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영의 고려아리랑 ⑦]신한촌 고려인 사회를 이끌었던 천도교를 아십니까?
[최희영의 고려아리랑 ⑦]신한촌 고려인 사회를 이끌었던 천도교를 아십니까?
  • 최희영 전문기자
    최희영 전문기자 yryr1998@hanmail.net
  • 승인 2019.07.0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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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국 씨 월북 소식에 송범두 천도교 교령과 우즈벡 여행지에서 나눴던 여러 대화를 반추하다

 

사마르칸트 기차역에서 타슈켄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1937년 고려인의 강제이주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송범두 교령 모습. 그는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으로 있던 2018년 1월 29일부터 일주일가량 기자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한 바 있다. Ⓒ최희영
사마르칸트 기차역에서 타슈켄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1937년 고려인의 강제이주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송범두 교령 모습. 그는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으로 있던 2018년 1월 29일부터 일주일가량 기자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한 바 있다. Ⓒ최희영

 

77일 일요일. 최인국 씨 월북 기사로 전국이 하루 종일 들썩였다. 보도를 듣자니 최인국 씨는 1967년부터 5대에 걸쳐 천도교 교령을 연임했던 최덕신(1967~1973) 씨의 아들이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천도교 집안 출신의 최동오(崔東旿) 선생이다.

 

순간 송범두 천도교 교령이 떠올랐다. 그와는 지난해 겨울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함께했다. 당시엔 천도교 전위 단체인 동학민족통일회상임의장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전국대의원대회를 통해 제57대 천도교 교령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41일 취임해 첫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동학농민혁명기념식’(511)에 참석하는 등 여러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동학정신 고유의 맛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중앙아시아 고려인들만큼은 아직 우리 고유의 동학정신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을 거란 믿음이 있어 이번 여행길을 따라나섰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여러 고려인 어르신들도 만나 뵙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2018129일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 그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동학 DNA의 원형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연해주를 떠나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뼛속 깊은 곳에 동학정신이 살아 있을 거며, 그들과 오랫동안 어울려 산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에게도 당연 동학정신이 스며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도 했다.

 

송범두 교령은 한국추사회 초대작가로 활동 중이며, 서각(書刻)에도 조예가 깊다. 개벽 잡지의 복간을 열망하며 그는 수시로 개벽을 즐겨 쓰고, 판다. Ⓒ최희영
송범두 교령은 한국추사회 초대작가로 활동 중이며, 서각(書刻)에도 조예가 깊다. <개벽> 잡지의 복간을 열망하며 그는 수시로 <개벽>을 즐겨 쓰고, 판다. Ⓒ최희영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가 자료 하나를 꺼내줬다. 1922228일 자 동아일보 기사였다. 천도교를 텬도교로 표기하고, ‘전보뎐보로 표기된 기사는 블라디보스토크 지명도 해삼위(海參崴)’로 표기했다. 해삼위는 1860년 베이징조약 이전까지는 중국 땅 하이션와이였다.

 

해삼위 신한촌에 있는 천도교 교구에서는 교당 개축비를 모집하기 위하여 연극단원 25명을 조직하여 조선 내지에 오기로 결정되었다는데 삼월 상순에 해삼위를 출발하리라 하며 방금 발기자 중에 가장 유력한 정규선 씨는 '인생의 눈물'이라는 각본을 창작 중이라는 바, 그들이 삼월 상순에 조선에 오기로 작정한 것은 사월 초에 경성 천도교 본부에서 동교의 천일기념 행사를 거행함으로써 이 기회를 이용하여 유지의 기부를 많이 모집코자 목적함이라더라(해삼위 전보)’

 

흥미로운 기사였다. 사실 동학 천도교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우리 민족종교라는 사실과 1860년 최제우 선생이 창도했고 2세 교조 최시형 선생과 3세 교조 손병희 선생 정도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우르겐치 공항에 도착해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짐을 기다리며 그에게 물었다.

 

천도교 교세가 대단했었나 보지요? 1920년대에 벌써 블라디보스토크 교구까지 있었다는 게 우선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연극단을 만들어 조선 내지 공연을 떠난다는 기사가 참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내지 공연은 잘 됐다고 하던가요?”

 

당시 천도교인 수가 300만 명가량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인구가 2,000만 명쯤이던 시절이니 일곱 명 중 한 명이 천도교인이었던 셈이지요. 통계를 보면 1920년대 기독교인이 35만 명가량이고, 불교신자 수가 20여만 명이었다고 하니 교세가 상당히 컸죠. 블라디보스토크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영국과 미주, 심지어는 쿠바에까지 천도교 교당인 종리원이 있었습니다.”

