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문화
1998년 - ‘새로운 출발, 새로운 도약’
1998년은 한국 경마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경마문화신문의 창간과 더불어 한국경마계에 새로운 변화들이 시도되면서 한국경마가 새로운 출발대에 선 것으로 평가되는 해이다.
4월 1군사령관을 지낸 오영우씨가 27대 마사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건전경마 정착을 강조하며 그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었던 일련의 잡음 등을 일소하고자 기수, 조교사에게 자수기간을 제시했으며, 대전과 광주 지역에 장외발매소 개장승인을 받아 본격적인 경마 전국화 시대의 장을 열었다.
또한 4월에 국내 처음으로 국산마 경매가 열리게 됐다. 본격적인 국산마 생산에 박차를 가한지 10여년만에 경매제도를 도입하면서 국산마의 양과 질적인 상승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됐다.
기존 무궁화배 경마대회를 코리안더비로 개칭해 5월 17일 역사적인 제1회 코리안더비에서 첫 더비 우승마인 ‘우승예감’을 탄생시켰다. 코리안더비의 시행은 국산마의 조기 데뷔는 물론이고 삼관경주 시행의 초석을 마련했다.
6월 17일에는 그동안 조교사와 기수가 어우러져 조기협회를 이루고 있던 것에서 기수협회가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조교사와 기수간 새로운 관계정립을 하게 됐다. 이후 기수협회는 본지와 공동으로 경마팬과의 만남 행사를 가졌고, 연말에는 장애인을 서울랜드로 초청하는 봉사활동을 시작함으로써 공인으로서 의식을 높이고 경마팬과 거리차를 줄이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게 됐다.

1999년 -‘국산마 르네상스, 경마의 전국화’
1999년은 한국경마가 드디어 본격적인 전국화를 이룬 해로 평가된다. 7월 2일 수도권 이외의 첫 장외발매소인 대전지점이 개장을 하면서 경마의 전국화가 시작되었고, 8월에는 97년 지방경마장 건설 합의 이후 2년여만에 부산,경남권 경마장 건설부지가 최종 합의되면서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밑그림이 그려지게 됐다.
명마 ‘새강자’가 그랑프리 우승까지 13연승을 달성하며 이전까지 서울경마공원의 최고 기록인 ‘가속도’의 11연승을 넘어서 국산마 르네상스의 선봉이 되었다. ‘새강자’는 이후 2연승을 보태 15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한국경마에 선사했다.
하지만 3월에는 순위변경에 대한 경마팬 최초 항의 농성이 발생하면서 경마팬은 물론 경마관계자들의 자성이 요구된 사건이 있었다. 순위변경에 대해 일부 경마팬이 수긍하지 못하고 1층 관람대에 집결해 장시간 농성을 벌인 것이다.
마사회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전화 베팅자를 위한 실시간 배당률 공개와 경주실황 녹화중계 서비스, 경주마 혈통정보, 인터넷 메일을 통한 결과받기 등의 정보 제공에 나섰고, 8월부터는 경주 비디오 실황 테이프 판매를 실시해 경마팬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편 YTN에서 정규 경마방송을 시작했고, 리빙TV와 스포츠TV 등을 통해 경마방송이 방영되었다.
4월에는 경마종주국인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에 즈음하여 서울마주협회 명예회원으로 위촉되기도 했고, 이에 앞서 3월에는 박태종 기수와 안병기 기수가 영예기수에 선정되면서 김명국 조교사에 이어 한국경마사상 2,3번째 영예기수가 되었다.

2000년 -‘외형적 성장, 다사다난했던 한국경마’
2000년 한국경마는 매출약 30% 신장, 2년 연속 입장객 1천만명 돌파라는 외형지표의 두드러진 성장에도 불구하고 인위적 경마중단을 비롯해 대형사고가 잇달아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으로 정리된 한 해였다.
5월 7일에는 사상초유의 인위적 경마중단사태가 발생해 흥분한 경마팬들로 인해 마주시의 각종 집기가 파손되고 일부 경마팬이 구속되는 등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마사회와 조교사협회노동조합간 임금교섭 결렬로 7일 예정됐던 12개 경주중 10개 경주가 취소되면서 이에 흥분한 경마팬들이 마사회장실을 비롯한 기수협회 사무국, 조교사협회노조, 마주실 등을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고,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소요가 마무리 됐다.
2000년은 경주마 생산자들에게 악몽의 시간이 되었다. 마사회와 마주협획 상금협상 결렬로 인해 한해 3차례 열리던 경매가 단 한차례만 열렸고, 그나마도 현저하게 낙찰률이 떨어지면서 생산자들은 울상을 지어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래로 향하는 한국경마의 성장이 지속됐다. 4월에는 광주지점이 오픈을 했고, 부산경남경마공원이 착공에 돌입해 경마전국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5월초에는 20여년만에 쌍승식이 부활하면서 경마팬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됐다. 비록 1일 3개 경주에 한해 시행이 되었지만 경마팬의 많은 관심을 얻었다.
또한 10월에는 ‘국민기수’ 박태종이 7백23승을 넘어서면서 이전까지 김명국 조교사가 현역시절 세웠던 다승을 넘어서 새로운 기록제조기로 우뚝 서게 됐다.

