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케 기행 32 ] 박쿠레와 뚜뚜레
[ 피케 기행 32 ] 박쿠레와 뚜뚜레
  • 김홍성 시인
    김홍성 시인 ktmwind@naver.com
  • 승인 2019.05.1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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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쿠레를 떠나자 숲 속에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를 헤치며 반시간 정도 걸은 후에 만난 동네가 뚜뚜레였다. 뚜뚜레의 '뚜뚜'는 바위틈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지는 소리. '레'는 숲 또는 어떤 장소. 그러니까 뚜뚜레는 '마실 물이 귀한 숲'을 의미했다.
숨이 차서 자주 멈춰서야 했는데, 멈춰 서서 돌아볼 때마다 앞산 너머 설산이 쑥쑥 커지고 있었다.

 

산비탈 따망 마을의 주막집 남매. 

 

 

박쿠레보다 한 층 더 높은 마을인 뚜뚜레에서 2006년에 내려 왔다는 외딴 주막집 식구들. 

 

뚜뚜레로 올라가면서 내려다 본 박쿠레의 주막집. 

 

밤중에 온 사내들과 소년들은 날이 새기 무섭게 행장을 꾸려 비탈길을 내려갔다. 두 시간 후, 우리가 마일리 가웅의 바스넷 씨 집을 떠날 때 바스넷 씨의 외동딸은 광에서 맷돌로 옥수수를 갈고 있었다. 선물로 줄 게 없어서 볼펜, 연필, 색연필 등이 든 내 필통을 줬더니 예쁘게 웃었다.

길은 경사가 급한 산비탈 경작지 사이로 이어졌다. 숨이 차서 자주 멈춰서야 했는데, 멈춰 서서 돌아볼 때마다 앞산 너머 설산이 쑥쑥 커지고 있었다. 산비탈 따망 마을의 주막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일어서 걸으니 길은 아름드리 전나무 숲속으로 이어졌다. 서너 아름으로도 모자랄 거목들이 빽빽한 숲은 어둑하고 신령스러웠다. 길은 랄리구라스 숲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기도 했다. 이곳의 랄리구라스는 4월 초순에 꽃망울을 터뜨린다고 했다.

1240분에 박쿠레라는 전나무 숲속에 도착했다. 박쿠레라는 지명은 '호랑이(박쿠) '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박쿠레보다 한 층 더 높은 마을인 뚜뚜레에서 2006년에 내려 왔다는 외딴 주막집에서 소찌아(버터 티)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여주인 푸루바 셰르파는 55, 그녀의 스무 살도 안 된 딸은 젖먹이에게 탐스런 젖을 물리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우리가 마일리 가웅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면 이곳 박쿠레의 주막집에서 묵었을 것이었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의 해발 고도는 약 3200 미터. 마일리 가웅의 해발 고도는 약 2200 미터이므로 약 5시간 동안에 등고선 열 칸을 오른 셈이었다. 만일에 대비하여 김 선생은 고산병 예방약을 먹었다.

 

지름이 사람 키 만한 거목이 쓰러져서 길을 막았던가 보다. 톱으로 중간을 잘라내서 뚜뚜레 가는 길을 열었다.  

 

뚜뚜레의 목공예 공방집 소녀. 

 

뚜뚜레에서 따굴릉 가는 길은 랄리구라스 숲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해발 3천이 넘는 고원지대에서 자생하는 꽃. 

 

박쿠레를 떠나자 숲 속에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를 헤치며 반시간 정도 걸은 후에 만난 동네가 뚜뚜레였다. 뚜뚜레의 '뚜뚜'는 바위틈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지는 소리. ''는 숲 또는 어떤 장소. 그러니까 뚜뚜레는 '마실 물이 귀한 숲'을 의미했다. 뚜뚜레를 지나가는 길가에 집이 두 채 있는데, 한 집에서는 사내 둘이서 커다란 나무 상자를 만드는 중이었다. 다른 한 집의 창에서는 어린 소녀가 동그란 얼굴을 내밀고 순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숲을 빠져 나오자 안개 자욱한 능선이 나왔다. 지도를 보니 이 능선은 피케로 이어지는 능선이었다. 안개 속에서 외딴집이 희미하게 보이고 거기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발 3412 미터의 고원지대인 이곳이 이 날 우리의 목적지인 따굴릉이었다.

따굴룽은 4월부터 9월까지 야크(고산에 사는 소의 일종. 암컷은 '나크'라고 부른다)를 방목하는 방목지라고 했다. 이 날은 1031일이었으니 벌써 한 달 전에 다들 철수한 것이었다. 그런데 딱 한 집은 이곳에서 겨울을 나며 주막집을 겸한다고 했다. 개 짖는 집이 바로 그 집이었다.

따굴릉의 카지 셰르파가 우유통 속에서 버터를 추출하고 있다. 

 

카지 셰르파(45)와 세 자녀. 

슬하의 7남매 중에서 장녀 페마 셰르파(16) 등 딸 셋을 데리고 올라와 소 18 마리를 방목하는 카지 셰르파(45)가 주인장이었다. 도무지 말이 없고, 한 두 마디 하더라도 아주 나직하게 말하는 이 사내의 부인 밍마 셀파(41)는 나머지 자식들(22)과 함께 불부레(해발 3,441 미터)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고소 적응을 위해 다음날 불부레로 가서 또 하루를 묵기로 했다. 따굴룽에서 약 두 시간 거리였다.

카지 셰르파는 농막에서 버터를 만들고 있었다. 똘룸이라고 부르는 원통형의 나무통에 소젖을 붓고 꼴루라고 부르는 일종의 피스톤으로 피스톤 질을 해대면 기름 때 같은 게 뜨는데, 이것을 건져서 손으로 뭉치니까 버터 덩어리가 되었다. 산중의 외딴 집에서 감자 반찬에 쌀밥을 지어 먹은 것은 큰 복이었지만 이 날 밤 몹시 춥게 잤다. 벽을 댄 기다란 판자 사이로 소 외양간이 내다보이고, 안개가 스며들고, 한밤중에는 별빛이 스며드는 헛간에서 잤던 것이다.

이 날 밤 역시 온 몸에 산초 기름을 바르고 잤으나 소용이 없었다. 여기저기 수 십 군데를 물렸다. 특히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배꼽 쪽으로 열 몇 군데를 한 줄로 문 벌레는 아무래도 '재봉틀 빈대' 같았다. 재봉틀 빈대는 사람의 살갗에 재봉틀이 누빈 것 같은 상처를 뚜루루루루 남기는 아주 악랄한 빈대다. 이놈들이 문 자리들은 한 달 내내 가려웠고, 석 달 가까이 그 자리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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