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 부부가 소 두 마리의 힘을 빌려 쟁기로 밭을 갈며 씨감자를 심고 있다. 

 

앙 도로지의 옛집 2층 법당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 잠결에 소변을 보려고 일어나다가 천장에 매달린 큰북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간밤에 집주인 앙 까미와 동네 친구들이 가져온 소주와 막걸리를 많이 마신 탓에 머리를 부딪치고서야 내가 잔 방이 법당인 줄 알았다. 어떻게 그 방에 와서 자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무척 많이 마셨나 보았다.

 

소변을 보고 올라와 보니 앙 까미의 어린 아들이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 세 아이가 솜이불을 말고 함께 자고 있었는데, 페마는 아이가 우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아이들 아버지 앙 까미가 저쪽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고 ‘페마를 불러 깨웠다. 페마는 그제서야 잠이 깨서 마치 엄마가 그러는 것처럼 익숙하게 아이를 안고 다독여 재우는 것이었다.

 

식전에 마을을 둘러보니 저녁에 볼 때보다 훨씬 정감 있고 정갈했다. 문전옥답을 갈다만 쟁기가 넘어져있는 것으로 보아 농번기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페마에게 양은 대야를 빌려서 그동안 배낭 속에 묵혀둔 세 켤레의 양말을 빨았다. 물이 아주 찼다. 물을 데워서 빨 생각도 해봤지만 열세 살 소녀도 찬물로 설거지를 하는 마당에 내가 더운 물을 쓰겠다고 하기는 뭣했다.

 

페마는 쌀을 씻어 안치고 아이들 옷을 빨기 시작했다.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가 셋이나 되니 빨랫감이 많았다. 아이들 옷이 하도 더러워서 빨래를 안 해 입히는 줄 알았는데 빨래를 하기는 하는 것이었다. 페마는 빨래를 하는 중에도 아래층에서 아이들이 우는 소리를 내면 내려가 보곤 했다.

 

내가 2층에서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아이들이 마당에 똥을 싸놓고 거기다가 장화를 던지면서 놀더니, 마침내 똥 위에 떨어진 장화를 가져오라며 울고 있었다. 이런저런 소동 끝에 페마가 빨랫줄에 빨래를 널 때 보니 손이 새빨갰다. 내가 양말 빨겠다고 더운물 찾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빨래를 널고 온 페마는 압력솥을 올려놓은 화덕 앞에 작은 몸을 구부리고 엎드려 후우우 바람을 불어 불길을 살렸다. 잠시 후에 치이익, 치이익압력솥에서 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몇 번 더 김 빠지는 소리가 난 후 페마는 압력솥을 내려놓고 감자를 씻었다. 조그만 칼을 찾아와 숫돌에다 썩썩 몇 번 갈더니 그것으로 감자를 썰어서 큰 냄비에 쏟아 부었다.

 

큰 냄비를 화덕에 올려놓고는 아궁이에 장작을 더 집어넣었다. 엎드려서 후우우 바람을 불어넣었다. 연기가 나서 눈이 매운지 눈을 비벼가며 몇 번 더 후우우 불자 불길이 일어났다. 감자 냄비에 약간의 기름을 부은 후 커다란 주걱으로 저어 볶았다. 고소한 냄새가 퍼지자  마당에서 햇볕을 쪼이며 놀던 강아지 같은 아이들이 계단을 기어올라 화덕으로 모여들었다.

 

앙 까미는 밭으로 일하러 나가고, 늦잠을 잔 총누리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총누리는 윗마을로 아랫마을로 우체부처럼 전달할 것이 많았다. 늙수그레한 셰르파 영감 한 명이 집으로 총누리를 찾아와 카트만두에 보낼 편지를 맡기고 갔다. 총누리는 편지를 가방 속의 자기 공책 갈피에 잘 접어 넣었다. 그리고는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린 페마가 얼굴 한 번 안 찌푸리고 정성껏 지어준 아침밥을 송구스럽게 먹고 나니 총누리가 왔다. 총누리는 자기 집에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옥수수 막걸리라도 대접하고 싶다니 같이 가자고 했다. 막걸리보다 총누리의 집이 궁금해서 총누리를 따라나섰다. 그의 집은 비탈 밑에 있었다.

총누리. 집에 와서 기쁜 표정이다. 

 

총누리의 아버지는 출타 중이었다. 그는 집 짓는 목수인데, 현재 쿰부의 남체 바잘에서 탐세쿠 롯지 증축 공사를 하고 있다 했다. 총누리의 어머니는 집 근처의 밭에 매놓은 여러 마리 소에게 여물을 주다가 우리를 보고 반겼다. 총누리의 집에는 총누리의 여동생과 아직 어린 남동생이 화덕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총누리의 어머니가 들어와 막걸리를 걸러 큰 사발에 부어주었다. 예의상 몇 사발 마시고 잠시 집 주변을 돌아보았다.

 

햇살 따스한 이른 봄이라서 주변 풍광이 아름다웠다. 골짜기 건너편의 육중한 산비탈에서 떨어지는 힘찬 폭포수가 선경仙境을 방불케했다. 푸른 밭은 밀밭이요, 갈아엎어 붉은 밭은 씨감자를 심어놓은 감자밭이었다. 총누리네 이웃집에서는 마침 씨감자를 심고 있었다.

 

남편은 두 마리 소를 앞세우고 소몰이 노래를 하면서 쟁기질을 하고,  아내는 씨감자를 담은 광주리를 메고 뒤따르며 쟁기가 낸 고랑 사이에 씨감자를 던져 넣었다. 씨감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수확하여 저장해둔 감자 중에서 굵은 것부터 골라서 먹고 나면 알이 작은 것들만 남는데, 이를 씨감자로 쓴다고 했다. <계속> 

 

부뚜막에 엉거주춤 서 있는 사람이 이 집에 사는 앙 까미 셰르파. 
페마. 
빠쁘레의 전형적인 농가. 부인과 아이들은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총누리의 부모가 농사 지으며 사는 집이다. 푸른 밭에는 보리가 자라고, 누런 밭은 이제 감자를 심을 철이다.   
가까이에서 본 총누리의 집. 
총누리의 어머니가 옥수수 막걸리를 주물러 짜는 모습.  
씨감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굵은 감자를 골라먹고 남는 작은 감자가 씨감자다. 
총누리의 어머니가 가축에게 줄 먹이를 안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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