2001년 -‘경마 농림부 환원, 한시적 안방 경마시대’
2001년은 그동안 문화관광부 산하로 옮겨졌던 한국마사회가 농림부로 관장권이 환원되면서 축산발전이라는 마사회 설립 목적에 근거한 경마발전의 기대치가 높아졌다.
하지만 1월 경마에서 갑작스런 폭설과 강추위로 인해 2주 연속 경주가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해 경마를 즐기려는 경마팬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2월부터 리빙TV가 마사회가 경마실황중계 시험 방송에 돌입해 안방 경마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하지만 사행성 조장과 불법 사설경마 증가의 이유를 든 방송위의 권고로 인해 하루 8개 경주에 한해 방영되었다. 한편 마사회는 경마생중계와 더불어 인터넷 동영상 제공 및 실시간 배당률 게시 프로그램 업그레이드를 통해 적극적인 경마팬 유치 전략을 펼쳤고, 전화베팅을 위한 회선과 ARS시스템까지 도입해 안방 경마팬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7월부터는 진로변경금지제가 시행되면서 발주후 100M까지 일체의 진로 변경을 금지했다. 이로인해 기수나 말의 사고밸생 위험이 낮아졌고, 경주중 상당부분 위험요소를 배제할 수 있게 되었다.
13기에 이어 최대 인원을 자랑하는 20기 기수들이 데뷔하면서, 한국경마는 문세영, 조경호 기수라는 대어를 낚았으며, 이신영, 이금주 기수 등 여성기수의 데뷔로 26년만에 여성기수의 활동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
국산마 경매는 2년연속 파행을 보였다. 단 한차례 열린 11월 경매에서도 마주가 아닌 일반인이 경주마를 구입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개별거래 폭증에 따른 국산마 과잉 도입과 외산마 도입 지연에 따른 경주편성 불균평 등으로 경매시장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는 경쟁산업 속에서도 경마산업은 강세를 지속하면서 일일 매출 7백억원 시대를 알렸고 연간 매출액은 5조원을 넘어섰다.

2002년 -‘붉은 물결에 휩싸인 서울경마공원’
마주의 외산마 개별거래가 허용되면서 마주가 현지 경매나 시장에서 경주마를 구입해 국내로 도입했고, 첫 선을 보인 외산 개별수입마들은 당시 군체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월군 출전에 연승을 이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산마 ‘해암장군’이 국산 3세마 대회를 모조리 석권하며 경마대회 3관왕에 오르며, 한국경마에 삼관경주의 싹을 틔웠다. ‘해암장군’은 코리안더비를 시작으로 코리안오크스, 농림부장관배를 거푸 차지, 명실공히 최고 국산 3세마로 우뚝 섰다.
유관단체의 분열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서울마주협회의 경우, 연초부터 마주생산자협회(KOTOBA, 이하 코토바)를 시발점으로 경사모(경마를 사랑하는 마주들의 모임) 등이 잇달아 결성, 결국 과천클럽이라는 새로운 단체가 탄생했고, 생산자협회 역시 제주와 내륙으로 분리돼 내륙생협이 처음으로 내륙경매를 자체 시행했다.
경마공원 신관람대가 5월 개장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관람 환경이 조성됐지만, 외부적으로 사설경마 및 사설 인터넷 베팅사이트의 기승이 큰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한편 마사회는 98년 구조조정과 관련해 오영우 전 마사회장 및 신일수 전 노조위원장이 불구속 기소되고, 감사팀장이 사망하는 사건으로까지 번져 마사회 조직을 뒤흔들기도 했다.
지칠줄 모르고 상승일로를 보이던 매출액이 상반기와 하반기에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2002 시즌이 본격 개막된 2월부터 급상승세를 타기 시작, 특히 5월 이후부터는 연일 매출 신기록이 작성되며 경주당 매출 1백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추석 휴장 이후 갑작스럽게 급감을 보여 우려를 낳기도 했다.
한국을 뒤흔든 한일월드컵은 경마공원에도 열기가 전해져, 6개 경주를 취소하고 장외 응원전을 펼치는 한편, 대형 컬러 전광판을 통해 월드컵 응원을 펼쳐 폭발적인 성원과 호응을 이끌어냈다.

