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마, 왜 이토록 오랫동안 똑같은 잘못 반복하고 있는지
부정·사설 경마로 건전 문화 정착 노력 무너져…가장 큰 걸림돌

경마 생명은 공정(公正), 팬 위한 서비스는 “공정 경마 시행”
국민에게 사랑받기 위해 단체·관계자 합심해 공정 일궈내야

경마(競馬)….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단어다. 경마와 인연을 맺고 40여 년을 몸담고 일하다 떠난 지 8여 년이 지났다. 짧은 생에 40년이란 참 긴 날들이기도 하겠으나, 지나고 보니 잠깐이란 생각이 든다. 잠시나마 한가롭게 여유를 갖고, 산사(山寺)를 찾으며 지난 일을 생각하노라니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은 30여 년 동안 경마의 집행 업무(22년간)를 해오면서 경마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공정(公正)’ 경마 시행을 제대로 수행했느냐다.

지난해에도 과거 수십 년간 반복돼 오듯이 말 관계자(주로 기수·조교사·관리사) 여럿이 부정 경마로, 또는 이와 관련된 품위 손상으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의 직장(직업) 생활을 마감하며, 불명예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공정 경마 시행’을 주 업무로 오랫동안 일을 해온 필자로서는 한국경마의 가장 커다란 과제로, 왜 이토록 오랫동안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고 있을까, 죄책감과 함께 다시 한번 생각하고자 한다.

이제 우리 경마는 몇 년 후 새로운 경마공원 건설을 계획하며, 매출 8조 원, 연 입장 경마팬 2천만 명이라는 세계 7위의 놀라운 양적 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나 이러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한국경마의 초심(初心)은 무엇이었나, 다시금 되돌아본다면 필자는 ‘1993년 8월’에 도입된 ‘개인마주제 전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잊혔을까? 가끔 회자되는 ‘단일마주제’라는 단어가 있다. 1922년 이 땅에 경마가 도입된 지 백여 년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역경을 딛고 헤쳐나가면서, 우리 스스로가 시대적 흐름을 분리하고 정의해 가면서 만들어낸 한국식 경마 제도를 일컫는 단어였다. 1993년 8월, 한국경마의 큰 획을 긋고 ‘단일마주제’는 사라지고 경마의 본래 모습인 ‘개인마주제’라는 제도의 도입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3개 경마공원 모두 이 제도로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이러한 제도의 변혁을 해야만 했는가. 아마도 몇 가지로 그 이유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적은 투자나 편리한 경마 관리 시스템이 단일화돼 있는 운영 체제에서 개인이 말을 소유하게 해야만 했겠는가. 이는 당시 안고 있었던 한국경마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공정한 경마 시행 △자율적인 경쟁성 도모 △경마의 선진·국제화 추진 △경마산업의 생산 기반 확충 △경마문화의 창달 등의 난제(難題)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마의 본래 모습(개인마주)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오랫동안 지배적인 의견으로 당연히 귀결된 결론이었다.

이러한 변혁으로 거대해진 한국경마, 25여 년이 지난 현재 이를 평가하기란 아직도 시기상조라고 생각은 되나 처음의 마음과 자세로 돌아가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을 다음을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할 것이다. 경마란, 자연 발생적으로 이뤄져 오랜 기간을 거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복잡한 유기체적인 흐름으로 말을 중심으로 한 사이클(생산→육성(유통)→경주→교배(생산)이 모두 하나를 이루며 만들어져 모양새를 갖춘 선진 외국과 달리 한국경마는 단기간 내 말 생산과 마주 제도가 탄생해 생산자와 마주가 생겨났고, 조교사·기수 및 관리사도 자율 경쟁 체제라는 복잡한 변화에 적응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새로운 도약의 전환기가 필요한 이즘, 자성(自省)하는 의미로서 전환 당시의 숙원 과제를 중심으로 한 번 살펴본다면,

“공정 경마는 시행되고 있는가!” - 부정 경마는 일소돼 경마팬의 사랑은 받고 있는가.
“자율적 경쟁성은 확보되었는가!” - 경쟁력과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근본 체제인 경주·상금 체계는 발전의 기틀이 확고히 이루어져 있는가.
“경마의 선진·국제화는 어디까지 왔는가!” - 선진 경마 시행체와의 활발한 교류와 경쟁 시에는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목표는 분명한가.
“경마의 생산·육성 기반은 산업으로서 위치가 확보됐는가!” - 국내산 생산 관련 수급 체계 등은 안정적이고, 경주 체계의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됐는가.
“경마팬,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마문화는 꽃피어가고 있는가!”

