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뭐 하시나?”
연줄과 집안 배경을 묻는 덫에 걸려 그는 숱한 고배를 마셨다.
“자기만 취직하면 우리 결혼해.”

100대1이야.

일차 서류면접을 통과하고 이차 구두 면접장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면접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청년 오포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강한 인상을 주려고 눈썹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헛기침을 하였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지긋지긋한 이 구직전선에서 하루빨리 탈출해야 했다. 취직되면 쪼들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뒷바라지하느라 등골이 빠진 그의 아버지는 허리병으로 드러누워 있다.

자식이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닌다고 자랑을 일삼던 어머니는 아파트 청소부였다. 오포는 살아남기 위해서 일을 해야 했다. 스물여덟, 경쟁에 내몰린 청춘. 하필이면 하고 많은 나라 중에 이 땅에 태어났을까. 그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초중고 학창 생활은 책상에 오래 붙어있는 훈련의 연속이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선택했던 재수 1년. 자존감은 밑바닥을 쳤다. 그리고 대학 생활을 2년 마친 후 군대에서 2년을 보냈다.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로 보낸 복학생 생활. 등록금 마련하려고 보냈던 휴학 1년. 지금은 절벽 끝에 선 구직 2년 차였다. 제발 합격해서 새 출발 하자,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포가 모두 스물다섯 차례 면접을 보는 날이었다. 번호가 호명되자 그는 다른 구직자들과 함께 면접실로 들어갔다.

▲오포는 직업을 갖더라도 밤보다는 낮에 일하는 직업을 갖겠다고 결심했다.
▲오포는 직업을 갖더라도 밤보다는 낮에 일하는 직업을 갖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 뭐 하시나?”

여러 질문과 대답이 오간 끝에 면접관이 심드렁하니 물었다. 오포는 구직과 아버지 직업과의 상관관계를 생각했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무직이었고 투병 중이었다. 연줄과 집안 배경을 묻는 덫에 걸려 그는 숱한 고배를 마셨다. 천국 문 앞에 설치된 부비트랩이랄까. 아버지는 전직 국세청 차장 정도는 되어야 마땅했다.

“농부입니다.”
그는 거짓과 잔머리를 굴리는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100대1인데.

“또 떨어지면 우린 어쩌지? 제발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해봐.”
지난해 대기업에 입사한 여자 친구의 조언을 생각했다. 그녀 아버지 역시 현직은 무직이었다. 전직은 그녀가 취업한 대기업 임원 출신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때 장관의 딸이었다.
“자기만 취직하면 우리 결혼해.”
여자 친구는 말했다. 취직 못 하면 결혼은 꿈도 못 꾼다. 구직이 어려워지자 그녀는 떠나버렸다. 사랑조차 물 건너갔다.

정말 일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든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돈을 왕창 벌어다 줄 인재가 여기 있다고요, 청년 오포는 외치고 싶었다. 면접관은 그의 스펙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리가 보기에 오포 씨는 일할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어요.”
턱선이 날카로운 젊은 면접관이 말했다.
“남들 다 가는 해외연수도 안 갔다 왔네요. 그 흔한 자격증도 없고 말입니다. 요즘엔 변호사나 회계사 자격증도 넘쳐나요. 석박사 따고 노는 사람도 부지기수야. 게다가 영어는 물론 제2외국어도 기본이고 말이에요.”

일하고 싶으면 수련을 더 쌓으라는 말이었다. 당장 기획서를 잘 쓸 수 있는 인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오포라는 인간이 회사가 원하는 잣대에 맞아야 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오포라는 인간을 생산한 부모도 평가대상이었다. 업무 능력만 있고 ‘빽’이 없으면 우리 회사 입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걸, 하는 얼굴로 면접관은 그의 출신 배경을 훑어 내렸다. 오포는 면접관의 메마른 얼굴을 바라보았다.
100대1이라고. 눈을 내리깔게나. 어디선가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목이 마르고 갑자기 허기가 졌다. 100대1 경쟁을 뚫고 대학물을 먹었는데.

“아직도 생활비 타령이니? 엄마 용돈은 언제 줄 거니? 아빠 병원비 대기도 힘들어서 그래.”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오포 핸드폰에 하소연했다.

“사지가 멀쩡한 사내놈이 어디 가서 막노동해서라도 돈을 벌어야지.”
형은 그의 전화를 초장에 끊어버렸다. 오늘 당장 먹을 쌀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미처 하기도 전이었다. 그는 형에게 먹을 준비가 아니라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려고 했다.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변한 것은 없었다. 벽은 높고 꽉 막혀있었다.
일자리를 부족하게 만든 자는 누구인가. 원하는 일과 주어진 일이 다르게 만든 자는 누구인가. 오포는 생각했다. 앞으로 사막이나 광야에서의 직업체험이 아직 남아 있었다. 광야는 취업 길잡이 마지막 살신성인 코스였다. 중동 현장에서 무보수 노예체험을 곁들인 코스였다. 오직 상상력 하나로 만든 이 코스를 마친다 해도 전도가 유망한 것도 아니었다. 이 가시밭길을 택한 청년은 손에 꼽을 만했다. 오포는 직업을 갖더라도 밤보다는 낮에 일하는 직업을 갖겠다고 결심했다. 석 달간 했던 편의점 심야 아르바이트 후유증은 두통과 위경련 증상으로 남았다. 매일 라면을 끓여 햇반 하나를 말아먹었다. 죽기 살기로 해봐야 몸만 상할 뿐이었다. 생존경쟁에서는 언제나 이겨야 했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었다. 구직 확률을 높이기 위해 오포는 온갖 자격증 취득과 실무경험을 더 쌓아야 했다. 구직전선에 뛰어든 오포는 오직 회사에 필요한 인재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100대1일이라니까. 어차피 스카이도 아닌데 눈을 낮추라고.”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의 충고였다. 오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액 연봉을 받는 직장을 다니는 것이 오포가 바라는 삶이었다. 그래야만 학점과 취업 준비에 치였던 대학 생활과 부모님 등골을 파먹었던 등록금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었다. 그는 인턴에서 출발하여 돈과 명예가 보장된 정상에 서고 싶었다.

“이제부터는 일당백이야!”

면접을 마친 청년 오포는 회사 정문을 나서며 외쳤다. 점심시간이었다. 거대한 흑갈색 도심 건물들은 정장 차림으로 각이 잡힌 남자들과 여자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는 아침을 걸러 배가 고팠다. 오후 아르바이트 시간에 늦을까,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어깨에 힘을 주고 싸울 기세로 걸어가면서 그는 오가는 미래의 원수들을 하나씩 노려보았다. <끝>

스마트 소설은 짧은 시간에 대중 영상 매체인 스마트폰으로 읽는 소설입니다. 눈으로 빠르게 읽고 머리와 가슴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박인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 『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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