2003년 -‘얼어붙은 경마계, 변화의 싹은 틔고 있었다’
2003년은 99년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마 매출액이 급락하는 현상이 경마계를 강타하면서 충격을 안겼다. 2002년 9월을 기점으로 상승세에서 하락세로 돌아간 매출은 최고점에 절반에 불과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매출액 급감은 경기불안이 한 요소였지만, 급속도로 확산된 사설경마와 마권구매대행업 기승 등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
하지만 총체적인 경마매출액 감소에도 불구하고 경마산업은 도약을 위한 다양한 변화를 지속했다.
우선 11월에는 시범적으로 일부 경주에 한하던 쌍승식이 전경주로 확대되고, 복연승식이 새롭게 도입돼 높은 관심을 끌었다.
또한 마사회가 출마책자를 확대 개편하면서 높은 반향을 일으켰는데, 당시 이에 반발한 일부 경마전문지가 발행중단을 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6월에는 서울경마공원을 주름잡았던 고참급 기수 10명이 부산경남경마공원 조교사로 전직을 위해 은퇴하며 서울경마공원이 13기 이전의 고참 기수들 손에서 후배기수들에게 상당부분 이전되는 현상을 가속화 시켰다.
경주마 생산분야에서는 이얼링세일이 처음으로 개최되었고, 일부 민간목장에선 개별경매시행을 하면서 시들했던 경매열기가 서서히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2004년 ‘1000승 기수 탄생, 그러나 악재와 불운의 한해`
2004년은 ‘국민기수’ 박태종이 1000승이라는 선물로 화려하게 개막되었다. 박 기수는 1월 31일 마지막 경주에서 1000승을 기록했고, 공로를 인정받아 충북 진천군으로부터 감사패를, 농업인의 날에는 대통령 표창을 각각 수상했다.
한국경마는 국제경주분류표준위원회(ICSC)로부터 파트국으로 승인받았다. ICSC는 매년 개별 경마시행국의 양적·질적 경마시행 수준을 전반적으로 평가해 파트Ⅰ·Ⅱ·Ⅲ 국가로 분류하고 그 내용을 ICSC의 공식책자인 블루북(Blue Book)에 게재해 세계적으로 공표하고 있는데 이 블루북에 코리안더비와 그랑프리를 포함해 모두 7개의 경주가 포함돼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마사회는 4월 KRA-Way 선포식을 갖고 ‘생명과 사랑의 공익 기업’이라는 슬로건 아래 새로운 CI, “KRA”를 발표하며, 공식명칭을 KRA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경주마 부문에선 ‘무패강자’가 2세 때에 헤럴드경제배 우승을 시작으로 스투배(3월21일), 코리안더비(5월16일), 한국마사회장배(7월25일), 농림부장관배(10월17일)까지 거푸 5개 대회를 차지하며, ‘새강자’의 계보를 잇는 초대형 국산마 탄생을 알렸다. 또한 외국산 신예마인 ‘승유신화’와 ‘터프엔젤’이 1000m경주에서 각각 59초를 기록하며 1분대의 벽을 허무는 신기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2004년은 아쉬움이 많았던 해다. 경마매출이 2년 연속 20%가 감소했고, 입장인원마저 줄면서 경마산업에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마사회는 경마매출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추석 연휴와 동계 휴장기에 추가 경마일을 편성하는 예비책을 세우기도 했다
경마내적으로도 아픔이 많았는데, 휴장기에 경주마 훈련중 낙마사고로 유훈 기수가 사망했고, 갑작스럽게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 받았던 강종헌 기수가 9개월여의 투병 끝에 사망했다. 또한 4월에는 워크샵에 가던 마사회 간부 26명을 태운 버스가 전복돼 3명의 간부가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2005년 -‘한국경마의 국제화’
마사회는 국내 경주마 수준 향상을 위해 29억 원짜리 씨수말 ‘엑스플로잇’과 22억원의 ‘커멘더블’을 도입한 이후 우승마 ‘볼포니’와 ‘양키빅터’ 등의 고가 씨수말을 연이어 수입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경마팬의 염원인 환급률 인상은 또다시 요원해 졌다. 정부가 2006년 2%로 환원키로 했던 지방교육세율을 3년 이후 4%로 인하해 영구세화 하기로 한 것.
‘사행산업을 걱정하는 의원모임’ 등 국회의원들의 경마규제 움직임이 나타나자 경마계는 사상 처음으로 경마계를 망라하는 공청회를 개최하면서 의견을 수렴하고, 국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경마를 사행산업에서 제외해야 하는 당위성을 알리는 노력을 했지만 결국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설치를 막지 못했다.
5월은 제30회 아시아 경마회의 (ARC, Asian Racing Conference)의 열기로 한국 경마계는 물론 아시아 경마계 전체가 후끈 달아올랐다. 20여개 아시아경마연맹 회원국은 물론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이 옵저버로 참가, 총 25개국 800여명이 참가한 이번 ARC는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제30회 아시아경마회의(ARC)는 ‘세계 경마 발전을 위한 아시아의 통합 비전(Asia`s United Vision for World Racing)’이라는 슬로건 아래 아시아 경마시행국 간의 확고한 공조체계를 확인하고, 아시아경마의 발전을 확신하는 수확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 한국경마사상 최초로 외국용병이 도입되었고 한국 기수들의 해외진출도 잇따랐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 마크 뉴남(37), 네이선 데이(32), 게리 베이커(36) 등 호주 출신 기수 3명이 데뷔했고, 오경환 기수와 조경호 기수가 정식으로 기수면허를 취득해 마카오 경마장에 진출했다. 9월 30일에는 부산경남경마공원이 개장을 하면서 수도권 위주의 경마시행에 벗어나 경마시행 전국화의 포문을 열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이 금요경마를 시행하면서 한국 경마의 주3일 시대가 다시 열리게 됐다.

