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주의 경마공원 산책
모든 스포츠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심판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심판의 결정에 심하게 항의만 하여도 퇴장을 당할 수 있고 더 심할 경우는 게임몰수까지 당할 수 있다. 이러한 심판도 신이 아니기에 오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인 마라도나는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손으로 공을 건드려 골인을 시켰기 때문이다. 심판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골인 휘슬을 불었다. 상대팀은 손으로 공을 건드려 골인 시켰다고 격렬하게 항의를 하였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디오로 다시 살펴보니 분명하게 손으로 공을 건드렸다. 그러나 한번 불었던 휘슬은 번복 되지 않았다. 이처럼 상대팀으로 부터 공식적인 이의가 있을 때 비디오로 재판정을 하는 종목도 있다. 배구와 씨름 테니스 등이 그러하다. 축구는 경기의 흐름을 끊는다는 이유로 비디오 판독이 받아들여 지지 않고 있다.

경마는 어떠한가. 기수에게 퇴장을 내리는 것과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기승정지이다. 정지 기간 동안은 경주에 출주할 수 없다. 내가 기수시절에는 과태금이란 제재가 없었다. 또한 기승정지 기간도 대체로 길었다. 요즘은 경마일 하루에서 이틀정도의 기승정지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재결에서 기수에게 내려지는 제재는 견책과 과태금, 기승정지가 있다. 기수면허정지 및 취소는 재결이 아닌 재정위원회에 회부되어 결정된다. 조교사에게는 관리 소홀이나 연대책임을 물어 과태금이란 제재를 내리며 조교정지는 재정위원회에서 내린다. 기수의 제재가 조교사의 연대책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기수는 조교사에게 미안하고 죄인이 된 기분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 해당 조교사를 찾아가 사과를 한다. 기수의 경우 가장 기분이 좋지 않은 제재는 한주 후 있게 될 대상경주에 우승 유력마필을 기승하게 되어 있는데 기승정지 처분을 받아 기승을 하지 못하게 될 때이다. 조교사의 경우는 말도 고장 나고 과태금도 받게 될 때이다. 이런 것을 “똥도 밟고 넘어 지기까지 했다”라고 표현한다. 재결의 제재가 부당 할 경우는 이의신청을 제기하는 제도가 있지만 이의제기를 하는 기수와 조교사는 거의 없다. 그 이유로는 재결에서 제재를 주기 전에 당사자에게 경주 필름을 여러 차례 보여주며 그렇게 한 이유와 변명을 충분하게 듣고 난 후 여러 재결위원들이 합의하여 최종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식적으로 이의를 제기 하게 되면 소위 말해 “찍힌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괘씸죄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기수 시절에도 재결의 제재 내용에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 수긍하는 제재였다. 간혹 재결의 제재에 불만이 있는 기수들은 기수 대기실로 돌아와 안전모와 채찍을 집어 던지며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조교사의 경우는 재결위원과 언쟁을 벌이기도 하고 애꿎은 담배만 피워 대기도 한다. 진로방해에 대한 제재에 있어서는 분쟁의 소지가 발생하기도 한다. 명확한 진로방해의 경우에는 쉽게 수긍을 하지만 2마리 이상의 말이 동시에 진로 방해를 당한 경우에는 최초 어느 말이 원인을 제공하였느냐의 시비를 가릴 때는 기수들 간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 나는 기수시절 “경주로의 신사”라는 별명이 얻었다. 진로 방해로 인한 제재를 거의 받지 않았기에 붙여진 별명 이었다. 그러나 경주로의 신사가 되면 아주 좋은 경주 성적을 내기 어렵다. 조금은 무리하게 유리한 자리싸움을 벌여야 하는 경우도 발생 하는데 신사도만 발휘하다 보면 상대방이 그만큼 유리하게 경주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후배가 선배의 진로를 방해하게 되면 기수 대기실에서 해당 후배를 구타하는 경우도 많았다. 경마에서 심판인 재결위원의 역할과 권한은 매우 중요하다. 자칫 착순변경에 대하여 납득 할 수 없는 판정을 내리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수들의 기승정지는 수입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기승정지를 받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미혼 보다는 결혼한 기수들이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기승정지를 오랫동안 받게 되면 부인이나 자식에게 미안할 때도 있다. 경주중 말장구에 문제가 생기면 조교사가 책임을 받게 되는데 그럴 때 안장과 마구를 장착한 관리사는 조교사에게 무척이나 미안 해 한다. 기수가 재결의 제재를 전혀 안 받고 말을 탈 수는 없다. 그리고 조교사의 연대책임은 피할 수 없는 제재중의 하나인 것이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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