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5일 오전 윤석열(59, 사법연수원23기)검사가 검찰총장으로 임기를 시작하였다. 임명장 수여 후 이어진 환담에서 문 대통령이 "검찰총장 인사에 이렇게 국민 관심이 모인 건 역사상 없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와 대중적 관심 속 총장이 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골 검사 윤 총장에게는 검찰개혁이라는 임무가 남아 있다. 그리고 2년간 검찰을 이끌며 역대 검찰총장 중 여섯번째로 중도퇴진하지 않고 임기를 꽉 채우고 퇴임한 문무일 전 검찰총장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식 방송 갈무리 장면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식 방송 갈무리 장면

 문 총장은 박종철 열사 유족,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 민주화 운동 희생자 유가족 모임 등을 직접 찾아가 사과 하고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등 과거 검찰의 무리한 수사/기소에 대해서도 검찰의 수장으로서 직접 사과하는 등 검찰의 셀프개혁 의지를 피력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 중의 하나가 20여년 전 당대 최고의 만화가였던 이현세 화백의 작품 <천국의 신화>를 두고 검찰이 음란하다면 수사를 벌인 사건인데 이건 간섭 할 것이 없어 하다못해 만화, 예술 즉 표현의 자유에까지 공권력이 침해한 검찰, 아니 우리나라의 흑역사 중 하나이다.

 <천국의 신화>는 1996년 말부터 성인 만화잡지 '미스터블루'에 연재되어 97년에 첫 단행본이 출간된 단군 왕검의 창세기를 다룬 이현세 작가의 야심작이다. 태고 시대부터 발해멸망까지 총 100권짜리 장편으로 집필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검찰의 수사로 인해 1998년에 일차적으로 종결되었는데 흥미진진한 전개와 아름다운 그림체, 신화 시대로부터 역사 시대까지 이어지는 오랜 세월 동안 영웅들과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잘 보여준 대서사시로 우리 만화를 한단계 업그레드 시킨 대작이자 역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데 검찰은 작품에서 강간, 윤간, 수간 등의 비윤리적인 장면이 너무 많고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와 과도한 폭력성 등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기소, 성인용판은 무혐의로 처리하고, 수정 발매한 청소년판은 개정된 청소년 보호법을 근거로 약식기호하여 3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으며 이 작가를 음란폭력물제작 혐의로 기소했다. 출판사는 이에 응해 벌금을 냈지만 이현세 본인은 작가 차원에서 항소를 하는 등 논란이 가시화 되었고 소송으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은퇴를 선언하였다. 더불어 그 만화를 연재했던 성인 만화잡지 미스터블루도 폐간을 길을 걷고 말았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검찰역사관에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적한 검찰 과오와 관련한 대국민 입장을 밝히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제공: 연합뉴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검찰역사관에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적한 검찰 과오와 관련한 대국민 입장을 밝히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제공: 연합뉴스

 학교 내 폭력서클, 일진, 학교폭력, 청소년범죄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걸고 넘어지는게 만화, 오락, 영화 등이다. 일정 수위 이상 폭력적인 매체나 게임이 폭력성을 키우고 모방범죄가 일어나며 청소년 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논리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만화를 악으로 규정하고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방불케하는 '만화 화형식'을 집행하고 오락실은 음성적이고 퇴폐적인 불량청소년들이 가는 곳으로 규정, 박멸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런 편견은 꼭 만화나 대중 미디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전공자들은 사물에 대한 선입견이 없이 누구보다 열린 사고를 가질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피아노 전공자 중 한 명은 자신이 연주하는 곡 외에는 관심도 없고 바그너 음악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도 들어보지도 못했으면서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좋아했다는 그 이유로 '폭력적인 음악'으로 규정해 버리고 듣지 않는다. 작곡가의 남편이자 모 대학의 공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어떤 분은 고상하고 우아할 거라고 여기고 관람한 오페라에 창녀가 등장인물로 나와 기겁을 하고 공연 도중 나왔다고 하는 등 본질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경우가 너무나 빈번하다. 또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쇼스타코비치 등의 구 소련 작곡가들의 작품은 음악인에 의해 미적으로 연주를 거부 당한게 아니라 정부에 의해 검열당해 불온한 것으로 취급당했으며 이 정부 들어서도 여성가족부의 ‘아이돌 외모 지침’ 역시 논란을 초래했다.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에서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항목은 획일적 미적 기준을 지양하려는 의도지만 대중의 취향까지 규제하는 건 지나치다하여 결국 삭제하기로 하였다. 

이현세 화백
이현세 화백

 진짜 왕성하게 만화창작에 심혈을 기울였어야 할 40대를 날려버린 작가와 그 작가의 작품을 열망했던 독자들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며 사석에서 이 작가를 만난 문 총장이 당시 검찰청과 법원을 드나들던 이 작가의 모습을 평검사의 한 사람으로 보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부끄러운 사건이다. 덕분에 현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예술가들이 창작의 자유를 얻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예술이 예술가과 일반인들에 의해 평가받고 즐기며 살아 남는게 아니라 권력의 입맛에 따라 재단되는 현실을 절대 잊으면 안된다. '예술계 블랙리스트' 문건 파동이 불과 3년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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