내에 CG의 건강을 되찾게 하는 일이었다. 힘든 훈련을 견디어 내려면 무엇보다도 CG의 건강 회복이 급선무였다.

사료 급식의 변화
우선 뼈만 앙상하게 남아 볼품없는 몰골을 하고 있는 CG를 살찌워야 했다. 다행히 렛츠런승마단의 말들은 전문화된 양질의 사료를 급식하고 각종 미네랄, 필수 영양제, 특수 영양제를 다량 공급해 사료급식으로는 부족한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 등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었다. CG에게는 단순히 열량 높은 사료보다는 지방과 단백질 함량이 풍부한 사료로 급식했다. 또 조사료에 단백질이 풍부한 알팔파(Alfalfa)를 적당히 가미해 티머시(Timothy)와 함께 급식했다. 알팔파(Alfalfa)는 말들에게 기호성이 높아 이를 급하게 섭취하다가 종종 소화불량에 걸리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알팔파(Alfalfa) 급식은 하루 한 끼로 제한을 두었고, 급식량도 2주 주기로 점차 양을 늘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소화불량에 대비했다.

사료 급식 체계를 바꾸자 얼마 되지 않자 CG는 조금씩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운동체계도 완전히 180도 바꿔서 매일 훈련을 했다. 그래도 내가 기승하면 자칫 나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훈련 준비가 채 갖추어지지 않은 CG에게 무리를 시킬 것 같아 한동안은 선수단 양성선수들에게 기승을 시켰다. 물론 틈나는 대로 CG를 관찰할 겸 학생들이 운동하는 걸 지도해 주기도 했다.

전통적인 치료법
두 번째로 해결해야 할 것은 봉와직염 후유증으로 인해 양 뒷다리가 딱딱하게 굳어 만성화된 부종을 가라앉히는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부종으로 인한 뒷다리의 파행은 없었다. 그러나 CG가 불편해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었다. 이를 고치기 위해 꾸준히 치료했지만 특별하게 이를 치료해줄 수 있는 약물치료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마장마술을 잘한다고 해도 경기에 참가할 수가 없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치료를 해서 온전한 다리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만 했다.

치료는 간단한 방법부터 시작했다. 운동을 마치면 깨끗이 물로 수장하고 볕에서 다리를 바짝 말려줬다. 저녁에 퇴근하기 전에는 알로에 성분이 들어가 있는 소염제를 발라 마사지를 충분히 해주고, 10분가량 지난 후에는 면 패드로 먼저 다리와 발목까지 감싼 후에 붕대를 발목까지 밤새 감아놓았다. 전통적으로 이용되던 방법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아주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처치해놓고 다음 날 아침 붕대를 풀어보면 다리의 부종이 아주 많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붕대를 너무 세게 감으면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아서 부종이 붕대를 감은 다리 위쪽으로 생기기 때문에 적당한 세기로 이를 감아야 했다. 주의해야 할 사항은 물로 다리를 씻은 후에 볕에 완벽하게 물기가 없도록 말려야 하고, 소염제를 뿌린 후 충분히 마른 상태에서 붕대를 감아줘야 자칫 생길 수 있는 피부병을 예방할 수 있다.
올바르고 꾸준한 훈련
세 번째로 한 일은 불뚝 튀어나온 커다란 배에 복근이 생기도록 하는 일이었다. 사람도 가장 관리하기 어려운 부분이 복부지방인데 말도 그런 것 같다. 이때부터는 내가 직접 기승하기 시작했다. 기승 초기에는 불뚝 나온 배와 상관없이 균형 잡힌 체형을 위해서는 살이 붙게 해야 했기 때문에 늘린 사료량은 한동안 유지하였다. 대신 운동량을 점차로 늘려가며 균형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운동은 강하게 시키지 않았고 약하고 길게 운동을 시켰다. 특히 본 운동 전후에 평보를 30분 이상씩 충분히 해 운동시간을 조절했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운동시간과 강도를 높였다. 이렇게 하자 CG의 체형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어느 즈음부터 운동하고 있던 CG를 보며 사람들이 예쁘게 생겼다는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CG 체형이 내가 만족스러울 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예쁘게 생겼다는 사실만은 자신할 수 있다. 현재도 계속 체형 가꾸기를 하고 있고 꾸준히 노력한 만큼 많은 발전이 있었다.

살을 찌우기 위해 하던 급식 체계에서 열량이 높은 급식으로 바꿨고, 올바른 운동으로 적절한 근육이 생겨 아름다운 체형으로 변해가고 있다. 올바른 근육 형성과 이로 인한 아름다운 체형은 훌륭한 걸음걸이의 원천이 되며, 여러 근육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힘든 Passage나 Piaffe를 만들어낸다. 물론 마장마술 말들의 아름다운 걸음걸이는 선천적인 영향이 크다. 그렇지만 선천적으로 뛰어나지 않더라도 후천적으로 꾸준히 연습하고 올바른 훈련을 시켜 훌륭한 근육들을 만들면 최고 난도의 마장마술 동작도 소화할 수 있다.
CG를 가르치면서 너무나 자주 실수를 했던 것은 과도한 부조와 채찍의 사용이다. CG가 체력적으로 미처 준비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고 잘못 판단해 어려운 동작을 시키기 위해 부조와 채찍을 과도하게 사용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과욕이고 학대로 비쳤을 수도 있는 일이다. 늦었지만 깊이 반성하고 있다. 고난도의 동작은 욕심만 부린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올바르고 꾸준한 훈련을 통해 말이 신체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준비가 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말에게 정확한 동작을 시키기 위해서는 그 동작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도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훈련이든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점이다.

