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너! 누구니?
  • 최진규 작가
    최진규 작가 coiu214@hanmail.net
  • 승인 2019.06.1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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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암, 촛대바위(?)라는 이름도 있다.
우이암, 촛대바위(?)라는 이름도 있다.
두쪽바위
두쪽바위
자기 목소리를 듣고 찾아온 산새. 나무에 앉아 있습니다. 찾아 보세요.
자기 목소리를 듣고 찾아온 산새. 나무에 앉아 있습니다. 찾아 보세요.

  자주 올라가 시간을 보내는 바위가 있다. 기다란 바위 두 개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양이라서, 내가 두쪽바위라고 이름을 붙였다. 도봉산 원통사로 올라가는 인조목 계단으로부터 살짝 벗어난 곳에 숨어 있어, 남을 의식하지 않고 느긋하게 산 아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나만의 쉼터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사가 완만하기는 했지만, 편히 앉아 쉬기에는 영 망한 장소였다. 이 점이 두쪽바위의 옥에 티였다. 한 군데 오래 앉을라치면 엉덩이가 배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쓸리기까지 했다. 따라서 궁둥이를 이리 들썩 저리 들썩하며 옮겨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다. 한편 이처럼 경사가 진 바위였기에 망정이지 너럭바위였다면 죽때리고 먹고 노는 이들의 차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걸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두쪽바위 주변의 지형지세가 꽤 흥미로웠다. 남향으로 비스듬히 누운 바위의 좌우 건너편에는 쌍둥이처럼 닮은 두 산줄기가 작은 골짜기를 각자 거느리고, 거의 완벽한 대칭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 바위 바로 뒤는 넉넉한 가림막이 되어 주는 큰 바위가 있고, 곧장 더 위로 올라가면 원통사라는 절이 나왔다. 우이암이라는 이름의 바위는 그 절 머리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는데, 생김새가 영락없는 남자 거시기였다. 그리고 두쪽바위는 자체 생김새도 그렇고, 두 산줄기 가운데로 불두덩 같이 살짝 솟은 능선에 자리 잡고 있어, 호사가들이 여근바위라며 허풍을 떨어도 반절은 믿어줄 만했다. 게다가 두쪽바위에 서서 북쪽을 올려다보면, 큰 바위 위 나무 틈새로 우이암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남근바위가 있으면, 근처에 여근바위가 있다고들 했는데, 정말 이 두쪽바위가 그 바위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 것도 다 이런 연유에서였다. 음양의 기운이 한데 모인 듯한 이런 형국 때문인지, 풍수지리의 ‘풍’자도 모르는 내 눈에도 두쪽바위는 흉한 자리가 아니었다. 혹시 불편한 엉덩이를 어쩌지 못하면서, 자꾸 이곳을 찾아오고 또 오래 머물기 원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상서로운 기운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늘도 산행을 마치고 두쪽바위에 앉아 땀을 들이고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여태껏 들어왔던 명금류(鳴禽類)의 노래 중에서도 으뜸의 실력이었다. 대부분의 산새들처럼 녀석도 인간을 극도로 경계하여, 몸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하기야 자신들의 영역에 침입하여 소란만 떠는 괴이한 생명체를 달가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노랫소리를 들어보면, 노랑턱멧새로 추정되었지만, 모습을 보아야 확실한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쉽사리 곁을 주지 않는 녀석을 불러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휴대폰에 들어있는 녹음 기능을 써 먹기로 한 것이다. 몇 분에 걸쳐 녀석의 소리를 담았다. 바로 이어서 최대 볼륨으로 재생했다. 내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숨어있던 녀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처음에는 매우 흥분한 듯 내 주위를 빠르게 날아다녔다. 탐색하는 모양새였다. 잠시 후, 채 익지 않은 버찌들이 듬성듬성 달린 산벚나무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나무는 바로 내 앞에 있었다.

  나는 노랑턱멧새로 몰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녀석의 생김새가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달랐다. 노랑턱멧새의 머리에는 무스를 바른 듯, 깃털이 위로 솟아 있고, 노란 털이 머리와 목 부분에 박혀 있어야 하는데, 앞의 녀석은 목 부분에만 노란 털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머리 모양이 다른 새들과 똑같이 밋밋했던 것이다. 혼란스러웠다. ‘너! 누구니?’

  ‘너! 누구니?’ 저 녀석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상대방을 찾을 수 없고, 그런데 놈의 목소리는 끝내주게 훌륭하고…. 정말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만만치 않은 경쟁자의 도전으로 여긴 거라면 한바탕 노래 대결을 벌이는 것이고, 우월한 유전자의 짝이 유혹한 거라 믿었다면 사랑의 노래로 맞장구치는 거였겠지. 그 속내를 알 수 없어도, 녀석은 자기 목소리에 질 수 없다는 듯이, 갖은 멋을 부려가며 노래를 불렀다.

  재생되어 쟁쟁하게 울려 퍼지는 새소리는 비단 이 녀석에게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 산 아래 골짜기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심지어 다른 종류의 새들까지 합세했다. 갑자기 온갖 새들의 떼창으로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나의 기만술에 속아 넘어간 산새들이 요란한 반응을 보이자, 괜한 장난을 한 것 같아 저들에게 미안했다. 녹음한 새소리로 인해 활력을 찾은 산 분위기를 보면, 바람직한 결과가 나온 것 같기도 하여도, 어디까지나 조작으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가짜로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판치고, 이에 속아 넘어가는 자들이 규합하는 세상 형편을 경멸하던 내가, 저들과 똑같이 가짜를 가지고, 그것도 다름 아닌 자연을 농락하고 있었으니 더욱 할 말이 없었다.

  새도 '너! 누구니?'하며 소리의 주인공을 열심히 호출하고 있고, 나도 '너! 누구니?' 하며 녀석을 유심히 관찰하는 중이었다. 그 전까지는 간간이 인조목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산객 발자국 소리만 들렸었는데, 느닷없이 큰 음악 소리가 함께 따라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경망스러운 노래였다. 추임새랍시고 괴성도 섞여 있었다. 새가 깜짝 놀라 날아갔다. ‘하! 산에 올라와서까지 저렇게 음악을 크게 들어야 하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누군가에게는 소음 공해가 된다는 것을 왜들 모를까? 더군다나 짝짓기와 포란을 앞두고 더욱 예민해진 산새들로서는 견딜 수 없는 소음 테러일 텐데,’ 주저리주저리 불평과 타박을 엮어가며 구시렁댔다.

  이대로 끝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딱 한 번만 더 녀석을 속이기로 했다. 그리고 속으로 ‘앞으로는 절대 이런 장난을 안 하마.’ 하였다. 녹음된 새소리를 틀었다. 이윽고 달아났던 녀석이 다시 나타나 산벚나무 위에 앉았다. 재정비를 하고 온 듯, 새로운 기교를 첨가해 변주곡을 들려주었다. 진정한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휴대폰을 껐다. 그리고 비스듬히 누운 바위 위에 나도 누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는 귀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미끄러질 것 같아 무릎을 굽혀 두 발로 바위를 눌렀다. 엉덩이뿐만 아니라 등짝 전체가 거친 바위 표면에 배기고 쓸렸다. 최상의 노래를 듣는데 이 정도 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너! 누구니?

  그렇게 새도 물어보고 나도 물어보는, 호기심 가득한 산속 이야기는 당분간 더 이어졌다.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새 이름을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괘념치 않기로 했다. 그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새들이 이 산에 남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나는 두쪽바위와 우이암의 조화로운 음양 기운을 듬뿍 받고, 더 많은 산속 생명들이 잉태되기를 기원하면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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