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업저널 창립 21주년, '말산업저널' 창간 6주년 기념 주간을 앞두고

처음 기자 생활할 때 당시 회사는 개혁 운동을 표방하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언론을 최우선 가치로, 그 자긍심 하나로 시작한 곳이었다. 철학 박사 과정을 거쳐 교수직까지 보장됐음에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실천해야만 했던 필자는 올바른 사회 참여를 할 수 있고, 또한 잘할 수 있는 일을 업 삼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그곳을 선택했다. 박봉에, 주8일 근무에, 욕먹는 일이 다반사인 고난의 길인 걸 알면서도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떴었다.

현실은 달랐다. 사수와 첫 취재를 간 곳은 대형 교단 회의 장소. 기자가 반바지 입었다는 핀잔이야 참을 수 있었다. 밥이야 때가 되면 먹어야 하니까 먹었다(사실 그 밥도 먹기 싫었다). 그런데 식사 후 양복 입은 목사가 테이블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기자들 손에 봉투를 쥐여주는 것 아닌가. 촌지, 일명 거마비(車馬費). ‘봉고부대’라 불리는 다른 매체 기자들이야 그러려니 받든 말든 상관없었는데, 사수도 자연스레 받는 것 아닌가. 충격이었다. 필자에게도 봉투 내밀기에 처음엔 괜찮다고 했다. “수고하셨는데 작은 거마비일 뿐”이라며 억지로 손에 쥐여줬다. 사수까지 받았는데 면전에서 거절할 수 없었다.

그 후 ‘필자’는 어떻게 처신했을까. 일(?) 마친 양복 목사를 따로 찾아가 봉투를 돌려줬다. “우린 이런 거 없어도 된다”고 말했는지는 기억 안 난다. 분명한 건, ‘네깟 게 돈 앞에서 뭐라고’ 계면쩍어하던 양복 목사도 재차 정중히 거절하자 진심을 알겠다는 표정으로, 반바지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시 봉투를 받아갔다는 사실. 그만큼 필자는 고지식했다. 천성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우리 가치, 존재 이유가 처음부터 부정된 현장을 보고는 견디지 못했다. 이게 일상인가? 몇몇 선배에게 물으니 별일 아니라고 했다. 오래 근무한 중간 관리자에게 물으니 문제 일으키지 말고, 후원금으로 생각하고 회사 계좌에 넣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대표에게 말하지 말고”라고 했는지는 기억에 정확히 없다. 경악했다. 일할 맛 안 났다. 정의가 입발림이었나 하는 ‘망상’도 찾아왔다. 작은 문제가 아닌, 존재를 부정하는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도 열정 넘치는 햇병아리 기자의 치기는 아닌 것 같다. 분명 아니다.

필자가 ‘트러블메이커’에 고지식하고 타협을 몰라서일까. 굶주린 개혁, 진보 진영의 배고픔을 모르는 배부른 부르주아라 그깟 10만 원, ‘성의’를 우습게 여긴 걸까. 그것도 분명 아니다. 순수하게 독자 후원으로, 뜻을 함께하는 단체 지원으로 월급 받아 사는 ‘나’를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 가장 깊은 유혹 아니었던가. 그 후 필자도 웬만해서 동종업자들 안 믿게 됐다. 돈 냄새 개처럼 맡는 기레기, 부지기수라 아예 멀리한다.

말산업저널 창립 21주년, 말산업저널 창간 6주년을 앞두고 있다. 2013년 6월 24일 창간 이후 말산업저널은 국내 유일의 말산업 전문 언론으로 많은 분과 단체의 후원, 격려를 먹고 살아왔다. ⓒ말산업저널 김옥현
말산업저널 창립 21주년, 말산업저널 창간 6주년을 앞두고 있다. 2013년 6월 24일 창간 이후 말산업저널은 국내 유일의 말산업 전문 언론으로 많은 분과 단체의 후원, 격려를 먹고 살아왔다. ⓒ말산업저널 김옥현

서론이 또 길었다. 그렇다면 언론은 무얼 먹고 사는가. 촌지 안 받으면 광고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문제는 또 있다. 광고 받으면 ‘종속’되는 것 아니냐고, 입막음용 아니냐고. 실제 그런 오해를 가장 많이 받고, 가까운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거대 기업이나 단체 들이 입 막겠다고 돈다발이라도 들고 온다면 고민이야 하겠지만, 3년 안에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다.

뜬구름 같은 이야기겠지만, 언론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자생하고, 제 목소리 내려면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회원과 독자를 늘리고 지속적인 캠페인을 여는 일이다. 이 역시 선결 조건이 있다. 거창하거나, 독야청청하거나 하지 않아도 내부와 외부가 뜻을 함께하면 가능하다는 것. 대단한 기획이 아니어도, 독자들마다 일일이 만나 인터뷰할 수 없어도 중심을 잘 잡고, 우선 가치를 지속해서 알리는 일부터 시작일 게다. 아주 작은 관심과 지원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넉넉한 마음도 필수.

말산업저널가 창립 주간을 앞두고 있다. 벌써 21주년. <말산업저널>은 창간 6주년을 맞이했다. 국내 유일의 말산업 전문 언론이라는 우리를 향한 독자들, 회원들의 관심과 기대 그리고 실망, 잘 알고 있다. 출입 단체와 협회, 기관 소식도 일일이 다 챙기지 못하니 송구하다. 우리도 가지 못했던 길을 걸으니 삐걱대고 많이 지쳐 있는 것도 사실.

그럼에도 필자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필자를 지배하는 ‘중심’은 언제나 우리 말산업이 제 갈 길을 가도록 감시하고 독려하고 알리는 일이다. 비판할 건 비판하고, 잘한 건 잘했다고 평가하는 게 우리 일이고 기자로 밥벌이하는 이들의 소명이자 의무다. 좋은 기사 많이 나오고, 현장의 생생한 소식 전할 수 있도록 기자들 역량 끌어올리는 일도 중요하기에 고민도 깊다. 친분 따라, 현물이나 촌지 받고 기사 쓰는 건 아니기에 공적이며 대의적인 캠페인 그리고 후원으로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오늘도 쥐어짜고 있다.

그간 많은 분과 단체의 후원, 격려로 어려운 살림살이 겨우겨우 끌어왔다 해도 과언 아니다. 바쁜 와중에도 기자들이 직접 창간 기념 후원 캠페인 광고와 축사를 요청하고 있는데 힘내시라고, 더 돕지 못해 미안하다고, 격려의 말씀이라도 해주시면 큰 힘이 되겠다. 사이트 개편 후 후원 페이지(바로 가기)도 만들었으니 동참해 주시면 좋겠다. 부디 우리 말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언론의 정론,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말산업저널 이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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