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 마야의 친정 동생인 남겔과 남겔의 딸.  

우리는 이날 살레리를 거쳐 파부루까지 강행군했으나 파부루에 도착했을 땐 항공사 사무실 직원이 문을 잠그고 퇴근해 버린 후였다. 항공사 사무실 이층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주인에게 비행기 편을 물어보니 다음날 아침에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가 있기는 있는데 좌석이 있을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3월 2일 금요일 새벽은 몹시 추웠다. 전날 오후부터 뿌리기 시작한 비가 새벽에 그치더니 찬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설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침낭 속에 있는데도 무릎이 시렸다. 롯지 1층의 국내선 여객기 사무실은 날이 밝자마자 문을 열었고, 우리가 묵은 게스트 하우스와 주변의 숙소에서 묵었던 탑승객들이 짐 보따리들을 들고 그 사무실에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무실 직원에게 좌석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나온 총누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보시다시피 승객이 밀려 있어서 이 날 탑승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음 비행기는 월요일에 있으며 오늘 미리 예약을 해야만 탈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우선 월요일에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리고 파부루에서 하루거리에 있는 마을인 준베시 북쪽의 팡가르마에 다녀와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팡가르마는 우리 식당 소풍의 주방장인 앙 마야의 친정이 있는 마을이다. 이번 피케 순례 때 앙 마야에게 우리의 순례 일정을 이야기했더니 앙 마야는 팡가르마에 있는 자기 친정에서도 며칠 묵고 오라고 했었고 나는 반드시 들렀다 오겠다고 대답했다.

앙 마야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전에 우리집에 와서 묵고 간 일이 있었다. 또한 앙 마야의 남동생 남겔도 카트만두에 볼 일이 있어 나올 때마다 우리 식당에 들르곤 했다. 남겔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5년 겨울, 그가 카트만두에 난로를 사러 나왔을 때였고 우리가 아직 카트만두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남겔은 팡가르마 바로 위 언덕에 있는 푹무체 곰파의 히말라얀 셰르파 부디스트 스쿨의 교장이었다.  

파부루를 떠나 준베시로 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일행이 된 현지 여성이 한 명 있었다. 나이는 기껏해야 스물다섯 가량으로 보였고, 작은 키에 똥똥한 몸집인 그녀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있었는데, 몸집에 비해 걸음이 가벼웠다. 전에 산에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혹시 싶어서 물어 봤더니 내 짐작이 맞았다.

그녀는 포카라에 있는 여성 전문 트레킹 회사의 가이드였다. 이름은 찬드라 꾸마르 라이. 내가 그녀 회사 사장의 이름이 미스 럭키 체트리 아니냐고 했더니 맞는다고 했다. 나는 여러 해 전에 럭키와 찬드라를 쿰부의 몬조 근방에서 만난 적이 있었고, 그 때 럭키의 명함을 받아 두었었다. 찬드라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찬드라는 지난겨울 동안 파부루에서 하루거리에 있는 높은 산중의 고향 마을에서 지내고 이제 일을 하기 위해 포카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개울가의 마을인 베니에서 함께 차를 마신 후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람주라라를 넘는 지름길로 가고, 우리는 준베시를 향한다고 생각하고 총누리를 따라 들어선 길이었는데 길이 육중한 산굽이를 향하여 멀리 에돌고 있었다.

앞서 가는 총누리를 불러 세우고 지도를 펼쳐 놓고 보니 우리가 가는 길은 준베시로 곧장 가는 길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준베시에는 볼일이 없고 쿰부 쪽으로 곧장 가야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었다. 즉 총누리가 택한 길도 준베시로 가기는 하지만 산굽이를 멀리 에돌아서 가는 길이었다. 찬드라가 간 길은 람주라라로 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준베시로 가는 길도 그 길이었다. 총누리에게 물었다.

- 왜 이 길로 가느냐? 혹시 이 길은 처음 아니냐?

총누리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후련하고 경치 좋은 길로 휘휘 돌아서 준베시로 갈 작정이었다고. 그러나 그것은 변명이었다. 그 길로 가면 그 날 해가 진 뒤에나 준베시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니 총누리는 그 때 내가 찬드라를 만나 반갑게 이야기하는 것에 어떤 종류의 질투나 경계심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총누리는 체트리들을 가장 경계하고, 그 다음에는 라이를 경계했다. 총누리는 그들이 내게, 혹은 내가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은근히 저지하곤 했다. 총누리는 자기가 잘 알고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동네 사람이 아니면 같은 셀파라고 해도 지나치게 경계하는 촌놈이었다.

총누리는 내가 앙 마야의 친정인 팡가르마에 가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앙 마야의 동생이 운영하는 학교를 방문하기보다 준베시의 호텔에서 묵고 파부루로 돌아가기를 은근히 원했다. 전에는 되도록 총누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 주었지만 이 갑갑한 길동무에게 어지간히 지쳤던 나는 총누리더러 내 결정을 따르라고 말해야만 했다.<계속> 

 

 

앙 마야의 친정 어머니와 언니.  

 

앙 마야의 친정 어머니. 

 

앙 마야의 친정 언니. 
 
사진 중앙이 팡 가르마 마을이다.  

 

앙 마야의 고향인 팡 가르마의 친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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