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의 아래층은 감자나 옥수수를 저장하는 광으로 쓰고 있었다. 이층은 화덕이 있는 부엌이면서 거실, 그리고 손님 숙소도 겸하고 있었다. 옥수수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천정에는 전등도 달려 있었다. 전력은 파부루 마을 앞을 흐르는 솔루 콜라 강의 수력발전소에서 공급된다고 했다.

로딩 마을의 나니 마야 마갈(46세) 씨가 부엌 창턱에서 짜파티를 밀고 있다.ⓒ김홍성 

 

사진 전면 중앙에 있는 집이 나니 마야 마갈 씨의 집. 윗집은 나니 마야 마갈 씨의 친정 동생 티까람 마갈 씨의 집. 티까람 씨는 현재 카트만두에서 트레킹 가이드 일을 한다고 했다. ⓒ김홍성 
 

 

피케 동쪽 기슭의 로딩 마을. 구름이 가린 곳에 피케 봉우리가 있다. ⓒ김홍성   

 

오다 말다 하는 비를 맞으며 주인을 부르고 있자니 초로의 부인이 흙이 잔뜩 묻은 손을 털며 나타났다. 채마밭에 쭈그리고 앉아 김을 매다 온 것 같았다. 앙 다와 씨가 부인에게 숙식이 되겠냐고 물으니 그녀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쌀이 없다고 했다. 그녀의 생각에는 우리가 쌀 아니면 안 먹는 부자들이었던 거다. 내가 나서서 네팔 말로 거들어 봤다.

- 사우니, 써머시아 차이나. 하미레 알루 뻐니 카누 훈차, 먹거이 뻐니 카누 훈차. (부인, 문제없습니다. 우리는 감자도 먹고 옥수수도 먹습니다.)

내가 네팔 말을 하자 아낙네는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네팔리 바사 데레 람로 아운차. 까하 바타 시크누 바요? (네팔 말 아주 잘 하네, 어디서 배웠어요?)

- 네팔리 사티 하루 상가 락시 카누 벨라마 시까에꼬 툐. (네팔 친구들과 술 마시며 배웠어요.)

웃기려고 일부러 한 말이 아니라,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부인은 파안대소하였다. 앙 다와 씨와 서양 여성의 가이드도 웃었다. 가이드 청년은 왜 웃는지 몰라서 머쓱해 하는 서양 여성에게 웃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서양 여성도 웃었고, 서양 여성이 웃자 다들 다시 웃었다.

부인은 우리에게 아래 쪽 집의 이층을 가리키며 올라가 있으라고 하고서 서양 여성과 그녀의 가이드를 위쪽 집의 이층으로 안내한 뒤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화덕(이 지방에서는 화덕을 '줄로'라고 불렀다)에 불을 지피고 소찌아 끓일 준비를 하였다.

이 집의 아래층은 감자나 옥수수를 저장하는 광으로 쓰고 있었다. 이층은 화덕이 있는 부엌이면서 거실, 그리고 손님 숙소도 겸하고 있었다. 옥수수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천정에는 전등도 달려 있었다. 전력은 파부루 마을 앞을 흐르는 솔루 콜라 강의 수력발전소에서 공급된다고 했다.

 

로딩 마을의 한 부인이 가축에게 줄 옥수수단을 운반하고 있다. ⓒ김홍성   

 

나니 마야 마갈 부인이 자기 밭에 가꾸는 금잔화.ⓒ김홍성  

 

나니 마야 마갈 부인이 차를 만들기 위해 부엌 구석의 줄로(화덕)에 불을 살리고 있다. ⓒ김희수  

 

부인의 이름은 나니 마야 마갈. 나의 이모나 큰누님 연배인줄 알았는데 46세라고 했다. 그녀는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김 선생을 아들 같다고 했고, 나는 김 선생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지 동생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얼굴이나 체격이 남체에 사는 부자 셰르파들과 흡사하다고도 했다.

마갈은 셰르파, 라이, 림부, 구릉, 따망처럼 네팔 산악지대에 사는 몽골리언의 한 갈래이다. 무슨 사연인지 남편과는 헤어졌다고 했고, 외아들 빌 바하둘 마갈(18)은 카트만두의 대학생(11학년)인데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티베트에 갔다고 했다. 현재 그녀는 조카인 깔루 마갈(16)과 둘이서 살고 있는데, 그는 자폐아인 듯했다. 옆집은 나니 마야 마갈의 남동생 티까람 마갈의 집인데, 그는 현재 카트만두에서 트레킹 가이드 일을 한다고 했다.

서양 여성은 스위스의 어린이 재단에서 일한다고 했다. 이번 여행은 스위스의 장애 어린이들을 데리고 도보여행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한 여행이며, 일이 끝나면 일본을 거쳐 스위스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녀의 가이드는 따망 청년몇 달 전에 우리나라의 인천 지역에서 2개월을 체류하고 돌아왔다는 그는 우리말을 조금 했다.

- 한국 삼겹살 맛있어요. 많이 먹었어요. 소주 아주 많이 먹었어요.

- 한국사람 돼지고기 좋아해요

그는 1주일 후에 오는 티하르 명절 직전에 지리 장에 가면 토종 돼지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다고 우리 말과 네팔 말을 섞어서 말했다. 지리에서 토종 돼지고기 맛을 본 김 선생은 입맛을 다셨다.

 

서양 여성과 따망 청년은 이 날 아침 준베시에서 5시간을 걸어 이곳에 도착했으며, 다음날은 나울에 올라가서 자고 그 다음날 피케에 올랐다가 지리 쪽으로 빠질 계획이라고 했다우측부터 스위스 여성, 필자, 가이드. ⓒ김희수  

 

이 날 우리의 안주는 깍두기 겉절이. 채마밭에서 뽑아온 주먹만 한 무를 큼직하게 썰어서 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린 것이었다. 한국에서 김치 맛을 본 따망 청년이 이것을 보고 '김치!'라고 외치며 맛있다고 칭찬하자 다들 한 두 개씩 맛을 봤다.

서양 여성과 따망 청년은 이 날 아침 준베시에서 5시간을 걸어 이곳에 도착했으며, 다음날은 나울에 올라가서 자고 그 다음날 피케에 올랐다가 지리 쪽으로 빠질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당분간 숙소가 적당치 않으므로 고생할 각오를 하라고 일러 줬다. 빈대나 벼룩 등 살을 깨물고 피를 빠는 벌레에 대한 대책은 있냐고 했더니 서양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작은 튜브를 꺼냈다.

그녀가 지닌 연고는 1회용 치약 크기였는데, 그것을 아주 조금만 짜서 손목 발목 등에 바르면 벌레가 덤비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잠시 후 자기 방에 가서 다 짜내고 조금 남은 튜브 연고를 두 개 가져다가 우리에게 하나 씩 주면서 말했다. 새 것을 하나 씩 주고 싶었는데 방에 가서 찾아보니 몇 개 안 남았더라고.

우리는 화덕 주변에 모여 앉아 비에 젖은 몸을 말렸다. 따끈한 소찌아를 마시고, 김이 나도록 데운 꼬도 락시를 마셨다. 저녁 식사는 밤이 되고 나서 거웅꼬 디히로(뜨거운 물에 반죽한 보릿가루)로 했다.

-, 이거야말로 선식이네요. 다이어트에도 그만이겠어요.김 선생은 처음 먹어보는 이 음식에 대해서도 조리법이 단순하고 맛이 담백하다면서 감탄했다. <계속> 

 

우기에 따서 말렸다는 버섯. ⓒ김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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