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교수 작곡가 국현의 음반 리뷰

 의과대학을 졸업한 현직 의과대학교수인 작곡가 국현은 2005년 작곡을 시작하여 2018년까지 260곡이 넘는 곡을 쓴 인성음악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곡가이다. 매년 발매되는 작곡가 국현의 음원들 중에서도 2018년에 출시된 바리톤 공병우의 노래와 피아니스트 배은아의 반주로 녹음된 <바리톤 독창곡집 봄눈>은 그의 가곡예술세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다.

예솔에서 출판된 바리톤을 위한 국현 독창곡집 봄눈, 악보집에 부록으로 음반까지 포함되어 있어 일석이조이다.
예솔에서 출판된 바리톤을 위한 국현 독창곡집 봄눈, 악보집에 부록으로 음반까지 포함되어 있어 일석이조이다.

 

 작곡가 국현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인 음악전문교육이나 훈련이 받은 적이 없는 독학자이다. 오히려 그런 작곡가로선 이색적인 이력이 학술과 아카데미, 사제나 선후배 등의 관계성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과 참신함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기존의 <점성의 힘, viscous force>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보컬 뮤직, 즉 가사가 있는 인성음악에 주로 국한된 국현의 음악은 곡을 쓰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기쁨이자 즐거움으로 느껴진다. 사실 이런 류의 작곡가들, 예를 들어 샘솟는 멜로디와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분방한 슈베르트, 무소르그스키 등등에게 표출되는 타고난 음악성의 방증이자 상술한 정형화되고 규칙적이며 과거의 양식을 아카데미란 미명 하에 획일적으로 주입하는 현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행운(?)에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다. 국현 같이 음악을 사랑하고 순수하게 작곡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과 재능으로 본격적인 작곡 공부에 돌입하였다가 입시교육에 한번 좌절하고 대학에 가면 마음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 더욱 경직된 커리큘럼과 교수들의 보수적이고 편협한 음악관에 의해 훌륭한 곡을 쓰기 위해 음악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진학한 고등교육기관에서 도리어 작곡에 흥미를 잃고 절필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고 겪었기 때문이다. 작곡은 누가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요 본인에게는 오락이 되어야 한다. 그건 연주도 마찬가지다. 연습을 하는 이유는 곡을 습득하고 연주를 잘 하기 위해서인데 그 과정에 고통이 수반되는 건 당연하다. 그걸 극복하지 못하고 스트레스 받고 버겁고 힘들다면 그건 본말 전도요, 생업이 그저 음악일 뿐이다. 

총 16곡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는 국현의 바리톤 독창곡집
총 16곡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는 국현의 바리톤 독창곡집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순환기내과 조정관 교수가 작시한 8편과 함께 강백진 시인의 2편, 박인자 시인의 두 편의 환경 노래 등 총 16곡이 수록된 <봄눈> 음반 중 3번째 트랙의 <동전>은 한국 리얼리티 가곡을 계승하는 변훈의 <명태>나 성용원의 <간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동전이 구르는 형상을 음성화함께 동시에 동전을 의인화하면서 우리네 인생사와 결부시키고 있는데 3+2라는 5/8박자 홑박자에 빠른 템포로 뮤지컬과 같은 극적이 요소를 부각하고 있다. 이런 류의 음악 스타일은 주로 합창음악에서 많이 보이는 바, <동전>이라는 가곡이 4부 합창으로 편곡된다면 더욱 다채롭고 퍼포먼스가 가미된 듣고 보는 재미를 충족시키는 블랙 유머 같은 곡이 될 거라 여긴다. 4번 트랙의 <가을비>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곡으로서 반음계적 전조에 볼프(H.Wolf)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Strauss) 가곡에서의 '흔들리는 조성'방식으로 악곡이 전개되고 있다. 작곡가는 반주음형과 진행에 쇼팽의 전주곡 4번에서 착안하였다고 프로그램 노트에 밝히고 있지만 슬프고 애잔한 선율이 필자에겐 전주곡 4번보단 6번 b-minor가 그리고 리스트의 <순례의 해 1권> 중 '오버만의 골짜기'가 더 연상되었다. 특히 주선율의 모두(冒頭)만 1박이 더 추가되어 감정선에 여유와 호흡을 빠져들게 만든 건 묘수였다. 그래서 같이 듣고 선율에 몸이 따라가게 만든다. 계속 긴장을 가미하고 풀리지 않았던 긴장인 곡의 중간부인 25마디 '산다는 것은 물드는것'이라는 부분에서 이완시켜주며 황홀경에 빠지게 만든다. 이 곡에서 성악 선율은 항상 하행한다. 마치 늦가을에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처럼..

CD 속지에 수록된 작업 노트와 사진들, 작곡가 국현의 음악사랑과 열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CD 속지에 수록된 작업 노트와 사진들, 작곡가 국현의 음악사랑과 열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개구쟁이 같은 면도, 진지한 면도, 천진난만함과 고뇌도 이 한장의 음반에 다양한 악풍과 작곡가 국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에서야 여러 사회적, 역사적 요인으로 인해 가곡이란 장르가 제대로 정립을 못하고 각개로 흩어져서 각자도생도 아닌 그냥 산발적인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지만 서양 Lied의 본고장에선 가곡 자체가 대중들이 즐겨 부르고 행하는 생활예술 그 자체로 출발했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원형적인 힘, 그게 누군가에게 어떤 이름으로 어떻게 불리든 한 민족의 계층 간, 세대 간, 성별 간의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동시에 생활예술로서 동일한 프레임을 제공한다. 우리 예술가들이 전통의 점성을 떨쳐버리고 치고 나가려는 강한 관성으로 곡의 작곡과 제작이라는 일차적인 단계에서 더 나아가 청중들과 만나야 한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ck,1858-1947)의 발언을 소개하며 국현의 <봄눈>음반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를 설득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빛을 보여 줌으로써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자가 멸종하고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여 그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질 때에 비로소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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