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Dear My Classicgirl’

속보(Trot)
CG(Classic Girl, 이하 CG)와 만나 호흡을 맞추던 초기 시절에는 조금 더 자세히 CG를 살펴보기 위한 목적으로 한동안 학생 선수들을 기승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직접 기승한 후부터는 오랜 시간동안 나와 CG간의 팽팽한 기 싸움이 지속됐다. CG의 속보 모습이 지금은 적지 않은 Cadence가 훈련으로 다져져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그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마장마술의 기본이 되는 요소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무엇보다 말의 아름다운 걸음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속보는 마장마술 과목 중에 제일 화려함을 뽐낼 수 있는 보법이라 많은 선수가 아름다운 속보를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이다.

아름다운 속보를 위해 필요한 요소들
Cadence
아름다운 속보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그중에서 가장 우선을 꼽자면 Cadence일 것이다. 사전에서 Cadence를 찾아보면 ‘율동적 흐름’이라고 쓰여 있다. 이는 다시 ‘율동적 움직임’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는데 이때 말의 움직임을 자세히 묘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엉덩이의 모든 근육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며, 네다리의 움직임은 경쾌해야 한다. 마치 발굽이 땅에 딛고 있는 시간보다 공중에 머물러있는 시간이 더 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쾌활해 보여야 한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기분이 좋아 신나면 Two Step으로 껑충껑충 뛰던 걸음걸이를 상상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Elevate step
아름다운 속보를 위한 두 번째 요소는 Elevate step이다. 사전적 의미는 ‘~을 들어 올리다’이며, 일반적으로 Put up, Lift, Raise를 쓰는 것이 좋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승마에서의 Elevate step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의 의미로는 무언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 속보에서 Elevate step은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을 뜻한다. Cadence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속보할 때 각각의 네다리가 높이 들어 올려 지면 움직임이 보다 경쾌해 보이고 힘이 있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속보를 훈련시켜 가르치는 게 절대 쉽지만은 않다. 그리고 누구나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 훈련시켜 가르치려면 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실전에서 오랜 시간 가르침을 받고 또 많은 말들을 기승한 경력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이에 대한 자기만의 감각과 느낌을 터득하고 있어야 더욱 쉽고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다.





Engagement
세 번째는 Engagement다. 꼭 집어서 Engagement를 세 번째 요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 가지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세 번째로 생각이 나서 적은 것뿐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전에서 ‘Engagement’의 뜻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 의미가 나온다. 그중에 승마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의미는 ‘(톱니바퀴 따위의) 맞물림, 연결’이다. 마장마술에서는 ‘후구의 결속’이라고 표현된다. 그러면 후구의 결속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FEI Dressage Hand Book에 나와 있는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가 좀 더 수월하다. 그림에 나와 있는 것처럼 후구가 조금 낮아지고 뒷다리가 앞다리 쪽으로 충분히 향해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런 형태라면 후구의 진입이 아주 용이하며 마장마술에서 요구하는 Ground covering이 올바르게 구현될 것이다.

▲속보는 마장마술 과목 중에 제일 화려함을 뽐낼 수 있는 보법이라 많은 선수가 아름다운 속보를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Regularity
그리고 다음 네 번째는 Regularity이다. 사전에는 ‘규칙 바름, 일정불변, 균형이 잡혀 있음’이라고 나와 있다. 즉 위에 설명한 걸음으로 규칙적인 움직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속보의 걸음을 이처럼 어렵게 풀어서 설명한 이유는 실제로 말(馬)을 가르치는 게 말(言)로 설명하기보다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이를 가르치지 않을 것인가? 가르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뿐이다.

구보(Canter)
훈련의 완성도가 부족한 속보를 하고 난 뒤 구보를 하려고 하면 생각만으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 됐다. CG가 속보했을 때 재갈을 양보 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고삐의 연결은 점점 강해졌다. 이런 상황은 때때로 싸움으로도 이어져 CG의 목과 온몸은 잔뜩 긴장된 상태였다. 주먹의 연결을 한순간이라도 풀어주면 목을 길게 빼고 달아나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구보하게 되니 구보는 구보가 아닌 구보가 되기 일쑤였다. 안장에 앉아 있는 내 자세도 엉거주춤한 모습이니 불협화음이란 이를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말이 구보를 할 때는 기승자의 무릎과 발목 그리고 어깨와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허리는 곧게 펼 정도의 힘만 주고, 안장에 앉아있는 엉덩이는 긴장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깊게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CG와 구보를 할 때면 모든 것이 반대로 됐다. 그러다 보니 답답한 마음은 짜증이 되고, 그 짜증은 다시 CG와의 격렬한 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러한 불완전한 상태에서 구보를 하게 되면 정확한 3절도 구보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 구보는 4절도와 비슷하게 느껴지며 엉덩이에 전해지는 느낌은 안장 위에서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밀려들어온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엉덩이를 마지막까지 밀어주지 못하고 끝자리에서 반쪽짜리 속보와 같은 찜찜한 느낌이다. CG의 경우 이러한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가 입에 물고 있는 재갈을 좀처럼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습관을 고치려고 수축 구보를 시켜봤지만, CG는 괴상망측해서 도저히 내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없는 희한한 구보를 하곤 했다.