 

중국 길림성에 세워졌던 화성의숙 당시 모습. 이번에 월북한 최인국 씨의 할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최동오 선생이 이곳의 초대 숙장을 지냈다. 독립군 장교 양성소였던 이곳에서 1926년 최 선생과 김 주석이 스승과 제자 사이로 처음 만나 오랜 연을 이어 갔다. Ⓒ독립기념관
중국 길림성에 세워졌던 화성의숙 당시 모습. 이번에 월북한 최인국 씨의 할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최동오 선생이 이곳의 초대 숙장을 지냈다. 독립군 장교 양성소였던 이곳에서 1926년 최 선생과 김 주석이 스승과 제자 사이로 처음 만나 오랜 연을 이어 갔다. Ⓒ독립기념관

 

그의 표정이 밝았다. 그러면서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초대 교구장은 강우규 의거를 주도했던 독립운동가 출신의 김치보(金致寶) 선생이었다고 소개했다. 말하자면 당시 천도교 블라디보스토크 교구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전진기지였고, 신한촌 고려인들의 문화예술 운동을 이끌었던 조선 근대문명의 개화지였다고 자랑했다.

 

그는 또 타슈켄트에 가면 조명희 문학관엘 꼭 들르고 싶다면서 조명희(1894~1938)에 대한 자부심도 드러냈다. 조명희는 19288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연해주로 망명했던 민족작가다. 그가 쓴 시 <짓밟힌 고려>는 문청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암송했을 만큼 유명하다. 그리고 망명지 연해주에서 장편소설 <붉은 깃발 아래서><만주 빨치산> 등을 집필하며 강태수, 리시연, 문금동, 최영근, 김부르크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고려인 문학사의 대부였다.

 

우리 근대문화사를 이끌었던 <개벽>이란 잡지 아시죠? 19207월 천도교가 창간한 잡지인데, 조명희 선생의 마지막 희곡작품과 첫 소설작품도 개벽을 통해 발표됐습니다. 또 연해주에는 1932년 고려극장이 창단됐는데요, 그 역시 블라디보스토크 천도교 교구 연예단 출신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동학 천도교가 당시 신한촌에 미친 영향은 그밖에도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중앙아시아 고려인 후손들에게 동학 정신의 원형이 제대로 살아 있으리라 믿는 거지요.”

 

그와는 일주일가량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김일성 북한 주석이 한때 교육생으로 있던 화성의숙’(樺成義塾)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화성의숙은 독립군 장교 양성소였다. 그곳 초대 숙장이 최동오 선생이었는데, 그가 바로 이번에 월북한 최인국 씨의 할아버지다.

 

최동오 선생은 625 당시 북으로 올라가 제자였던 김일성 주석과 해후했다. 그리고 북한 정부에서 여러 요직을 거치다 1963년 평양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최덕신은 한국 정부에서 외무부장관, 서독대사 등을 거치며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다 그 역시 1986년 미국을 거쳐 북한으로 이주했다.

 

1949년 경남 남해군에서 태어나 천도교 선도사, 중앙감사, 신인간사 대표, 유지재단 이사, 도정, 연원회 부의장,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 등을 거쳐 2019년 3월 전국대의원대회를 통해 제57대 교령에 선출된 송범두 신임 교령의 취임식을 알리고 있다. Ⓒ최희영
1949년 경남 남해군에서 태어나 천도교 선도사, 중앙감사, 신인간사 대표, 유지재단 이사, 도정, 연원회 부의장,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 등을 거쳐 2019년 3월 전국대의원대회를 통해 제57대 교령에 선출된 송범두 신임 교령의 취임식을 알리고 있다. Ⓒ최희영

 

몇 년 전 중국 길림에 있는 화성의숙 터를 가본 적이 있습니다. 김 주석과 최동오 선생의 인연이 좋은 영향을 미쳐 북한에서는 천도교가 가장 존중 받는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지요. 앞으로 좋은 시절이 오면 천도교가 남북의 다리를 잇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화성의숙을 복원하기 위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거고요.”

 

송 교령과의 우즈베키스탄 대화가 또렷 떠올랐다. 그러면서 일요일 하루 종일 그들 3대를 생각했다. 역사가 낳은 가족사의 비극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이 역시 동학을 창도했던 최제우 선생의 멀리 본 혜안 중 하나일까? 그나저나 보수 쪽에선 천도교에 대해 여러 비난을 쏟아낼 것 같다. 그런 비난으로 송 교령이 곤혹스럽지나 않을까, 잠시 걱정했다. 마침 그런저런 이야기를 담은 송범두 교령의 중앙아시아 기행에세이가 곧 나온단다. 거기엔 화성의숙이야기와 스승과 제자로 만났던 최동오 선생과 김 주석 이야기도 자세히 담아냈다는 소식이다. 세간의 관심이 더욱 클 것 같아 어떤 내용이 담겼을지 그의 책 출간이 부쩍 기대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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