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아침을 먹고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작별했다. 마야 부인은 손님들의 목에 카닥을 걸어 주고 합장하여 우리 앞길의 평안을 빌어 주었다. 우리도 합장으로 답례하고 길 위에 올라섰다. 서양 여지와 따망 청년이 향하는 피케 쪽에는 구름이 엉켜 있었다.

 쌀 팔러 다니는 아버지를 따라 새벽부터 밤중까지 걸어온 셰르파 소녀 다띠. 나이를 물었더니 열 살이라고. ⓒ김홍성 

 

옆집 소녀 장무 셰르파(15세)와 셰르파 소녀 다띠.  ⓒ김홍성 

 

마갈 부인과 셰르파 소녀 다띠. ⓒ김희수 

 

이 날 밤 이 집에는 많은 손님들로 제법 북적였다. 우리가 디히로를 먹기 전부터 옆집 소녀 장무 셰르파(15세)가 와 있었다. 그녀는 일손을 도와주러 왔는지 오자마자 부엌일을 거들었다.

디히로를 먹고 난 후에는 독특한 행색의 아버지와 딸이 하룻밤 유숙을 위해 찾아 들었다. 좁끼오(야크와 물소의 교배종) 등에 쌀을 싣고 팔러 다니는 셰르파 부녀였다. 이들 부녀는 이 날 새벽에 고리(나울에서 차울라카르카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에서 출발하여 밤중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아버지를 따라온 소녀 다띠 셰르파는 열 살이라고 했지만 내 눈에는 일곱 살처럼 보였다. 조그맣고 귀여웠다.

너무나 생생하고 슬픈 꿈을 꾸면서 흐느끼다 깨어나니 새벽 세 시였다. 앙 다와 씨와 김 선생은 열심히 코를 골고 있었다. 살그머니 파카를 걸치고 마당에 나가보니 긴 띠구름이 겹겹이 밀려오는 동쪽 하늘에 실낱같은 그믐달이 떠있었다. 그 달은 난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조각배 같았다. 긴 띠구름 사이에 눈동자처럼 박힌 별들은 조금 전 내 꿈속 세상에 새삼스러운 빛살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뒷간에 다녀오고, 이도 닦은 후 다시 누웠는데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희미한 전등불 아래에 노트를 펼치고 날이 밝도록 일기를 썼다

 

마갈의 집 문 앞에서 기념사진. ⓒ김홍성 

 

준베시 가는 길. 서양 여지와 따망 청년이 올라갈 피케 쪽에는 구름이 엉켜 있었다ⓒ김희수 

 

가벼운 아침을 먹고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작별했다. 마야 부인은 손님들의 목에 카닥을 걸어 주고 합장하여 우리 앞길의 평안을 빌어 주었다. 우리도 합장으로 답례하고 길 위에 올라섰다. 서양 여지와 따망 청년이 향하는 피케 쪽에는 구름이 엉켜 있었다. 피케에는 이제 눈이 올 시기가 도래하였으므로 그 구름은 고생문苦生門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들이 어제 다섯 시간을 걸어왔다는 준베시로 향했다. 준베시 가는 길은 큰 고개를 하나 넘고, 개울을 건너고,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올라섰다가 다시 비탈을 내려가는 길이었다. 중간에 몇 군데 마을을 지났는데, 어느 마을에서는 밭을 갈며 감자를 파종하고 있었고, 어느 마을에서는 콩 타작을 하고 있었다. 감자 심는 마을의 소 모는 농부 한 명은 앙 다와 씨의 고향 사람이었고, 콩 타작하는 집의 노인은 앙 다와 씨의 먼 친척이었다.

 

꼬도(기장)나 콩을 타작하는 도구. ⓒ김홍성 

 

밭이나 마당에서 검불을 긁거나 소 잔등을 긁어 줄 때도 쓰일 듯한 도구. ⓒ김홍성 

 

셰르파 농부들이 시미라고 부르는 콩 ⓒ김홍성 

 

준베시 일대는 봄가을로 밭을 갈고 감자를 심는다. 그만큼 따뜻한 동네다. ⓒ김홍성 

 

준베시로 올라가는 언덕 밑의 다리. ⓒ김홍성 

 

전날 술을 많이 마신 탓에 길이 멀게 느껴졌다. 전망이 좋은 자리가 나오면 자주 쉬었다. 우리는 콩 타작하는 노인의 집에서 시미라고 부르는 콩을 삶아 먹었고, 소찌아도 한 주전자나 마시면서 허기를 달랬다. 나무다리가 있는 개울을 건너 준베시 쪽 비탈을 오를 때는 기침이 심하게 났다. 목구멍에서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비탈이 아주 심했고, 잠을 제대로 못자서 지쳤기 때문이었다.

준베시의 큼직한 게스트 하우스 '셰르파 가이드 롯지'에 도착했을 때는 몹시 지쳐 있었다. 땀에 전 옷을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낭 속에 들어가 한숨 자고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창 밖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자니 심란했다.

밤에 빗소리가 크더니 앞산 봉우리에 눈이 하얗게 왔다. 아침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현기증이 났다. 우리가 묵은 롯지는 넓고 크고 깨끗한 이층집이었다. 서양 노인이 젊은 셰르파 가이드와 함께 투숙하고 있을 뿐 방은 모두 비어 있어서 조용했다.

식당에는 주인인 늙수그레한 셰르파 부부와 심부름 하는 소년 한 명이 일하고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초등학교를 다닌다는 어린 딸 니마 양지 셰르파(9)도 방학을 맞아 부모를 돕고 있었다. 니마 양지에 의하면, 작년에 한국 촬영 팀이 이 롯지에서 1개월 동안 머물며 셰르파 문화를 취재해 갔다.

주인 부부에게 약국이 어디 있는지를 물으니 약국은 없고 조금 있다가 의사를 만나 보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곳 준베시에 의사 한 명이 상주하는 진료소가 있으며 그 의사는 보름 동안의 휴가를 얻어 고향에 갔다가 마침 어제 돌아왔다고 했다. 그 의사는 우리가 투숙한 그 롯지에서 묵는 하숙생이라고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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