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싱가 - 킹쿠르딩곰파 - 덴바단다 능선 - 덜카르카 - 빠쁘레

전날 한 방에서 잔 짐꾼 두 명 가운데 젊은이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깔로찌아와 짬바(보리 미숫가루)를 얻어먹은 후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앙 도로지가 작성해 준 일정표에는 전날 저녁에 킹쿠르딩 곰파에서 묵고, 이날 아침 동트기 전에 능선에 올라 일출을 본 후 곰파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전날 비가 오는 바람에 일정이 바뀌어 아침에야 곰파에 들러 차만 마시고 나왔다.

 

곰파 부근은 지름이 1미터가 넘을 침엽수들과 랄리구라스(네팔 國花)가 어우러진 울창한 숲이었다. 랄리구라스가 눈 속에서 꽃망울을 맺고 있는 숲 속 오솔길을 걸어서 덴바단다 능선에 오르니 높다란 나무 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조화를 부려 변화무쌍한 하늘과 먼산과 앞산 능선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어느덧 마루턱에 이르렀는데, 거기 아침에 헤어졌던 짐꾼 두 명이 짐을 내려놓고 쉬는 중이었다.

 

짐꾼 두 명 가운데 젊은이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이 먹은 짐꾼은 사진보다 담배에 관심이 많았다. 담배 한 대를 둘이 나누어 피우고 하산을 시작했는데 한참 내려오다 돌아보니 짐꾼들이 보이지 않았다. 소년과 소녀가 각각 소들을 방목하는 산비탈을 지나 덜카르카 마을에 도착한 때는 1시 경. 총누리가 점심을 먹자고 안내한 민가에는 사나운 개들이 있어 우리를 보자 미친 듯이 짖어댔다. 늙수구레한 주인 남자가 개들을 묶었다.

 

쌀밥과 달(녹두죽), 머히(일종의 요구르트)와 꼬도 락시(기장 소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덜카르카의 맞은편 산비탈에 빤히 보이는 마을이 빠쁘레, 즉 총누리와 앙 도로지의 고향이었다. 총누리는 손가락으로 앙 도로지의 집과 그 밑의 자기네 집을 가리켰다. 그런데 빠쁘레 마을에서 맹렬한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헬리콥터가 날아올랐다. 환자를 이송하는 일 말고는 평소에 헬리콥터가 올 일이 없는 마을인데 명절이면 카트만두에 사는 부자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오기도 한다고 총누리는 말했다.

 

산비탈을 비스듬히 에도는 길을 따라 한참 걸어서 나무다리가 놓여있는 개울로 내려섰다. 다리 저쪽 나뭇가지에 카닥(승려나 손님의 목에 걸어주는 하얀 스카프)들이 매여 있었다. 먼 길 떠나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빌어주기 위해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목에 걸어준 것인데, 개울을 건너기 전에 나뭇가지나 다리난간에 잡아매서 반드시 돌아오겠음을 다짐하는 것이라 했다.

 

사진을 찍느라고 다리 근처에서 어정거리고 있을 때 젊은 셰르파 남녀가 다리를 향해서 걸어왔다. 그들은 덜카르카에 있는 보건소로 출근하는 셰르파 부부, 총누리네 동네에 산다고 했다. 출퇴근을 위해 부부가 함께 아침저녁으로 걷는 시간이 하루 세 시간.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신세타령이 절로 나오겠지만, 그렇게 매일 함께 걸을 수 있는 부부도 많지 않을 것이다.

 

개울가 비탈길을 오르자 잘 정리된 밭이 드넓게 펼쳐진 마을이 나타났다. 집들도 큼직큼직하고 번듯번듯했다. 마을 입구에는 기다란 돌탑이 길을 좌우로 가르고 있었다. 빠쁘레 동구에 도착한 것이다. 곧장 앙 도로지 셰르파의 고향집으로 갔다. 목조로 된 2층집인데 마당 귀퉁이에 변소가 있었다. 이 집은 18년 전에 다시 지었지만, 집터는 옛날 앙 도로지가 태어난 그대로라고 했다.

 

 

페마와 페마가 돌보는 세 아기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 집에는 어린아이들만 있었다. 고추를 내놓은 사내아이와 볼이 사과처럼 빨간 서너 살 또래의 계집아이 둘이 코를 훌쩍이며 화덕에서 불을 쬐고 있었고, 이 아이들을 돌보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페마, 올해 열세 살로 빠쁘레 마을에서 두 시간 떨어진 마을에 사는 친척집 딸이라고 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앙 도로지의 조카이며 총누리의 사촌형인 앙 까미 셰르파라고 했다.

 

앙 까미 셰르파 부부는 22녀를 두었는데, 부인이 젖먹이 하나만 업고 카트만두의 친척집에 다니러갔으며, 앙 까미 셰르파는 마침 동네 마실 나가고 없었다. 페마 혼자 세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페마는 겨우 열세 살이지만 손님을 위해 차를 끓이고 옥수수 막걸리를 뜨듯하게 데워서 내왔다. 나는 화덕이 있는 창가에 앉아 페마가 정성껏 부어주는 옥수수 막걸리를 마셨다.

 

창밖에 보이는 육중한 능선의 이름은 뎀바단다, 우리가 넘어온 능선이다. 킹쿠르딩 곰파가 있는 능선 북쪽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었는데, 능선 남쪽인 이쪽 비탈에는 눈도 없고 햇살만 따뜻했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민가도 잘 보였다. 맞은편 비탈에 빤히 보이건만, 그 집에서 이 집으로 오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그만큼 산이 육중하고 골이 깊다.

 

총누리는 집주인을 찾으러 나가고, 나는 화덕 주변에서 노는 어린아이들과 저녁을 준비하는 페마, 그리고 집안의 집기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사진을 찍었다. 페마는 감자를 광주리에 담아 와서 칼로 자르고, 물을 받아 씻고, 장작을 가져다 화덕에 넣고, 후후 불어서 불꽃을 피우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감자를 볶는 틈틈이 내 잔의 막걸리가 비면 막걸리를 채워주고, 차가 비면 차를 따라주었다.

 

그만 먹겠다, 됐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자꾸 다시 채웠다. 고사리 손으로 손님을 챙기는 어린 보살의 친절이 가상하여 주는 대로 잔을 비우니 슬슬 취기가 올랐다. 중간에 총누리가 담배를 사다주고는 자기 집에 잠시 다녀온다며 다시 나갔다. 살던 동네에 왔으니 인사 다닐 데가 많겠다 싶었다. <계속> 

 

 

눈이 녹으면서 드러난 숲 속의 풀꽃들. 
그늘진 곳에 쌓인 눈.  
아름드리 주목 숲과 랄리구라스가 잘 어울어진 킹쿠르딩 곰파 주변의 숲. 
눈 쌓인 뎀바단다 능선의 마네를 향해 총누리가 걷고 있다. 
점심 먹은 덜카르카 민가의 부엌. 
왼쪽부터 밧(쌀밥),  달(녹두죽), 꼬도락시(기장 소주), 머히(일종의 요구르트).  
덜카르카로 내려가기 전에 만난 소년. 소를 방목하고 있다.  
덜카르카 마을에서 바라본 빠쁘레 마을. 
덜카르카 마을과 빠쁘레 마을 경계를 흐르는 시냇물에 놓인 다리. 다리 건너 잡목의 가지에 카닥을 묶어 놓은 뜻은 '잊지 않고 돌아오겠다'는 뜻이라고 총누리가 말했다.  
페마가 술잔에 채워준 먹거이 창(옥수수 막걸리).
페마. 1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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