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루곰파 - 자프레바스 - 캄딩 - 시사콜라 - 메라딩 - 비따카르카

자프레바스에서 본 피케.   

 

시계의 중심에 피케를 놓고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걷기 시작한 첫날은 9시 방향에서 피케를 봤다. 그 고개의 지명은 데우라리였다. 거기서 6시 방향으로 내려와 빠쁘레에서 이틀을 묵었고, 다음날인 2월 28일에는 5시 방향의 자프레 바스에 도착했다. 위 사진은 자프레바스에서 바라본 피케의 모습이다.  

피케의 남동쪽 비탈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똘루 곰파에서 겪어 봤듯이, 밑에서 보기에는 희끗희끗한 눈도 막상 현지에 가 보면 무릎 이상 빠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피케의 북쪽 기슭인 람주라라(12시 방향)에서 피케에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가능하려면 텐트와 식량, 그것들을 운반할 한 두 명의 포터, 그리고 고생할 각오와 비용이 필요했다. 나는 피케에 올라볼 생각을 완전히 포기했다.

자프레 바스의 주막에는 나그네들이 많았다. 대부분 짐꾼들이고 그 중 한 사람은 그 동네 사람 같았는데 술에 취해 사나운 말을 함부로 하고, 아무에게나 괜한 말을 걸며 지분거렸다. 우리는 있을지도 모르는 말썽을 피하기 위해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밥을 기다렸다. 

오후 내내 별로 먹지도 못한 채 눈 속을 걸었기에 몹시 피곤하고 시장했던 우리는 일찌감치 이층의 제일 구석진 마루방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아래층에서 우당탕하는 소리와 병 깨지는 소리, 여자의 비명 소리가 났지만 내려가 보지 않았다. 보나마나 그 술 취한 자가 기어이 소란을 피운 것일 터였다. 마당에서 몇 마디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나기에 창밖을 내다보니 그 주정뱅이는 벌써 돌아서서 마을 어귀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층에서는 빗장을 지르는 소리가 사납게 났다.

31일 아침, 이슬비가 오락가락 하는 중에 피케 영봉과 주변의 풍경 등 몇 컷의 사진을 찍는데 카메라 작동에 이상이 있었다. 배터리가 다 되어서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배터리를 갈았으나 이번에는 아예 작동이 안 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물이나 습기에 아주 약하다. 조금만 물기가 닿아도 작동이 멈춘다. 

전날의 눈보라와 이날 아침의 이슬비가 카메라 내부에 스며 고장을 일으킨 것이었다. 카메라는 하나뿐이었다. 산중이라 카메라를 고칠 데도 없었다. 총누리는 이 날 중에 갈 수 있는 살레리나 파부루의 사진관에 가면 고칠 수도 있다고 했으나 그건 디지털 카메라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였다.

자프레 바스의 셀파 호텔에서 라면을 먹고 출발했다. 점심때부터 이슬비가 내렸고, 카메라가 망가졌고, 몸은 지쳤다. 카메라가 망가졌으면 메모라도 충실히 해야 했는데 다 귀찮았다. 2주일 일정 중에 1주일이 지났으니 순례의 한가운데 있었던 셈인데 지쳐버렸고 몹시 우울했다. 순례를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만일 카메라가 멀쩡했다면 아무리 지쳤어도 순례를 포기하고 돌아갈 생각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 많은 위안을 얻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의 몰입 상태가 피로를 잊게 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보람을 느꼈다. 산길을 걷는 자체만으로 흡족할 수도 있지만 인적조차 없는 산길은 사흘만 걸어도 진력이 난다. 사흘을 넘어서면 뭔가 다른 자극이나 심취할 무엇이 필요했다.

산길에서 만나는 풍경과 인물 혹은 마을이 그런 자극이며 심취할 무엇이다. 내 경우는 그것을  기록할 때 극대화 된다. 여행 중에는 그저 한가롭게 바라보아야 깊이 느낄 수 있으며, 그 순간의 느낌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자신도 때로는 뭔가 찍고 쓰는 일이 수선스럽고 방정맞게 느껴지고 귀찮을 때도 없지 않다. 그리하여 기록을 포기한 적도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후회스러웠다. 왜 기록하지 않았는가, 왜 사진을 찍지 않았는가? 하며 안타까워하게 됐다.

캄딩이라는 마을에서 차를 마시고, 이른 점심도 먹고, 시사 콜라와 메라딩을 거쳐 비따 카르카에 이르러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총누리는 '비가 와서 길도 미끄럽고, 이미 많이 걸었으니 이 마을에서 묵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두 시간을 더 걸어야 하는 파부루까지 가기를 고집했다.

비는 오다 말다 했고, 비탈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개울 하나만 건너 비탈을 오르면 거기가 솔루쿰부의 행정 중심인 살레리이고, 파부루는 살레리에서 십리도 못 되는 이웃마을이다. 게다가 파부루에서는 카트만두를 잇는 국내선 여객기를 이용할 수 있다. 만일 다음날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가 있고 그 비행기를 탈 수만 있다면 카트만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카트만두에 가서 카메라를 다시 장만하고, 눈이 녹은 다음에 비행기로 파부루로 와서 곧장 피케 영봉을 향해 오르고 싶기도 했다. 파부루는 한정된 시일 내에 피케를 순례하려는 단체 순례자들이 비행기로 날아오는 중요 거점이라고 들었다. 그들은 피케의 세 시 방향인 파부루에서 피케 영봉에 올랐다가 아홉시 방향인 겐자로 내려서는 코스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계속>

 

자프레바스 초입의 마네.  

 

무거운 짐 지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청년들과 필자. 총누리 셰르파가 찍었다.    

 

피케 능선 너머로 설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이 날은 먹구름이 가렸다. 

 

자프레바스의 곰파 벽에 붙어있는 관광지도. 지도에 피케는 표시하지 않았다. 

 

자프레바스에서 내려오다 만난 꽃. 올라올 때도 그랬듯이 먼저 향기를 맡은 다음 꽃을 보았다. 내가 맡은 향기는 이 꽃이 풍기고 있었다.  

 

왼쪽 나무에 핀 빨간 꽃이 랄리구라스. 랄리구라스는 네팔의 국화國花.

 

남편은 소와 함께 쟁기로 밭을 갈면서 앞으로 나가면 부인은 따라가면서 씨감자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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