▲마장마술 말들의 아름다운 걸음걸이는 선척적인 영향이 크다. 그러나 후천적으로 올바른 훈련으로 꾸준히 연습한다면 최고 난도의 마장마술 동작도 소화할 수 있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CG와 인연을 맺어진 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좀 더 속속들이 알기를 원했다. 나는 CG의 능력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했고, CG도 아마도 나의 기승 능력과 자신에 대한 애정의 정도가 궁금했을 것이다. 이렇듯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인연이 지속되고 있지만 서로 탐색하는 속된 말로 밀고 당기는 기(氣) 싸움은 상당했다. 종종 일어나는 싸움은 내가 승리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백기를 들어야 하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 우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마장마술의 기본적인 기술만을 읽히고 있었던 터라 이러한 ‘밀당’은 CG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됐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이기적인 생각이었고 나를 상대해야 했던 CG에게는 소리 없이 쌓여가는 눈처럼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다가간 듯했다.

평보(Walk)
CG의 평보 하는 모습을 보면 녀석의 성격이 어떤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처음 마방에서 마장으로 나와 운동을 하려고 자유 평보를 하면 마치 약속 시간에 늦은 사람처럼 급하게 걸어가다가 금방이라도 몇 걸음 달리고 또 빨리 걷기를 반복하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급하게 걷는다. 나는 음성을 사용해 천천히 걸어가라고 말을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끝내 고삐를 짧게 잡아당겨야만 조금 천천히 간다. 특히 자유 평보를 하다가 고삐를 짧게 잡으려고 하면 CG는 항상 속보를 서너 걸음 한다. 이때에도 고삐를 당기지 않고 스스로 평보하기를 기다리면 결코 평보를 하지 않고 속보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끝내는 구보를 하게 된다.

나는 매일 같이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고, 짧게 잡는 고삐의 길이를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조절해야 했다. 고삐를 짧게 잡고 평보를 하면 언제나 고삐의 연결이 강하게 이뤄지고, 그 고삐의 연결은 다른 말들과는 다르게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었다. 좌우로 Bending을 많이 해서 양보를 받으려고 하지만 절대 양보를 하지 않는다. 특히 왼쪽 입으로 앙다물어 꽉 물고 있는 재갈은 더욱 강하게 긴장되어 있으며, 언제나 재갈에 강하게 의지해 걸어 다닌다. 나는 이 시간이 되면 마음이 답답해졌고 서서히 달아오르는 혈압을 조절하느라 심호흡을 여러 번 해야만 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평보의 걸음이 좋을 리가 없었다.

나는 이런 불안정한 평보를 고치기 위해 먼저 고삐의 연결을 최대한 부드럽게 하거나 온 더 비트(On the bit; 말 입에 연결된 고삐를 잡았을때 말의 콧등이 수직선상에 오도록 말이 양보한 모양) 상태를 유지해가며 고삐의 연결을 가능한 많이 풀어줬다. 마치 신장 평보와 자유 평보가 혼용된 모습을 연상시키는 연결을 유지해 평보를 시키도록 노력한 것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CG의 평보는 고쳐지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더욱 많이 연구하고 훈련에 매진한다면 반드시 좋아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평보(Walk) - 말의 네 다리가 한 다리씩 차례로 착지하는 4절도 운동. 착지 시 보폭과 다리 관절 굴절 정도에 따라 △보통 평보(Ordinary Walk) △중간 평보(Medium Walk) △수축 평보(Collected Walk) △신장 평보(Extended Walk) △자유 평보(Free Walk) 등으로 나뉜다.

속보(Trot) - 말의 대각선 앞 뒷다리가 대칭적으로 교대해 움직이는 2절도 운동. △수축 속보(Collected trot) △보통 속보(Working trot) △중간 속보(Medium trot) △신장 속보(Extended trot) 등으로 나뉜다.

구보(Canter) - 승마에서 가장 빠른 보법으로 3절도로 이뤄진 걸음. 네 다리가 동시에 공중 뜨는 순간 앞으로 나간다. 추진 정도에 따라 △수축 구보(Collected canter) △보통 구보(Working canter) △중간 구보(Medium canter) △신장 구보(Extended canter) 등으로 나뉜다.


▲33년이 넘게 말을 타는 전재식 감독은 아직도 말과 함께 훈련할 생각을 하면 설렌다고 한다.

교정교열 =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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