2006년 - ‘바다이야기 풍랑에 흔들린 경마산업’
‘바다이야기’로 경마계가 일대 풍랑을 만났다. ‘바다이야기’나 ‘황금성’과 같은 사행성 게임의 폐해가 집중 보도되면서 경마, 경륜, 로또 등 기존의 공영 갬블사업도 덩달아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마사회 주관부처인 농림부가 경마산업에 관심을 보이면서 경마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됐다. 마필산업육성대책 발표와 농림부의 주도로 경마혁신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다.
연말을 앞두고 한국경마계는 경주취소로 인한 경마팬 소요사태를 겪으면서 신뢰라는 중요한 덕목을 잃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랑프리가 예정됐던 12월 17일에는 폭설속에서 경마공원을 찾은 경마팬들은 3시간여를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경주가 취소되자 추위속에 경마팬을 방치한 마사회와 경마관계자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사태가 악화되고 말았다. 전날부터 시작된 폭설이 경주취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사태를 진행시킨 것은 경마공원을 찾은 많은 경마팬을 배려하지 않은 경마관계자들과 위기관리 시스템의 미비가 결국 화를 부르고 말았다.
2006년에는 한국경마사상 최초로 경마를 소재로 한 영화 ‘각설탕’이 탄생했다. ‘각설탕’은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경마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고, 방송과 신문 등 매스컴의 조명을 한 몸에 받으면서 150만명이라는 박스오피스를 기록했고, 춘사영화제에서 본선진출 5개작 대열에 오른 후 3개 부문에서 수상을 하는 쾌거를 안았다.

2007년 ‘삼관마 탄생, 사감위 위협 대두’
2007년 한국경마는 제도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우선 그동안 경마인들이 바라던 삼관경주가 공식적으로 시행되었는데, ‘제이에스홀드’란 걸출한 명마가 탄생하면서 원년 삼관마로 우뚝 서게 됐다.
2월부터는 기승계약 이원화가 본격 시행되면서, 자유기수와 소속기수의 이원화가 시행되었고, 7월부터 서울경마공원에 외국인 용병기수가 첫 선을 보였다.
7월에는 사감위법이 시행되었고,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8월 출범을 했다. 경마계에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농축산단체들이 ‘마필산업발전전국연합’을 구성하였으며, 서울마주협회에서는 오경의 전회장을 위원장으로한 마필산업발전위원회를 구성해 국회위원을 직접 방문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8월에는 5년여동안 두 개의 단체로 분리되었던 마주단체가 서울마주협회로 통합되면서 남승현 마주가 통합서울마주협회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한편 한국경마기수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임대규 기수가 경주중 낙마로 운명을 달리하는 사고가 발생해 경마계를 슬픔에 빠지게 했다.
9월에는 마사회가 1300m를 신설해 관심을 모았으며, 경마전문지의 건전하고 발전적인 상호 경쟁을 유도하고 전문지의 공신력을 강화하며 경마 팬의 전문지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경마전문지 품질평가 서비스 제도」를 실시하였지만 ‘경마정보의 질과 양’과 ‘적중률’ 등 2개 항목으로 시행된 평가는 부작용으로 인해 ‘적중률’에 국한돼 품질평가가 진행돼 당초 취지가 퇴색되고 말았다.
‘한국경마발전 중장기 계획’과 관련해 갈등을 겪어온 한국마사회와 서울마주협회, 서울조교사협회, 한국기수협회, 전국마필관리사노동조합가 출마투표여부를 놓고 마라톤협상을 가졌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12월 셋째주 경마가 중단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서울경마공원의 경마중단으로 해당주에는 제주경마가 교차투표로 대신 했다.

작 성 자 : 권순옥 margo@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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