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 치뜨레 - 마리단다 -시바라야 - 상보단다 - 데우라리

새벽 6시에 요란한 경적 소리가 들렸다. 지리에서 카트만두로 떠나는 첫 버스의 출발 신호였다. 밖은 아직 깜깜했지만 오래지 않아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침낭에서 빠져나와 여장을 차린 후 아래층에 내려가니 안주인이 머그 컵 가득 차를 내왔다. 셰르파를 위시한 티베탄 계열의 히말라야 원주민들이 즐겨 마시는 버터 티였다. 차 끓인 물에 버터를 녹이고, 곡물 가루와 소금으로 가미한 버터 티를 셰르파들은 '소찌아라고 부르는데,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해장으로도 좋다.

 

안주인은 거푸 두 잔의 소찌아를 권한 뒤, 옥수수로 빚은 창(막걸리)도 한 사발 내놨다. 길양식으로는 막걸리만큼 좋은 음식도 없기에 해장 삼아 한 사발 들이켰더니 또 한 사발 가득 채워주었다. 하룻밤 묵어가는 나그네와의 인연을 중시하여 예를 차리는 성의가 고마워서 다시 한 사발 들이켰다. 뱃속이 찌르르했다.

 

도보여행 첫날인 이날 우리는 7시에 길에 나섰다. 같이 묵었던 나그네들 가운데 일부는 진작 카트만두로 떠났고, 일부는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줄곧 같은 길을 걸었다. 그중 자연스럽게 길동무가 된 사람이 총누리가 존경해 마지않는 고향 형님 나왕 초상 셰르파였다.

 

지리에서 마리단다(해발고도 2400미터)로 오르는 완만한 비탈길은 우리나라 야산의 약수터 가는 길 같았다. 중도에 아주 가난한 마을 치뜨레의 찻집에서 삶은 달걀과 감자볶음과 둣찌아(밀크 티)를 먹었는데, 달걀은 하루 전에 삶은 것 같았고, 감자는 너무 짜서 다 못 먹었다. 안주인은 안 보이고 아프거나 몹시 피곤해 보이는 영감 혼자 지키는 주막집이었다.

 

마리단다는 동쪽 건너편 데우라리 능선 너머로 피케가 조망되는 곳이라는데 짙은 구름으로 인해 데우라리 능선조차 보이지 않았다. 북쪽의 빤쓰 포카리 히말은 제대로 보였다. 빤쓰 포카리 히말이란 다섯(빤쓰) 연못(포카리)이 있는 설산(히말)이라는 뜻이다. 빤쓰 포카리 히말은 카트만두 시내에서 북쪽 시바뿌리 너머로 보이는 고사인쿤드와 흡사했다.

 

마리단다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비교적 넓은 경작지와 상점, 롯지가 있는 마리 마을을 지나 킴티 콜라 계곡 쪽으로 내려서니 랄리구라스가 탐스럽게 피어있는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이 보였다. 시바라야로 건너가는 쇠줄다리 저쪽에서는 자기 몸통보다 더 커다란 빨래 보퉁이를 안은 소녀가 웃으면서 건너오고 있었다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시바라야의 식당에는 한 쌍의 제비가 분주히 드나들며 천장 모서리에 둥지를 트는 중이었다. 오래 전 추억을 더듬게 하는 이런 저런 풍경들로 시바라야는 옛 고향으로 가는 길목처럼 느껴졌다. 지리에서 쿰부로 향하는 그룹 트레커들은 보통 시바라야에서 묵는다고 했다. 트레커 그룹은 짐도 많고 인원도 많아 우리처럼 아침 일찍 출발할 수도 없을 뿐더러 첫날부터 무리하게 걸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시바라야가 마음에 들어 하루 묵어갔으면 싶었는데, 두어 시간만 더 올라가면 나오는 데우라리(해발고도 2705미터)에 그럴듯한 투어리스트 롯지도 많고 거기서는 피케 영봉이 멋지게 보인다고 하여 다시 배낭을 메고 땀을 많이 흘리며 경사가 급한 길을 올랐다. 데우라리는 고산병을 걱정할 만큼 높은 지역이 아니어서 오르막 거의 끝에 있는 상바단다의 주막에서 창을 마시면서 갈증을 달랬다. <계속>

빨래 보퉁이를 지고 빨래하러 가는 시바라야 마을의 소녀를 킴티 콜라의 현수교 위에서 만났다. 
가게 맨 구석은 부엌이다. 라면을 끓이려는 중이다.  
치뜨레 마을의 골목길. 
허기를 달래려고 들린 주막. 밖에 보이는 가방 두 개 중에서 큰 것은 총누리가, 작은 것은 내가 벗어 놓았다.   

빤쓰포카리 히말. 다섯개의 연못이 있는 설산이라는 뜻. 카트만두 시내에서 북쪽 시바푸리 너머로 보이는 고사인쿤드와 자태가 흡사하다.

데우라리로 오르는 비탈길에서 내려다 본 시바라야 마을. 
마네(돌에 경전의 글귀나 그림을 새겨 담처럼 길게 쌓은 탑)가 유난히 길게 늘어서 있는 데우라리 고개. 고개 안부 좌우에 셰르파 호텔 또는 서양식 롯지들도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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