어느 분야 하나라도 호평하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겠는가. 뒤돌아봐야 하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각 단체가 서로의 목소리를 높여가며 협상의 테이블에 앉아 자기 입장만 내세우고만 있지는 않은지…. 낙후된 한국경마에 ‘개인마주제가 되면…’ 하는 생각으로 걸었던 기대가 컸던 만큼 혹여 실망은 안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경마의 생명은 공정(公正)”이며, 경마팬에 대한 최대의 서비스는 “공정 경마 시행”이라는 믿음에는 지금도 변함없다.

경마를 시행하고 있는 100여 개국에서도 이를 가장 중요시하며 자국의 경마 현실과 문화를 바탕으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공정 관련 법(法)과 각종 규정(規定)을 제정·운영하고 있다. 공정 경마 시행을 위한 방지나 처벌뿐만 아니라, 경마 계획(경주·상금·중량 체계), 면허 제도, 마방 관리 대부, 시설 임대 및 전문 예상지 판매 등 다양한 경마 분야에 걸친 효율적 제도 운영을 비롯해 이와 관련 가장 밀접한 계층은 말 관계자(마주·조교사·기수 및 관리사)일 수밖에 없어 규정 위반자를 처벌하는 제재 또한 이들 중심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각국 공통이라 할 수 있다.

매년 부정 경마와 관련한 말 관계자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최근 사설 경마 등으로 건전한 경마 문화를 정착하는데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지는 사례는 더욱 친밀해가고, 조직화하는 양산임을 숫자로도 알 수 있듯이 경마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정 경마란 ‘특정인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행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경마팬 모두가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한다면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경마에 참가하는 불특정다수인 팬은 출주마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전제로 마권을 구입하는 만큼 시행체의 경마 관련 제반 제도, 특히 경마 상금과 경주 체계나 말 관계자의 합심 된 공정에 대한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사회 우범자를 막기 위해 경찰이나 법이 엄격하다 해도 끊임없이 사건은 일어나고 있듯이, 세계에서 경마를 시행하는 나라에서는 크고 적게 아직도 부정 경마 사건이 일어나고는 있다. 그래서 미국은 ‘TRPB(Thoroughbred Racing Protective Bureau의 약칭. 북미경주마경주협회 산하기관으로 경마산업의 국제적 조사 기관으로 경마 시행에 있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조사해 폭로하고, 스포츠로서 경마의 공적 신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편집자 주)’라고 하는, FBI에 버금가는 막강한 조직의 눈부신 활약으로 오늘날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마로 발전해가고 있다. 홍콩도 이와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일본은 특유의 조직력으로 70년대 초 보안협회를 설립, 그리고 경찰의 협력으로 30년 동안 약물 사건 외에 부정 경마 사건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필자도 그간 부정 경마로 부자가 됐다거나, 성공했다는 부정행위자는 아직 만나보지를 못했다. 한국의 경제 수준이나 높아진 문화를 생각한다면, 이제는 말 관계자의 도덕적 양심이 스스로 한국경마의 공정한 시행에 역할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타진해본다. 법 또한 처벌에 앞선 예방이란 측면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이젠 국민과 경마팬에게 사랑받는 경마가 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경마 관련 단체나 개개인의 합심 된 노력으로 일궈내는 ‘공정 경마 시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마는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성장을 추구해 선진 경마로 발돋움할 때, 지금까지 경마인의 한사람으로서 세계 경마계 조류에서 발전은 물론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진단해본다.

지금 우리 경마가 ‘가고 있는 길’은 어디며 ‘가고 싶은 길’은 어떤 곳이며 ‘가야 할 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15년 전 마주협회가 전개했던 ‘4C운동’을 되새겨 보며, 옷깃을 여미어본다.



*4C 운동이란?
Clean 깨끗한, 순수한 (공정경마, 公正競馬)
Competitive 경쟁적인 (우등열패, 優幐劣敗)
Creative 창조적인 (경마문화창조 競馬文化創造)
Credible 사랑받을 수 있는 (경마신뢰제고, 競馬信賴提高)

저자= 석영일 전 한국마사회 심판처장

교정·교열= 이용준 기자 cromlee21@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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