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마 고르기 위해 분투하던 시간은 매순간 긴장과 설렘의 연속
소속 직원들과 소통, 되돌아보면 정말 감사하고 고마움 가득해”

“사명 다한다는 것, 아름다운 결실을 만들고 미래를 열어가는 일
앞으로 후학 양성 및 경마 선진 발전을 위해 함께하고 기여할 것”

녹음이 우거지는 짙은 여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정점을 향해 끊임없이 뛰어올랐다가 이제는 그 정점을 찍고 돌아 내려오는 안식의 시간에 막 피어나는 한 세대 청년의 꿈들과 마주칩니다.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정년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저 먼 훗날로만 여겨졌는데 올해 유월로 말과 함께한 저의 40여 년 주로의 삶이 한 막을 내립니다. 한때 청운의 꿈을 안고 입성한 청년이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달려와 청년의 아버지가 되고 청년의 스승이 되는 자리까지 와 있습니다. 그동안 어려움을 헤치고 큰일 없이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분명 감사한 일입니다.

한국마사회와 함께 질곡의 역사를 지나온 시간이 남다르기만 합니다. 1971년 한국마사회 최초의 기수교육원 기수 1기생으로 이곳과 인연을 맺고 경마의 역사와 전통을 새롭게 쓰겠다는 자부심으로 기수로서 최선을 다했던 지난날입니다. 기수 생활 2년 차에 신참 기수로서 경마대회 2관왕이 된 일은 잊을 수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아시아 국제 경마대회 한국 대표 기수로 출전과 미국 메릴랜드주 정부 초청으로 한국 기수로서 최초로 미국에 진출해 국제 기수를 꿈꾸다가 마학을 공부하며 선진 경마의 제도, 말의 혈통 관리 등 경마와 관련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것도 운명과도 같았습니다.

선진 경마에 대한 동경은 이내 기수 생활을 정리하고 조교사로서 새로운 도전을 받게 했습니다. 조교사로서 ‘동반의강자’, ‘불패기상’ 같은 수많은 애마들의 출현은 홀스맨인 저에게 최고의 선물이자 팬들에게도 명승부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말산업의 국제 무대 시장에서 우리 미래가 해야 할 일에 마음이 바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해외 시장에서 명마를 고르기 위해 분투하던 시간은 매순간 긴장과 설렘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십 년 새벽길 말과의 동승은 말의 마음을 받아 기승에 성공할 수 있도록 기원했고 마방 식구들이 모두 무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기도로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기승 전략을 짜고 말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준 기수들은 늘 제게 소중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동안 잘 따라준 소속 직원들과의 소통은 되돌아보면 정말 감사하고 고마움이 가득합니다.

그 무엇보다 팬들의 격려와 사랑이 없었다면 이 자리가 있었을까 우문을 던집니다. 관계자 및 마주분들의 협조는 일을 순조롭게 풀어갈 수 있게 했고 도움도 컸습니다. 동료들과는 선의의 경쟁 속에서도 삶을 이야기했고, 속정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애환을 감싸줬던 애틋한 날들입니다. 격변의 시대를 건너며 말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지금의 한국경마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사명을 다한다는 것은 이렇듯 아름다운 결실을 만들고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가신 선배들의 노고와 견인차 역할을 하는 후배들의 열정이 있기에 주로는 더욱 새로워질 것이며 저 또한 큰 사명을 그리며 책임을 다하려 합니다.

새벽 훈련 중 마방을 비운 사이 건초 더미를 듬성듬성 늘어뜨려 봅니다. 털 한 오라기, 풀 한 움큼에서 말의 건강과 심리까지도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이제 제게는 경지를 넘어선 일입니다. 오랜 세월 녀석들이 보내온 수신호를 수없이 주고받으며 교감한 덕분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말이 다치거나 아플 때는 정말 밤잠을 못 자고 간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성적이 좋지 않은 날에는 말의 눈빛도 시름시름 해서 오히려 힘내라고 궁둥이 두드려주던 때가 이제는 그리워질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조용한 이별을 나누겠습니다. 잘 사는 길은 익숙한 것들과 산뜻한 결별이라고 합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 또 새로운 항로를 향해 노 저어 가려 합니다.

여름 한 철 녹음을 연주하기 위해 오랜 시간 땅속에서 연마한 매미들이 풀숲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의 소임을 마치고 영광스럽게 자리를 내려놓습니다. 전문인으로서 말과 평생을 살아온 저는 앞으로 후학 양성과 경마의 선진적 발전을 위해 기여할 것이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항상 함께할 것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한 몸과 같았던 회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유관 단체, 마주협회, 경마 발전을 위한 건설적 소통 창구로 문호를 활짝 개방했던 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경마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분의 무궁한 발전과 도약을 빌며 참된 홀스맨으로서 새로운 장을 펼쳐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양선 조교사는…
1972년 한국마사회 기수 1기생으로 데뷔한 김양선 조교사는 11년간 기수 생활을 하다 1983년 마방을 개업해 40년 간 말과 인연을 이어왔다. ‘동반의강자’, ‘불패기상’ 등 한국경마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명마를 배출했으며 통산 9079전, 906회 우승, 911회 준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4년에 에세이집, 『김양선 조교사의 꿈꾸는 마방』을 출간했다

▲김양선 조교사와 ‘동반의강자.’ 한국 경마의 산증인, 김양선 조교사는 “말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꿈을 좇는 시간”이라며 “꿈을 먹고산다”고 밝힌 바 있다.

교정·교열= 이용준 기자 cromlee21@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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