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1세대 독거노인들의 보호시설인 ‘아리랑요양원’ 운영으로 ‘뿌리 깊은 나무’ 역할 톡톡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아리랑요양원을 찾아 고려인 1세대 어르신들을 위로하고 있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아리랑요양원을 찾아 고려인 1세대 어르신들을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배곯으며 여기까지 오다보니 젖이 안 나와 우즈벡 여자들이 우리 아기한테 젖을 먹여 주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았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손님을 귀하게 여긴다. 한밤중에 온 손님한테도 차를 대접한다.”(85, 조 조야 할머니)

“세 살부터 우즈베키스탄에서 살았다. 역사적으로 한국이 고향이지만 실질적으론 우즈벡이 고향이다. 우즈벡 정부가 아니었으면 살 수가 없었다. 우즈벡 정부에 감사하고, 나이 들어 좋은 요양원에 살 수 있는 것도 역사적 고향인 한국 덕분이다. 한국 정부에도 감사하다”(85, 허 이오시프 할아버지)

지난 419일 문재인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국빈방문에 맞춰 김정숙 여사가 아리랑요양원을 찾았다.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부인인 미르지요예바 여사와 함께였다. 이들은 2010년 개원한 이래 이곳을 찾은 가장 귀한 손님이었다. 이날 요양원 어르신들은 김정숙 여사 앞에서 지난 시간의 고단함과 작금의 고마움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고려인들은 뿌리는 한국인이지만 우즈베키스탄 국민이기도 합니다. 여기 오면서 마음이 참 복잡했습니다. 이 나라에 처음 오셨을 때 나라 잃은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나라에게 무엇을 도와주고 함께 성장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르신들의 노고가 밑바탕이 됐습니다.”

김정숙 여사는 요양원 어르신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고려인들은 나라 없이 와서 노력으로 부자도 되고, 소비에트 시절에는 노력영웅도 23명이나 배출된 훌륭한 분들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또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시점을 맞아 대한민국 독립에 기여한 연해주 한인들의 후손인 중앙아시아의 모든 고려인 동포들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아리랑요양원에는 고려인 1세대들의 사연을 알게 된 많은 봉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위로 물품을 들고 아리랑요양원을 찾아 두 손을 번쩍 올려 고려인 어르신들에게 하트 모양으로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 여류 기업가(강정숙 동재건설 대표) 모습이다.
아리랑요양원에는 고려인 1세대들의 사연을 알게 된 많은 봉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위로 물품을 들고 아리랑요양원을 찾아 두 손을 번쩍 올려 고려인 어르신들에게 하트 모양으로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 여류 기업가(강정숙 동재건설 대표) 모습이다. ⓒ동재건설 제공

아리랑요양원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외곽에 있다. 2010년 개원해 1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요양원에는 현재 고려인 1세대 어르신 41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85.24세로, 대부분 고령이다. 이들 모두를 24명의 직원들이 잘 짜인 일정표대로 식사와 시설 관리, 그리고 놀이프로그램부터 건강프로그램까지 자상하게 챙기고 있다.

“개원 초기부터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현지에 파견 근무 중인 김나영 원장이 고려인 어르신들의 손녀딸이 되어 여러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리랑요양원은 양국 간 교류의 가장 대표적인 시설입니다.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양국 정부가 합의해 만든 시설로, 독거노인 동포 어르신들께 보금자리를 마련해 줌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민족적 유대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2010년부터 9년째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원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그는 요양원에 대한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관심 또한 묵직해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4월 국빈방문에 앞서 요양원 인근 도로 정비와 40인승 버스 기증 등 여러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정숙 여사와 함께 미르지요예바 대통령 부인이 직접 방문해 자국 국민이기도 한 고려인 어르신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양국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다고 강조했다.

아리랑요양원을 운영하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사장 추무진)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6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 이종욱 박사의 뜻을 기리고자 개발도상국과 북한, 재외동포, 외국인 근로자, 해외 재난민 등에 대한 정부차원의 보건의료 지원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됐다.

그로부터 13. 이 재단은 중국 하얼빈 조선민족병원 의사초청 연수(2008) 중국 하얼빈 조선민족병원 의료기기 지원(2009) 재외동포 보건의료 수요에 기초한 보건의료 지원정책 및 사업 개발연구(2009~2010)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 건강증진사업(2013~2014)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독거노인 아리랑요양원 운영(2009~현재) 독일 파독근로자 보건의료지원 사업(2013~현재) 러시아 사할린 잔류 1세대 동포 의료지원 사업(2015~현재) 등 여러 굵직한 사업들을 추진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데 한몫했다.

▲추무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사진 앞줄 가운데)이 아리랑요양원을 찾아 고려인 어르신들과 기념 촬영한 모습. 추 이사장 왼쪽 옆이 이 요양원에서 10년째 파견 근무 중인 김나영 원장이다.
추무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사진 앞줄 가운데)이 아리랑요양원을 찾아 고려인 어르신들과 기념 촬영한 모습. 추 이사장 왼쪽 옆이 이 요양원에서 10년째 파견 근무 중인 김나영 원장이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제공

특히 우즈베키스탄과 관련해서는 아리랑요양원뿐만 아니라 국립아동병원 건립에도 나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추무진 KOFIH 이사장은 지난 4월 초 ·중앙아시아 평화번영 구축 및 연대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 수출입은행, 한국국제협력단과 공동으로 경제개발협력기금 및 무상 공적개발원조를 통해 우즈베키스탄 국립아동병원 건립 및 운영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중앙아시아에서의 보건의료협력증진이 한국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강조해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에 KOFIH 역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내년 2월 준공될 예정인데, 이 병원이 개원하면 우즈베키스탄 아동 환자들의 의료 환경 개선에 많은 도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선천성 질환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아직 치료 수준이 열악합니다. 심장질환과 비뇨기 질환, 뇌신경 질환 같은 선천성 질환에 대한 수술적 완치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이 병원 설립의 주요 목적이라, 우즈베키스탄의 많은 아동 환자들은 물론 소아과 계통 의사들도 이 병원의 개원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전남대 의대에서 유학하고 돌아가 우즈베키스탄 보건복지부에서 고위직으로 일하고 있는 카몰훗자(Eshnazarov Kamolhuja)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아리랑요양원의 성공적 운영에 이어 국립아동병원 건립에까지 나선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의 역할이 양국 보건 교류의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마중물이 되고 있다며 기뻐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2020년 2월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우즈베키스탄 국립아동병원 조감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2020년 2월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우즈베키스탄 국립아동병원 조감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제공

조선의 레닌으로 불렸던 사회운동가 김 아파나시의 아들 김 텔르미르 씨는 부친은 하바롭스크에, 모친은 크림 땅에, 조부는 연해주에, 조모는 카자흐스탄 침켄트에, 그리고 외조부는 우즈벡 타슈켄트에, 형님은 연해주 크라스키노촌에 안치돼 있다고 울분을 토로한 바 있다. 서글픈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한 사례다. KOFIH의 이 같은 치적들은 바로 이를 위로하는 행보다. 따라서 이 재단의 시원(始原)인 고 이종욱 박사의 천상 표정 또한 사뭇 밝으리라, 하늘 한 번 봤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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