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두워 질 무렵부터 장마당 여기 저기 동네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매단 오색 전구가 빛을 발하고 카세트 오디오의 볼륨은 한껏 높여지자 군무를 추는 동네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장터 입구의 이발소에서 삭발을 하고 콧수염도 다듬고 숙소로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었다. 정오 직전에 수레스타 씨 가족과 작별하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후 네 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마을이 네레 바잘이었다.
나중에야 확실히 알았지만 네레 바잘은 소풍의 주방장이었던 겔루 셀파의 고향이었다. 그러니까 겔루의 아내이며 현재의 주방장인 마야 셀파의 시댁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부주방장인 사노 마야 셀파의 고향도 네레에서 멀지 않았다. 김 선생과 내가 네 시간 동안 걸은 그 길은 겔루 셀파 부부와 사노 마야 셀파 등이 무던히도 오고간 길이었던 것이다.
그 길은 마을과 외딴집과 경작지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었는데, 마을마다 술을 내리고 금잔화 꽃을 따서 꽃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 카세트 오디오가 있는 집에서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았다. 티하르 명절의 절정을 이루는 바이 티카가 다음 날 오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이 날 우리가 숙소로 삼은 주막집은 명절을 맞아 모든 식구들이 모여 있었다. 내 당숙 중 한 분과 비슷하게 생긴 작은 키의 영감님이 가장이고, 가녀린 몸매의 낙천적인 할머니가 그의 부인, 그리고 딸 넷과 막내아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도 여럿 모여 있었다.
동네 사람들 중에는 한국어를 하는 사내들도 있었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에 의하면 이 마을 사내들 십 여 명이 서울 인근에 모여 살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불법체류 중이라고 했다.
날이 어두워 질 무렵부터 장마당 여기 저기 동네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매 단 오색 전구가 빛을 발하고 카세트 오디오의 볼륨은 한껏 높여지자 군무를 추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춤추는 사람들 중에는 서양 여자도 있었다. 어디서 봤다 싶어 가까이 가 보니 그녀는 로딩에서 헤어진 서양 여자였다. 그녀의 가이드인 따망 청년도 같이 있었다. 그들은 피케로 향하던 중 비와 눈으로 엄청나게 고생하다가 철수하여 전 날 이곳 네레 바잘에 도착했으며 다음 날 파부루로 이동하여 비행기 편으로 카트만두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