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힌두의 시바 신과 관련된 호리(HOLI)축제가 있는 날이어서 거리가 소란스러웠다. 특히 남녀 학생들은 붉은 물감을 물에 타거나 물감 가루가 든 봉지에 들고 다니면서 서로의 얼굴과 옷에 뿌리거나 문지르는 장난을 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설산이 룸불 히말, 골짜기의 마을이 준베시이다. 

 

가이드 북 [Trekking in the Everest region / Jamie Mcguinnes : Trailblazer Publication / 2002]에 의하면, 준베시는 남체 가는 길목의 셀파 마을들 중에서 가장 쾌적한(pleasant) 마을들 중의 하나라고 했다. 맛있고 신선한 빵과 피자와 사과 주스와 사과술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준베시의 서양식 롯지들은 대부분 문을 닫은 채 퇴락하고 있었다. 시즌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이른바 해방구였던 지난 3년 동안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 외국인은 팡가르마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서양 젊은이들 한 쌍 뿐이었다. 그들은 툽텐 체링 곰파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다가올 총선을 무난히 치른 후 네팔 정국이 안정 되면 준베시는 다시 관광 명소로 각광 받게 될 것이다. 한나절 거리에 국내선 공항이 있고, 쿰부로 가는 길목이며, 피케 영봉과 설산 룸불 히말로 접근하는 기점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툽텐체링 곰파와 체왕 곰파 등 유명한 곰파도 가까이 있다. 이 지역 주민 자치 단체에서는 정부 관광청의 지원 하에 피케 영봉과 룸불 히말의 베이스 캠프를 둘러보는 패키지 트레킹을 각종 신문과 포스터를 통해 광고 하고 있었다.

 

팡가르마에서 하루 자고 이튿날 푹무체를 돌아본 우리는 비교적 번듯한 주막집인 어느 롯지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34) 넘어야 할 고개 람주라라(해발 3530 미터)가 만만치 않아 걷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앙 마야네 친정 식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푹 쉬기 위해서였다.

호리 축제의 준베시 마을 학생들. 서로의 얼굴에 붉은 물감을 칠해주는 장난을 즐기고 있다.       

 

이 날은 힌두의 시바 신과 관련된 호리(HOLI)축제가 있는 날이어서 거리가 소란스러웠다. 특히 남녀 학생들은 붉은 물감을 물에 타거나 물감 가루가 든 봉지에 들고 다니면서 서로의 얼굴과 옷에 뿌리거나 문지르는 장난을 하고 있었다. 여장을 푼 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은 접었다. 전에 다질링에 살 때 경험한 바에 의하면 호리 축제 때에는 대마에서 추출한 환각제의 일종인 방을 먹고 미쳐서 외국인에게도 물감을 뿌려대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불교도들인 셀파 마을에도 힌두의 이러한 풍습이 들어온 것은 네팔이 힌두를 국교로 표방한 유일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최근 게넨드라 왕이 물러나고 공화국이 되면서 더 이상 힌두 국가가 아니게 되었지만 힌두교도들이 여전히 이 나라의 지배 세력인 한 힌두의 풍습은 젊은 세대들을 통하여 산중의 셀파 마을에도 점점 깊이 침투할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 중에는 불교의 계율과 풍습을 굳게 지키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팡 가르마에 사는 앙 마야의 어머니는 물론이요, 우리가 묵은 롯지의 주인도 그런 여성이었다. 그녀는 식당에서 육류도 팔지 않았다. 산중이라 육류를 팔거나 먹으려면 직접 도살하거나 남에게 도살을 시켜야 하는 실정인데 이는 계율에 어긋나기 때문에 아예 취급을 안 한다고 했다.

 

준베시 게스트 하우스의 부엌과 여주인.   

 

술은 왜 파느냐고 했더니, 이곳 셀파들의 풍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지, 자기네 식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옥수수 막걸리 맛이 다른 집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기품 있어 보이는 부인은 식탁에 앉아서 담배 피워도 되냐고 물었더니 될 수 있으면 밖에서 피워 달라고 했다. 전날 남겔네 집에서 내가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남겔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 아직 이 방에서 담배를 피운 사람은 없었지만 엉클이 피우고 싶다면 한 대 태우세요.

이 말을 듣고서 태연하게 담배 불을 댕길 수는 없었다. 밖에 나가야 했다. 춥고 바람 부는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며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묵었던 거의 모든 셀파 호텔에서 담배를 피운 건 나 혼자였다.

 

람주라라를 향해 언덕을 오르자 어느덧 발밑에 준베시가 보이고 푸른 하늘 밑에는 설산이 보였다. 지도를 살펴보니 그 산이 룸불 히말이었다. 15년 전에 푹무체에 학교를 세운 독일인 부부가 맨 처음 푹무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바로 룸불 히말 트레킹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룸불 히말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룸불 히말을 향해 합장했다.<계속> 

 

우리가 묵었던 여인숙과 담장 사이 골목길. 행인의 뒷모습이 보이는 저 길은 팡가르마 가는 길이기도 하다.  

 

마오이스트 공산당 선전물이 걸려 있는 준베시 곰파의 일주문. 

준베시 인근의 여러 명소로 통하는 갈림길에 세운 이정표.  

 

새벽에 여주인이 피운 향로. 우리가 떠날 때까지 향로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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