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와 사리따, 자갓 바하둘 구릉의 두 딸과 함께 산비탈을 오르느라 땀 깨나 쏟았다. 산골 처녀들의 걸음은 따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자주 쉬면서 한 시간 쯤 걸은 끝에 당도한 산비탈의 그 집은 아담하고 전망이 툭 터져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대문 앞의 꽃나무는 해바라기 모양의 하늘하늘한 꽃을 피워 운치를 더했다.

벽장 위 가운데 있는 오래된 흑백 사진의 주인공이 자갓 바하둘 구릉의 40 년 전 모습. ⓒ김홍성

 

줄리와 사리따 ⓒ김홍성 

 

줄리의 아버지 자갓 바하둘 구릉(62)은 퇴역 군인이었다. 인도군 용병으로 청춘을 바친 덕분에 매달 연금을 받는다고 했다. 우리가 하룻밤 묵었던 이층 큰 방의 장식장에는 인도 영화배우들의 브로마이드 사진들이 붙어 있고 가족사진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있는 오래된 흑백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자갓 바하둘 구릉이었다.

스무 살이나 됐을까. 부대 마크와 훈장을 단 군복에 공수병 베레모를 쓴 자갓 바하둘 구릉의 얼굴은 막내아들 사전의 형처럼 앳되었다. 키도 아주 작았다. 그러나 그는 60 회 이상 낙하산을 펼친 경력이 있으며, 스리나갈이나 나갈랜드 등 충돌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 배치되어 전투를 경험한 직업 군인이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일 뿐이었다. 술도 명절에만 조금 마신다고 했다. 딸들은 아버지가 새 술을 청하면 냉정하게 외면했다. 바이 티카를 해 드리러 찾아가는 작은 아버지도 술이 과해서 병이 났기 때문이다.

줄리와 사리따, 이들 자매와 함께 산비탈을 오르느라 땀 깨나 쏟았다. 산골 처녀들의 걸음은 따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자주 쉬면서 한 시간 쯤 걸은 끝에 당도한 산비탈의 그 집은 아담하고 전망이 툭 터져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대문 앞의 꽃나무는 해바라기 모양의 하늘하늘한 꽃을 피워 운치를 더했다.

 

숙부의 집 앞에 서서 웃는 줄리 ⓒ김홍성 

 

줄리가 숙모에게도 티카를 해 주고 있다. ⓒ김홍성  

 

왼쪽 첫 집이 줄리와 사리따의 숙부가 사는 집. ⓒ김홍성  

 

줄리와 줄리의 숙부 ⓒ김홍성 

 

줄리의 숙부와 숙모 ⓒ김홍성 

 

줄리는 작은 아버지 내외에게 티카를 해 드리고, 음식을 내 놓았다. 얼핏 보기에는 전혀 환자 같지 않고 너그럽고 다감해 보이는 줄리의 작은 아버지는 나에게 소주를 권했다. 한 잔 한 김에, 다음에 오면 이 집에서 하루라도 묵어가고 싶다고 했더니 꼭 그러라며 내 손을 잡았다.

돌아오는 길에 줄리와 사리따는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나라 우리 네팔 평화로운 나라 우리 네팔'이라는 후렴이 붙는 노래였다.

줄리와 사리따는 집에 돌아와서야 이날 첫 밥을 먹었다. 오후 세 시였다. 우리는 줄리의 아버지와 부엌에서 소주를 마셨다. 그는 마치 옛 전우를 만나기라도 한 듯 화요일에 장이 서니 며칠 더 묵고 가라는 말을 세 번이나 했다. 명절 내내 아침부터 홀짝홀짝 마신 술에 젖어서 그윽한 눈길로 한 잔 더 하기를 권하면서.......

줄리의 숙부 집에 다녀오는 길에 만난 소녀. ⓒ김홍성  

 

자매의 머리 너머로 보이는 동네가 네레 바자르. 화요일에 장이 선다. ⓒ김홍성    

 

줄리와 사리따. 마당의 시렁에 높다랗게 쌓여있는 곡물은 옥수수다. ⓒ김홍성  

 

얼굴에 주름이 많아서 남편보다 훨씬 연상으로 보이는 그의 아내 리라 꾸마리 구릉의 나이는 52세라고 했다. 그녀는 딸들이 안 보는 틈을 타서 남편의 술잔에도 소주를 채워 주면서 나에게 말했다. 명절날만 조금 마시는 걸 가지고 딸들이 펄쩍 뛰는 통에 이렇게 몰래 드리는 거라고.

티하르의 마지막 날인 이날 네레 바잘의 장마당에는 일찍부터 동네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줄리의 집 부엌에서도 북 장단에 맞춰 노래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놀다가고, 또 와서 놀다가고, 그러면서 밤이 되었고, 밤은 아주 길었다.<계속> 

 

저녁이 되자 장마당에 마을 사람들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김홍성  

 

줄리네 윗집 소녀. ⓒ김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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