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하르 축제의 마지막 의식이기도 한 바이 티카는 누나가 남동생의 무병장수를 빌어 주는 의식이다. 장녀 줄리는 막내 사전의 바이 티카를 위해 며칠 전부터 노란 금잔화 꽃과 보라색 비텔넛 꽃을 따 모으고 로티를 튀겼다.

사전이 목에 두른 두 개의 꽃목걸이는 누나 줄리가 만들어서 걸어 준 것이다. ⓒ김홍성 

 

줄리는 아버지 자갓 바하둘 구릉에게도 금잔화 목걸이를 걸어 드렸다. ⓒ김홍성  

 

주막집 내외의 장녀 줄리(23)는 살레리에 있는 솔루 쿰부 멀티플 캠퍼스라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 학제로는 대학교 2-3 학년에 해당하는 15 학년인 줄리는 살레리 돌포 바잘에 있는 SOLU FM 라디오 방송국 리포터도 겸한다고 했다. 줄리의 여동생 셋과 남동생도 모두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키란(20)과 사리따(18)11학년, 짠다(16)8학년, 그리고 막내이자 외아들인 사전(14)9학년이었다. 다섯 자녀 모두 학교에 다닌다는 것 만으로도 다복한 가정이었다.

 

티하르 축제의 마지막 의식이기도 한 바이 티카는 누나가 남동생의 무병장수를 빌어 주는 의식이었다. 장녀 줄리는 막내 사전의 바이 티카를 위해 며칠 전부터 노란 금잔화 꽃과 보라색 비텔넛 꽃을 따 모으고 로티(도넛 형태로 튀긴 쌀 과자)를 튀겼다. 로티는 집에 찾아오는 동네 동생들 등 손님들에게도 고루 대접해야 하기 때문에 1백 개 이상 튀겨야 한다.

 

 

줄리가 금잔화 꽃 목걸이를 만드는 걸 도와 주는 사리따. ⓒ김홍성  

 

시바 신을 모신 선반 주변을 꽃과 향과 촛불로 장식하였다. ⓒ김홍성 

 

줄리가 금잔화 꽃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 밭에서 금잔화를 따고 있다. ⓒ김홍성   

 

줄리가 친동생 사전에게 바이티카를 하고 있다. ⓒ김홍성 

 

바이 티카의 기원은 동생을 데리러 온 염라대왕을 누나의 기지로 속여서 그냥 보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김홍성 

 

키란과 사리타 등 여동생들이 언니 줄리를 도와 로티를 튀겼다. 꽃도 많이 필요하다. 따 모은 꽃이 모자라면 장에서 사오기도 한다. 꽃목걸이를 만들고, 감자를 깎았다. 이들 의식을 준비하는 누나들은 바이 티카를 마치는 오전 11시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11시가 되자 줄리는 식당의 카운터와 시바 신의 사진을 모신 선반 주변을 꽃과 향과 촛불로 장식하고, 식당으로 들어오는 문지방에는 붉은 흙물로 문양을 그리고, 문양 가운데 초를 놓고, 초 주변에는 꽃잎을 수북이 얹었다. 그 사이 키란과 사리타 등은 식당 바닥에 기다란 멍석을 펴고 멍석 위에는 카펫을 깔았다.

 

이렇게 바이 티카 준비가 끝나자 외아들이자 막내인 사전이 깨끗한 옷을 입고 나타나 신을 벗고 멍석 위에 앉았다. 줄리는 사전이 자리에 앉자 그 앞에 꽃 접시를 놓고 꽃 접시 가운데 놓인 초에 불을 붙였다. 심지에 불을 붙여서 그 불로 동생의 온 몸을 씻는 시늉을 한 후 꽃 위에 놓았다.

 

그 다음에는 사전의 머리 위에 꽃잎을 수북이 얹어놓고서 머리 위로부터 꽃잎을 비처럼 흩뿌렸다. 그리고 보라색 말라(꽃목걸이)와 노란 금잔화 말라를 동생 목에 걸어 주었다. 그 다음에는 제3의 눈이 있는 자리라고 하는 미간에 찐득한 더히(요구르트)에 갠 흰 염료를 찍고, 그 위에 붉고 염료를 찍고, 다시 노란 염료를 찍었다.

 

티카란 바로 이렇게 이마에 점을 찍는 의식이라고 했는데, 동생에게 한 컵의 더히를 직접 먹여 주고 로티가 든 접시를 손에 들려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렇게 줄리의 바이티카가 끝나자 사전은 누나의 발등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감사를 표한다. 얼마간의 돈이 든 봉투도 누나에게 바친다.

 

 

바이 티카를 마친 후에 찍은 기념 사진. ⓒ김홍성 

 

동네 동생들에게도 바이티카를 해 주는 줄리. ⓒ김홍성  

 

줄리는 여동생들도 사전 옆에 나란히 앉히고 같은 방식의 의식을 되풀이 했다. 여동생들도 언니에게 티카를 해 준다. 줄리는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에게도 티카를 해 드렸다. 동생들에게 한 것 같은 절차는 생략하고 티카만 한 후 목에 말라를 걸어 드렸다.

 

식구들끼리의 티카가 끝나자 친척 동생이나 동네의 동생 친구들이 찾아왔다. 줄리에게 디디(누나 또는 언니)라고 부르는 모든 동생들이 다 오는 것 같았다. 줄리는 이들에게도 친동생 사전에게 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티카를 해 주었다. 그리고 더히와 로티, 바나나와 감자, 호두 등이 담긴 음식 접시를 돌려 대접했다. 이들도 사전처럼 줄리의 발등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감사를 표하고 돈이 든 봉투를 바쳤다. 

 

 

줄리는 동네 동생들에게도 요구르트를 한 컵 씩 떠먹여 주었다.  ⓒ김홍성 

 

바이티카를 마친 동네 동생들과도 기념 사진을 찍었다. ⓒ김홍성  

 

동네 동생 부부가 데려온 어린 자녀들. ⓒ김홍성  

 

이렇게 티카가 완전히 끝나면 누나는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줄리는 아직 밥을 먹을 수 없다. 십리 밖 산비탈에 사는 작은 아버지 티카를 아직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병이 들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줄리가 직접 찾아가서 티카를 해 드려야 한다. 줄리는 둘째 여동생 사리따를 데리고 작은 아버지 집을 찾아 간다.

 

줄리에 의하면, 바이 티카의 기원은 동생을 데리러 온 염라대왕을 누나의 기지로 속여서 그냥 보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찾아가서라도 바이 티카를 해주어야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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