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리 씨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과감히 접고 말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됐다. 그녀는 어린 친구들에게 ‘진짜 행복한 승마는 말을 이해하고 말과 함께 원하는 것을 찾아냈을 때 더욱 크게 느껴진다는 것’을 제일 강조하며 알려줬다.
대중에게 진솔한 승마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국마사회는 올해 ‘유소년승마사례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공모 결과 최우수상부터 장려상까지 총 19편이 선정됐습니다. 은 19편을 연재합니다. 그 열일곱 번째 순서로 경기도지사상을 받은 유혜리 씨의 ‘마음으로 함께 그리는 말’을 소개합니다. 수상자들에게 축하와 함께 한국마사회 말산업진흥처에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편집자 주

“말 타는 기술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말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게 생각.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느꼈던 감정과
여러 상황들이 나에게 또 다른 승마 지침서가 됐다.”

지나온 시간을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참으로 큰 도약의 시간이 됐다고 생각이 든다.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수년을 미술학원을 오가며 입시 준비를 했었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 다시 졸업까지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 디자이너의 길을 가게 됐다. 다른 길은 생각도 할 수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사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승마를 접하게 됐고, 그 뒤로 말이라는 동물에게 헤어 나올 수 없이 빠지게 된 것이다. 그저 마장에서 머물며 말을 보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과감히 접고 말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됐다. 주변에선 큰 우려도 있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처음엔 단순하게도 말과 함께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했고 과정을 겪다 보니 그 안에서도 내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게 됐다.

하지만 승마 선수 출신도 아닌, 승마와는 아무 관련이 없던 내가 누군가에게 승마가 무엇인지 말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선 내 마음가짐 하나 가지고는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후 몇 년 동안 승마와 관련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시간을 보낸 결과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며 지도자의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

그 후, 승마장에서 승마 교육하며 나 자신도 꾸준한 경험을 쌓아가던 중에 어느 고등학교 내에 승마부를 가르칠 기회가 주어졌다.

그 아이들도 내가 처음 말을 마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말이 좋고 호기심 어리게 시작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내가 어쩌면 시작점에 있는 아이들에게 내가 겪었던 상황처럼 ‘말을 통해 말과 평생 함께할 수 있는 꿈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처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애마정신’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부분이지만 말을 타면서 쉽게 희미해지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대부분 말을 타는 사람들은 말을 같이 운동하는 팀원이라고 생각하며 운동하고, 나 역시 혼자만 즐거운 승마보단 말도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간혹 말을 단순히 운동 기계 취급하며 말을 타는 사람들을 더러 본 적이 있었고 이런 경우엔 승마가 가진 진정한 행복함을 깊이 있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서 아직은 어린 친구들에게 ‘진짜 행복한 승마는 말을 이해하고 말과 함께 원하는 것을 찾아냈을 때 더욱 크게 느껴진다는 것’을 제일 강조하며 알려주고 싶었다.

‘말(言)을 하지 못하는 말(馬)들이 행복함을 어떻게 느낄까’하는 궁금증을 풀어내 주기 위해선 의무적인 애착 형성을 해주기로 했다. 각자에게 말을 배정해 주고 그 말을 씻기고 빗질도 해주고 간식도 주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였다.

어리고 순수한 마음과 말에 대한 호기심을 가득 가진 아이들이라 그런지 쉬는 시간마다 마방에 들러 자기에게 배정된 말들을 너무나도 정성스레 돌봐주었다. 이런 시스템을 매주 바꿔가며 여러 말들을 돌보게 해주었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말의 성격이나 특징을 고루고루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도 성격이나 특징을 파악하고 나게 되면 그 친구와 더욱 친밀해지지 않는가? 그런 점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

말과 시간을 보내며 친밀해진 아이들은 자신들이 돌보던 말 등 위에 오르게 됐을 때 더욱 값진 경험을 하게 된다. 말 또한 자신을 돌봐준 학생들을 믿고 경계하지 않게 되니 시작부터가 순조롭고 즐거운 승마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아이들과 승마 수업을 진행하면서 정말 중요한 사실을 느끼게 됐다. 낙마 사고가 거의 없었다. 보통 일반 승마장에선 회원들이 승마할 때 낙마 사고를 피하고 싶어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된다. 아무래도 기승 전에 말의 특성을 파악하기 어렵고 교관님이나 코치님들이 설명해준다고 한들 경험하지 않은 기승자에겐 설명만으로는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방을 찾아와 친구 대하듯 말에게 대화를 걸어주고 만져주고 눈을 마주쳐주던 학생들이 기승해서 그런지 말들은 편하게 등을 내줬고 싫어하는 몸짓 하나 보여주지 않았다.

그간 학생들이 말에게 쏟아낸 정성을 생각해 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마음이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바쁜 시간 속에서 승마하려고 온 일반 사람들이 이렇게 온전하게 시간을 쏟아내기 쉽진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간단하고도 진심과 정성이 담긴 과정들이 말과 나의 관계를 높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말과의 생활을 만들어가던 학생들에게도 슬픔의 날은 오고 말았다.

평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말 한 마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아직 죽음이라는 이별이 익숙하지 않던 학생들은 자신이 애정을 쏟았던 말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너무나 속상해 눈물을 흘리고 마음 아파했다. 그런 학생들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슬펐던 어느 하루의 일과가 모두 끝이 나고 마장 정리를 위해 마방에 들어선 순간, 마방 앞에 놓인 새하얀 꽃을 보았고 그 앞에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으로 울고 있는 한 학생을 보게 됐다. 차마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소중한 존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어떤 말로도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아이는 꽃 한 송이로 그 말과 함께 지나온 행복의 순간을 전하고 싶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또한 그 아이의 순수하고 진심 어린 마음이 전해져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그저 잠시 기승만을 위한 시간을 보낸 사이였다면 그렇게까지 마음 저리게 아파하진 않았을 것이다.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로 인식이 되어 있기에 슬픔의 깊이가 깊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첫 시작은 그저 말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마음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말과 함께 배워가는 것은 나에겐 행복이지만 초심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지도자로서 말과 설레는 첫 만남의 순간을 기대하는 여러 아이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처음 말을 보며 느꼈던 감동과 배움의 설렘을 차근차근 함께 그려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깨끗한 종이 위에 말과 함께 그려나가는 첫 점을 그저 멋있고 보기 좋게만 그려가는 것보다 올바르고 즐겁게 그릴 수 있는 첫 점으로 함께 그려 나가고 싶다.

나와 함께 말을 그리는 아이들은 말을 다루는 기술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물론 기술 또한 중요한 부분이지만) 말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본다.

▲유혜리 씨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과감히 접고 말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됐다. 그녀는 어린 친구들에게 ‘진짜 행복한 승마는 말을 이해하고 말과 함께 원하는 것을 찾아냈을 때 더욱 크게 느껴진다는 것’을 제일 강조하며 알려줬다.

교정·교열= 박수민 기자 horse_zzang@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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