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시인

                                   윤 한 로

비웃지는 마시라
나는야
종이컵에 시를 쓰는
종이컵 시인
소공원 벤치 위에
구겨질 대로 구겨져
한 줄 또는
끽해야 두 줄
저 꾀죄죄, 일상생활
남몰래 찌그린다오
혹 누군가 볼세, ㅠㅠ
얼굴 불콰히 노래한다오
나는야 종이컵 시인
그러니 가자,
더 작고 여리게

정작
아픈 얘기들은 빼고
 


시작 메모

소공원은 딱 내 취향이다. 추리닝 입고, 슬리퍼 끌고, 담배 한 개비 입에 물고, 다닥다닥 연립들, 엄청 큰 은행, 후박 따위, 도둑괭이 지린내 폴폴 나고, 으슥한 구석 고동색 벤치 하나 있어, 나는 노상 거기 구겨져 시랍시고 영감을 떠올리고, 백석 이스라치 벤치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또 담배 문 고등학생 아들내미 마주치곤 ㅠㅠ, 그런 날 이스토록 종이컵 커피 소주 한 잔에 또다시 구겨질 대로 구겨지곤, , ㅠㅠ 벤치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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