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윤 한 로

 

어떤 정신도 어떤 지식도 어떤 지혜도
어떤 명예도 재능도 어떤 천재도 기교도
철학도 어떤 주의도 어떤 믿음도 가치도
양심도 선행도 희생도
어떤 철판도 고집불통도 오만불손도

너덜거리는, 움푹 파인, 퀭한,
궤짝 같은, 시궁창 냄새나는
가난에 비길 수 없다, 이길 수 없다

가난에 푹 빠져, 똥구멍이 찢어져라
가난한 사람들한테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가난을 위해
헤매라면 헤매고 굶으라면 굶고
뼈를 깎으라면 뼈를 깎는
가난 순교자, 가난 광신도

그대 거룩하고 위대한 가난 그 앞에
영혼은 그만 송두리째 뽑혀
선을 넘고 도를 넘는다, 선을 넘고
도를 넘어 꼴통처럼 난폭하니
가난 그 앞에선 마침내 문학 또한
불완전으로 미완성으로 장광설로 흐르니
걷잡을 수 없으니

두꺼운 그대, 비는 내리고
오늘 밤 내 어찌 다 읽으리

 

 


시작 메모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에서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그 퇴역 군인은 우리 착한 주인공 알료사에게 갑자기 진정한 요술 하나를 보여 주겠다더니, 두루미처럼 목을 길게 뽑곤 뻘쭘하더니, 울 듯 말 듯, 절을 할 듯 말 듯하더니, 허나 다음 순간 그 큰돈을 바로 구겨서 구둣발로 짓밟더니, “이따위 돈하더니, 하늘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다시 뻘쭘해하더라. 좀 잘난 체하더라. , 그 가난한 퇴역 군인은 자기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작가 이전에 천재 이전에 가난에 푹 빠진, 가난 뱃속까지 들어갔다 나온, 가난을 억세게도 사랑하는 의인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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