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주춤 절벽 끝으로 여자는 발을 옮기고 있었다.
“별들은 죽은 자에게는 말을 걸지 않아요.”

▲그날 그 섬 절벽 끝에 죽으러 온 여자가 피사체로 서 있었다. 사진=정재승
▲그날 그 섬 절벽 끝에 죽으러 온 여자가 피사체로 서 있었다. 사진=정재승

가거도는 말 그대로 살 만한 섬이었다. 약수가 흐르는 아름다운 난대수림을 거느린 독실산은 해무에 묻히곤 했다. 그날 그 섬 절벽 끝에 죽으러 온 여자가 피사체로 서 있었다. 민박집에서 어제 얼핏 본 삼십대 여자였다.

소흑산도 등대로 가는 길은 폐가 몇 채를 지나 높은 바람벽에 둘러싸인 윗마을을 지나야 했다. 인적 드문 마을을 지나고 아찔한 낭떠러지 길을 걸어 오르면 후박나무숲이 나타났다. 어두컴컴한 숲을 빠져나오자 하얀 등대가 솟아 있었다.

나는 뙤약볕이 내리는 등대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등대 아래 백 미터 남짓한 절벽이 솟아있었고 그 끄트머리에 여자가 해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일몰을 앞둔 오후, 섬 바람에 그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주춤주춤 절벽 끝으로 여자는 발을 옮기고 있었다. 낙화하기 직전이랄까. 긴장감이 흘렀다. 늦기 전에 나는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여자에게 다가갔다.

“잠깐 기다려요.”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거기 그대로 잠깐만.”

여자가 돌아보았다. 내가 급히 어깨를 붙잡은 탓에 놀란 여자는 내 팔을 잡았다. 바람이 내 얼굴을 때렸고 얼핏 나는 그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해는 수평선으로 기울어 구름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인생에 마침표를 찍으러 이 섬으로 들어왔던 것일까.

우리는 말없이 석양의 장관을 바라보다가 등대가 있는 절벽에서 내려왔다. 나는 여자를 건넌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녀를 부축하고 낭떠러지 길을 살펴오느라 지친 나는 초저녁 단잠이 들었다.

“주무시오? 밥 묵어야지.”

나는 주인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났다. 저녁을 매식하기로 한 것을 잊고 잠이 든 것이었다.

“아따, 죽으면 잠만 디립다 잘 것인디 먼 잠을 그리 잔다요.”

주인아저씨가 타박했다.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당께.”

내게 남은 것은 섬에서 보낼 사흘이라는 시간뿐이었다. 내일이면 섬을 떠나야 했다. 마당에 놓인 식탁에서 나는 여자를 다시 만났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었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나도 왠지 말 붙이기가 서먹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여닫는 건넌방 문소리가 들렸다. 나는 달빛이 흔들리는 밤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파도 소리를 머리맡에 두고 누웠다.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새벽까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해기사가 되어 외항선을 탈까, 일용직 막노동판을 기웃거릴까, 사무직으로 되돌아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공무원이나 될 걸.

나는 지난 시간을 되짚었다. 군대 있을 때 장기 부사관으로 눌러앉을 걸 그랬나, 아니면 경찰관 시험을 그때 준비할걸 그랬지. 그 많은 기회를 차버리다니. 어리석은 놈, 평생 남의 밑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건넌방에서 여자 우는 소리가 들렸다. 파도 소리에 섞인 울음은 이어지다 끊어지곤 했다.

▲새벽이 올 때까지 파도 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사진=박시우
▲새벽이 올 때까지 파도 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사진=박시우

여자도 살아갈 의욕을 잃은 걸까. 그래서 외딴섬에서 생을 마감하려는 걸까. 나에겐 죽을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아등바등 살아갈 궁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주병과 감자 칩을 들고 여자가 웅크리고 있을 방문을 두드렸다.

“술이나 한잔하죠. 지붕 위 평상으로 오세요, 반달이 떴습니다.”

우리는 잔잔한 바람이 부는 계단 길을 올라 민박집 지붕 옆 평상에 앉았다. 불 밝힌 랜턴을 소주병 뒤에 놓자 은은한 조명이 들어왔다. 잠시 후 여자가 평상으로 올라왔다.

“아까 절벽에서 정말로 뛰어내리려고 그런 거예요?”

나는 소주잔을 건네며 물었다.

“누구나 한번 갈 길인데, 일찍 가면 염라대왕이 표창장이라도 준답니까? 죽는 게 무섭지 않아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던가. 여자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나는 밤하늘을 보았다. 은빛 소금을 뿌려놓은 듯 수많은 별이 흐드러졌다. 나는 평상에 드러누웠다.

“저기 북두칠성이 보여요.”

반달이 사라지자 더욱 선명해진 별들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풍광도 멋지고, 별도 쏟아지고, 후박나무숲이 몸에 좋은 약수도 흘려보내는 섬입니다. 존경한다, 가거도야.”

섬, 별, 후박나무숲에 경의를 표하듯 나는 소리쳤다.

“참 별 볼일 없이 살았네요.”

“아, 정말 별이 쏟아질 것 같아요.”

여자가 낮게 말했다.

용기를 내라고, 희망을 품으라고, 나는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여기 누워서 별을 보세요.”

나는 평상 위의 술병과 종이컵을 평상 한구석으로 모으며 말했다.

“별들이 살아있는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별들은 죽은 자에게는 말을 걸지 않아요.”

북극성, 큰곰자리, 물고기자리, 처녀자리……. 나는 별자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자와 나는 나란히 누워 무수한 별들을 말없이 바라다보았다. 안개가 바다에서 몰려올 때까지 몇 번인가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세상은 가히 살만한 각자의 섬을 품고 있기 마련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다 나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해무에 취해 잠이 들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 하는 밤안개 속에서 나는 여자를 안아주고 이마에 입맞춤하는 꿈을 꾸었다. 깨어나니 여자는 방으로 들어간 후였다. 새벽이 올 때까지 파도 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아침 해가 섬과 섬 사이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배낭을 꾸리고 여객선을 타기 위해 포터 트럭 짐칸에 올라탔다. 여자 방 앞을 지날 때 안위가 잠시 궁금했지만 내 여정을 가야 했다. 이번에는 대흑산도를 거쳐 홍도 이구마을에 며칠 머물다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트럭에 시동이 걸리자 방에서 나온 여자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손을 내밀자 여자가 선뜻 맞잡았다. 손이 풀리자 트럭 위에서 나는 외쳤다.

“죽고 싶으면 내게 전화하세요. 나도 죽으러 올 테니까!”

여자는 멀어지고 나를 태운 트럭은 산기슭을 올랐다. <끝>

박인 작가의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스마트 소설은 빠르게 변하는 일상에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초단편 분량의 소설을 말합니다. 『문학나무』 신인상을 수상한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한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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