훈련 중간 쉬어가는 외승길

외승(Hack out)Ⅰ

승마용 말들의 주거를 목적으로 한 마사는 임시마사를 포함한 7개 동에 대략 200칸 정도가 설치되어 있다. 승마장과 마사는 청계산 끝자락이 감싸 안고 있는 지형이어서 아름다운 사계를 사철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마사 뒤편 난 외승길은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운동에 지친 말들이나 기승자에게 매일 매일 신선한 공기를 제공해준다. 울타리 쳐진 네모난 마장에서 훈련으로 쌓인 스트레스는 외승길을 한번 이용하면 씻은 듯이 사라지며 가빠하던 호흡도 이내 차분해지게 만들어주는 멋진 외승 길이다.

▲마사 뒤편 난 외승길은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훈련에 지친 말들이나 기승자에게 휴식처가 되어 주곤 한다.

이 멋진 외승길 외에도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훌륭한 외승길이 있다. 이곳으로 가려면 우선 통제 구역을 지나야 한다. 통제되고 있는 구역을 지나면 주암 마사동이 있고, 그 아래로 모래 주로를 따라 내려가면 삼포 마사동이 위치해 있다. 이 삼포 마사동 채 가지 못해 오른쪽 숲으로 난 샛길로 접어들면 외승길은 시작된다. 이 외승길로 처음 접어들면 만날 수 있는 것은 가출해 야생의 생활을 즐기는 고양이들이다. 처음 서너 번은 고양이들의 움직임에 말이 놀라곤 했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나자 움직이는 고양이를 이내 흘끔 처다보고는 제 갈 길 가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이곳의 고양이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십여 마리 이상이 살고 있는 듯하다. 이 녀석들은 그곳 가까이에 식당에서 일하시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먹을거리를 챙겨주시는 덕에 훌륭하고 희희낙락한 생을 보내고 있는 듯 보인다. 완전 야생도 아니며 또한 애완 상태도 아닌 사람과의 연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생활하는 두뇌가 더욱 진화된 세월 좋은 배짱이 같은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곳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테니스 연습장이 나오는데 이곳을 지날 때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내가 이곳을 지나는 시간은 회사 근무 시간이라 테니스를 하는 일이 없지만 가끔 회사 휴일에 이곳을 지나면 테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보이곤 한다. 간혹 말이 테니스 하는 소리에 놀라는 경우가 있어 테니스 하는 사람들에게 “말 지나갑니다” 하고 말하면 말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잠시 쉬며 흘린 땀을 닦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외승길에 테니스를 하며 땀을 닦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매우 활기차 보여 흐뭇한 미소를 짓곤 한다.

테니스장을 지나면 밤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이 길은 봄이 되면 밤꽃 냄새와 아카시아꽃 냄새가 만발한다. 나는 자연스레 숨을 크게 쉬어 맑고 신선한 공기를 깊게 들여 마신다. 밤새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맑은 공기를 내쉬는 나무들의 첫 숨을 한숨이라도 놓치지 않고 받아 가려고 깊은 날숨과 들숨을 정성 들여 반복한다. 꽃이 떨어지고 무더운 여름이 되면 무성한 나뭇잎으로 이 길은 짙은 그늘이 만들어진다. 대낮에도 가로등이라도 켜놓아야 할 정도로 그늘이 지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돼 잠시지만 서늘함 마저 느껴진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볕이 따가워지면 밤나무에 달려있던 밤송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밑을 지날 때면 혹시나 밤송이 가시가 말의 발굽 부드러운 곳에 박히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된다. 밤송이와 함께 땅에 떨어진 알밤들이 길 위에 구석구석 숨어 있지만 말 위에서 보면 그 모습들이 수줍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이내 나에게 들키고 만다. 나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나의 마음속에 곱게 간직하고 아쉬운 시간과 이별을 한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