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따라 내려가면 내려 갈수록 랄리구라스 꽃이 점점 탐스러워졌다. 길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을 거슬러 눈을 들면 우리가 묵었던 세테 마을이 새둥지처럼 보이고 그 위로 우리가 넘어온 람주라라도 희끗하게 보였다. 목을 돌려 남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흰 눈 쌓인 피케가 보였다.

겐자의 동구에 서 있는 일주문. 마오이스트 공산당의 구호가 적혀있다. 

 

겐자의 가게에서 일어설 때 락시미는 내 배낭을 들러 메었다. 거들어 주겠다는 뜻이었다. 안 된다, 이리 내라 해도 말을 안 듣더니, 튼튼한 어른이 어린 소녀에게 배낭을 지게 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고 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배낭을 벗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겐자 동구에는 마오이스트 공산당이 세운 아치형 문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낫과 망치를 겹쳐 놓은 공산당 심벌과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슬로건이 붉은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바로 앞에는 총을 들고 서성이는 전투 경찰들의 초소가 있었다. 이는 마오이스트 공산당과 경찰이 공존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들의 공존 상태가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항구적 평화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이기를 빌었다.

 

다리를 연거푸 두 번 건너고 산허리를 에둘러 기나긴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탐스러운 붉은 꽃을 가득 피운 랄리구라스 나무가 서 있고 그 밑에 앞서간 락시미가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락시미는 길가에 있는 허름한 집을 가리키며 더히(요구르트의 일종)를 파는 집이라고 알려 줬다. 더히를 두 컵 씩 사먹었다. 아주 시원하고 맛있었다.

네팔의 국화 랄리구라스. 

 

 

길을 따라 내려가면 내려 갈수록 랄리구라스 꽃이 점점 탐스러워졌다. 길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을 거슬러 눈을 들면 우리가 묵었던 세테 마을이 새둥지처럼 보이고 그 위로 우리가 넘어온 람주라라도 희끗하게 보였다. 목을 돌려 남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흰 눈 쌓인 피케가 보였다.

 

또 다시 나풀나풀, 나비처럼 가볍게 앞서가던 락시미는 초파일 날 절가는 길의 연등처럼 랄리구라스 꽃이 일제히 핀 길모퉁이에 멈춰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퉁이를 돌자 대여섯 채의 작고 허름한 판잣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밤띠라는 동네인데, 길가의 맨 첫집이 락시미의 집이었다. 락시미는 우리에게 밥해 줄 테니 먹고 가라고 했고, 나는 이 꽃 피는 산골에서 락시미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싶었는데 총누리가 조금만 더 가면 큰 식당이 나온다며 말렸다.

 

락시미네 동네 밤띠. 누군가 우스운 소리를 하자 다같이 웃는다.  

 

아까 찍은 사진을 보내줄 락시미의 주소를 적고 손을 흔들며 작별하는데, 길가에 탁자를 놓고 앉아 있던 부인들 중 한 부인이 나에게 농담을 던졌다.

 

-요 깐치 따바이꼬 데스마 라헤라 비아 거르누스.

 

부인들이 일제히 까르르 웃었고 락시미는 그 부인들에게 눈을 흘겼다. 부인의 농담은 이 소녀를 당신 나라에 데려다가 결혼하세요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아마 내가 네팔 말을 전혀 모르는 줄 알았을 것이다. 이 날은 35일이었다. <계속> 

 

 

팔기 위해 길가를 향해 내놓은 삶은 고구마와 물과 컵. 

 

궁벽진 곳에서 고단한 삶을 살지언정 남향집이라서 햇빛은 풍족하게 받는다. 

 

건너편 산비탈의 마을과 경작지.

 


붉은 꽃을 피운 랄리구라스 나무 너머로 피케 능선이 보인다.  

 

 
길가에서 본 랄리구라스. 
힘겨운 짐을 지고 걸어오는 나그네에게 꽃그늘을 드리워주는 랄리구라스 나무. 

 

락시미네 동네인 밤띠 마을에는 랄리구라스꽃이 피는데 피케 능선에는 눈이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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