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에 퍼져 있는 메밀밭을 지나 리쿠 콜라의 출렁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산비탈 순왈의 주막에서 차를 주문했다. 부인이 차를 끓이는 동안 주인장이 어디서 오렌지 같은 과일 대여섯 개를 가져다 우리가 앉은 탁자에 올려놓았다.

순왈의 주막집 ⓒ김희수 

 

신맛이 강렬한 과일의 일종인 준월 ⓒ김희수  

 

리쿠콜라의 순왈 주막집 문 옆에 걸려 있는 쿠쿠리와 낫 ⓒ김홍성 

 

 

도보 21일 째 되는 날의 첫 길은 유채밭과 메밀밭 사이로 나 있었다. 아침 햇살이 들기 시작하여 꽃빛이 고왔다. 새파란 하늘을 업은 설산은 어느 때보다 가까이 보였다. 그러나 미끄러운 비탈길이어서 발밑을 살피느라 멀리 내다볼 여유가 없었다.

반시간 쯤 걸은 끝에 8시가 되었고, 우리는 랄람 마을의 중심지에 도착했다. 식전에 러빈 순왈의 장남 틸럭 바하둘 순왈(16)이 라면을 사 온 가게가 이곳에 있었다. 우리가 내려오는 데만 30분이 걸린 길을 그 아이는 30 분도 안 걸려서 왕복한 것이었다. 현지 젊은이들은 랄람에서 지리까지 보통 하루 만에 걷는다는 이야기가 실감났다. - 그러나 우리는 온종일 부지런히 걸었음에도 지리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리쿠 콜라는 아주 좁고 깊은 협곡 사이를 흘렀다. 협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양 옆이 벼랑인 아슬아슬한 릿지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면으로 교묘하게 이어졌다. 중간에 비교적 평탄한 지대가 나왔고 거기에 커다란 보리수 몇 그루가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는 보리수 그늘에서 리쿠 콜라 협곡을 굽어보며 땀을 말렸다.

김 선생은 발에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잠시 쉴 참에도 신과 양말을 벗고 느긋하게 쉬었다. 그러나 나는 늘 선 채로 쉬었다. 찬 곳에 엉덩이를 대면 자칫 설사가 나거나 치질이 생기기 때문에 서서 쉬는 버릇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순례에는 앉아서 쉬기 위해 깔개를 준비해 왔지만 아직은 선 채로 쉬어도 버틸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메밀밭 ⓒ김홍성 

 

우리는 사진의 맞은편 산에서 내려와 리쿠콜라를 건넜다. 그리고 저만큼이나 급한 산비탈을  기어올라야했다. ⓒ김홍성 

 

리쿠콜라 계곡은 사진의 짙은 그늘 속 깊숙히 흐른다. ⓒ김희수 

 

김 선생과 필자 ⓒ김희수 

 

랄람의 제일 아랫마을은 리쿠 콜라에 인접해 있었다. 우리는 리쿠 콜라를 건너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쭈부룽 반장에서 리쿠 콜라로 흘러드는 지류를 건너야 했다. 벼랑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내려가 출렁다리를 건너고 다시 벼랑을 타고 능선에 올라섰다. 그러는 사이에 엄청난 짐을 진 현지인들과 몇 차례 조우하였다. 젊은 부부도 있었고, 노인도 있었고, 어린이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힘들게 걷기는 마찬가지였다. 걸음이 자연스럽고 빠르다는 것만 달랐다.

능선에 올라서니 메밀밭 너머로 설산이 보였고, 설산 쪽에서 흘러오는 리쿠 콜라 협곡이 보였다. 멀지 않은 상류에 우리가 건너야 할 출렁다리가 보였고, 출렁다리를 건넌 후 기어올라야 할 까마득한 산비탈과 농가들이 보였다. 그 산비탈은 가장 고생스럽게 기어오른 산비탈이었다.

능선에 퍼져 있는 메밀밭을 지나 리쿠 콜라의 출렁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산비탈 순왈의 주막에서 차를 주문했다. 부인이 차를 끓이는 동안 주인장이 어디서 오렌지 같은 과일 대여섯 개를 가져다 우리가 앉은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칼을 가져다가 그 중 두어 개를 먹기 좋게 잘라주며 먹어 보라고 했다.

그 과일은 순왈 말로 준월이라 하며 집 뒤에서 딴 것이라고 했다. 한 조각 입에 넣으니 신맛이 아주 강해서 침이 샘솟듯 나왔다. 내가 시다는 표정을 지었는지 앙 다와가 웃으면서 준월은 땀을 많이 흘려서 갈증이 심할 때 먹으면 좋다고 했다.

그러자 순왈 주인장이 말했다. 오늘 땀을 많이 흘리게 될 테니 아직 썰지 않은 것들은 배낭에 넣어가라고. 당연히 돈을 내야 된다고 생각한 나는 잔돈이 든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얼마냐고 물었던 것인데, 주인장은 섭섭했나 보았다.  

- 파이사 아우네 바네 쿠시 차이나. 마뜨러 리누스. (돈을 받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그냥 가져가세요.)

분명 그렇게 말했고, 그것은 의외였다. 산중에서 뜻하지 않은 과일을 얻었기에 사례를 하려는데 사양하다니……. 의심이 많은 나는 순왈 사람들을 이미 두 번이나 겪었으면서도 뭔가 다른 속셈이 있지 않나 싶어 앙 다와를 쳐다보았다.

앙 다와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주인장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도 좋다는 뜻이었다. 김 선생에게 주인장의 말뜻을 설명해 주었더니 김 선생은 신음 같은 감탄사만 흘릴 뿐 말을 잇지 못했다.

- ……. 이 사람들 ……. 순왈이라고 했나요? …….

그 집을 나온 우리는 묵묵히 비탈을 내려왔다. 바람이 불고 있었고, 맞은 편 비탈로 이어진 낡은 출렁다리는 엉성했다. 출렁 다리를 건너니 뙤약볕이 내리쬐는 산비탈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슬땀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비탈을 올랐다.

앙 다와도 몹시 힘들어 했으니 우리는 오죽했겠는가. 김 선생은 용을 쓰느라고 발 뗄 떼마다 어이구 어이구 구령을 붙였다. 여러 차례 쉬어야 했고, 쉬는 참에 준월을 잘라 즙을 빨아 먹으니 과연 갈증이 가시는 것이었다.리쿠콜라가 내려다 보이는 산비탈에서 준월의 즙을 빨면서 우리는 그 골짜기에 숨어 사는 순왈이라는 종족의 별빛 같은 이름을 마음에 새겼다<계속> 

깨꽃이 핀 우물가에서 한 소녀가 노래를 부르며 손을 씻고 있다 ⓒ김홍성 

 

추수하는 밀밭 ⓒ김희수  

 

리쿠콜라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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