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에 묵었던 앙 도르지 씨 생가를 지날 때, 그리고 총누리의 집이 저만치 보일 때는 모자를 푹 눌러 썼다. 나는 죄진 사람처럼, 길만 보고 걸어서 빠쁘레 마을을 빠져 나왔다.

아내가 만든 릴두를 떠먹는 앙 다와 씨 ⓒ김홍성 

 

앙 다와 씨의 식구들과 작별한 시간은 오전 930분이었다. 앙 다와 씨의 아내가 릴두를 먹고 가라고 붙들었기 때문이다. 릴두는 일이 많아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음식이었으나 부인이 기울이는 정성을 생각해서 기다려야 했다. 앙 다와 씨네 릴두는 감자를 절구에 넣고 방아로 찧을 때 보릿가루를 넣고 찧어서 그런지 훨씬 맛있었다.

감자 수제비, 그러니까 릴두를 먹은 뒤, 아침 햇살이 따스한 집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앙 다와 씨는 마치 날마다 출근하는 회사원처럼 식구들에게 인사도 없이 앞장서서 걸었다. 저만치 걸어가서 돌아보며 손이라도 한 번 더 흔들어 준 건 오히려 김 선생과 나였다.

 

앙 다와 씨의 마이다네 농막에서 가족과 함께 ⓒ김희수  

 

봄에 총누리와 함께 빠쁘레로 내려왔던 길이 저 산비탈에 있다 ⓒ김홍성  

 

마이다네에서 빠쁘레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렸다. 마을을 통과하면서 조마조마했다. 지난봄에 총누리와 함께 와서 이틀을 묵는 동안에 만났던 마을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 그냥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라면 몰라도 김 선생에게는 빠쁘레에서 하루 더 묵으며 술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고역일 것이었다.

지난봄에 묵었던 앙 도르지 씨 생가를 지날 때, 그리고 총누리의 집이 저만치 보일 때는 모자를 푹 눌러 썼다. 나는 죄진 사람처럼, 길만 보고 걸어서 빠쁘레 마을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앙 다와 씨는 총누리의 집 앞에서 누군가가 불러 세우는 바람에 한참만에야 동구 밖으로 나왔다.

앙 다와 씨를 총누리네 집 앞에서 불러 세운 사람은 총누리의 아버지였다고 했다. 지난봄에 총누리네 집에서 총누리 어머니가 걸러준 막걸리를 마실 때 총누리의 아버지는 못 봤다. 목수인 그는 그 때 쿰부 쪽으로 일하러 가 있었다.

 

이 고장 출신의 영국군 용병 단체 구르카의 기부금으로 새로 만든 현수교 ⓒ김홍성 

 

현수교 길목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 ⓒ김홍성 

 

옛 공법에 의해 나무로 만든 다리 ⓒ김홍성  

 

현수교의 양쪽 기둥에 British Gurkhas Nepal 이라는 단체에서 기부했음을 새겼다 ⓒ김홍성 

 

길은 계곡으로 이어졌고, 계곡엔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옛 공법에 의해 나무로 만든 다리는 지금 거의 쓰지 않는 옛것이고, 다른 하나는 견고하게 보이는 현수교(출렁다리)였다. 이 고장 출신의 영국군 용병 단체 구르카의 기부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현수교 건너편부터는 경사가 급한 비탈길이었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땀을 줄줄 흘리며 비탈을 오르는 중에 아주 무거워 보이는 넓적한 판석을 지고 조심조심 내려오는 모녀를 만났다. 길이 좁아서 그들이 안전하게 내려가도록 비켜섰다. 땀과 부엌 연기 냄새를 풍기는 그들도 우리처럼 땀에 젖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들이 등에 지고 가는 넓적한 판석은 지붕에 얹거나 마당에 깔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런 돌을 캐서 다듬어 파는 채석장이 비탈 위에 있다고 앙 다와 씨는 말했다. 마이다네의 자기 집 농막 지붕도 그 비탈 위에 있는 채석장에서 사서 등짐으로 져 나른 것이라고 했다.

 

쉼터 ⓒ김홍성 

 

쉼터의 벽에 붙인 판석에는 불교의 보살들 그림이 그려져 있다 ⓒ김홍성    

 

비탈길 위에 석경담 비슷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그네들이 등짐을 쉽게 풀어 얹거나 등짐을 진 채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그 쉼터는 험한 고개마다 어김없이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쉼터가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유족들이 만드는 것이라는 건 앙 다와 씨로부터 처음 들었다.

앙 다와 씨에 의하면 망자의 유족들은 이 같은 쉼터만 만드는 게 아니다. 유족들은 개울에 놓이는 다리나 길가의 옹달샘 같은 것들도 만들어 나그네 길을 도움으로써 망자의 극락왕생을 빈다고 했다.

쉼터 앞에 비어있는 농가가 한 채 있고, 농가 뒤로 이어진 산비탈에 좀 전의 모녀가 판석을 샀을 채석장이 보였다. 앙 다와 씨에 의하면 판석 한 개의 무게는 약 20 킬로그램, 가격은 한 개에 50 루피인데, 마이다네까지 운반하는데 드는 품삯도 150 루피라고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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