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관람하는 태도를 놓고 연극, 뮤지컬 마니아들의 "소리를 내지 않고 타인을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관람"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각에서는 그들의 요구가 너무 엄격해 숨 막힌다고 반박하고 나서고 있다. 손석구, 오혜원, 강한나 등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배우들이 이달 15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드라마에 국정원 요원 정한모 역으로 출연한 배우 김주헌이 출연한 연극 <프라이드>를 단체 관람하였는데 공연이 끝난 후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는 배우들이 공연 중에 웃고 떠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연이어 게재되면서 비매너 관람 논란이 촉발되었다. 오혜원과 강한나 두 배우가 관객들의 관람에 방해가 되었다면 이유 불문하고 죄송하다고 즉각 사과를 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한 이 논란은 16일 오후 손석구가 자신은 부끄러운 관람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하면서 다시 점화시켰다.

대학로의 세익스피어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공연
대학로의 세익스피어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공연

 그날 손석구와 다른 배우들이 어떤 태도로 연극을 관람하였는지는 증거가 남아 있지도 않고 직접 눈으로 본 것도 아니라 알 수 없다. 상식적인 관람 태도의 기준도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며 나에겐 별거 아닌 작은 행동이 타인에겐 엄청나게 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날의 진실공방과는 별개로 필자는 그저 이런 논란이 부럽기만 하다. 클래식 음악 종사자로서 이렇게 듣고 보면서 집중하는 관객층이라도 있으니 이런 논쟁이 벌어지지 클래식 음악회에서 공공의 적이 관객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공연계의 갑론을박은 그저 딴 세상 이야기이다! 공연계에서는 시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연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뜻의 '시체 관극'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일 정도이며 겨울에 패딩을 입고 있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부스럭' 소리가 난다고 힐난하는 것은 물론, 고개를 숙이면 뒷사람의 시야에 방해가 된다고 지적받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의 경우, 좌석 간 거리가 좁고 단차(좌석 간 높이차)가 작아서 주변의 작은 움직임도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소극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런 에티켓은 클래식 음악회에만 가면 모두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음악회 중에 사탕 찾는다고 부스럭거리는 건 예사고 핸드폰 켜 놓고 보면서 딴짓하는 건 애교 수준의 양반 중의 양반이다. 연극과 뮤지컬은 이렇게 엄숙하고 자발적인 집중과 감시와 견제가 이루어지는데 왜 꼭 클래식 음악회에만 가면 애호가들이 다른 일반 관객들 때문에 괴로움을 호소하는가.

대학로 소극장의 연극 객석
대학로 소극장의 연극 객석

 유럽의 클래식이나 조선시대까지의 우리나라 음악공연은 규모가 아주 작거나 왕이나 귀족, 양반이 음악가(가인,가객)을 초대하여 즐기는 예술이었는데 오페라가 탄생하고 돈을 가진 새로운 시민계급층이 성장함에 따라 대규모 관객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도록 거대한 극장과 콘서트홀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의 청중이 한자리에 모여 감상하는 음악회를 뜻하는 용어가 콘서트(Concert)다. 이런 어수선하고 난장판인 콘서트의 분위기를 바꾼 사람이 리스트다. 1839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전쟁터같이 산만하고 정신없는 음악회를 정리하고 나 혼자 출현하는 연주회를 기획했다"라고 쓰면서 자신의 음악을 온전히 들어줄 관객을 원했던 것이고 19세기 낭만파 시대의 낭만주의 예술가상이 성립되면서 클래식 음악회는 연주자 위주, 예술가 우대의 음악회로서 격상된 것인데 한국에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몽땅 생략되고 전혀 역사적인 배경과 누적된 관객층과 향유층 없이 일방적으로 공연장 먼저 짓고 그 안에 사람들은 몰아넣고 있으니 문화적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거대한 대규모의 음악당, 콘서트홀 등이 지어지고 거기에 사람 쪽수를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자생적인 문화시장 형성과 욕구로 인해 만들어진 다수를 수용해서 돈을 벌기 위한 장소가 콘서트홀인 것이다.

클래식 기악음악에서 지금의 콘서트 형태의 음악회 모델을 확립한 프란츠 리스트의 리사이틀을 그린 그림
클래식 기악음악에서 지금의 콘서트 형태의 음악회 모델을 확립한 프란츠 리스트의 리사이틀을 그린 그림

 그럼 꼭 클래식 음악회만 그럴까? 음악 자체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말을 이해 못하고 언어가 통하지 못하는 모든 공연'은 극소수의 마니아를 제외하고는 흥미가 없고 몰입할 수가 없다. 독일어로 된 연극을 대학로 소극장에서 한다고 하면 그 연극에 몇 명이나 가겠는가? 아이돌이나 국내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를 기용한 스타 마케팅 말고 국내엔 무명이지만 웨스트앤드나 브로드웨이의 정통 뮤지컬 배우들이 현지가 아닌 국내에서 원어로 공연하는 뮤지컬엔 정말 그 뮤지컬을 잘 알고 공감하며 내용과 음악을 꿰뚫은 사람이 아니라면 2-3시간은 공연에만 집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일반 연주곡도 아닌 작곡 당시의 사회상과 시대상, 작곡가의 철학과 사상들이 집대성된 '형식과 조형미의 집합체'인 기악곡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몇 번을 듣고 가르친다고 보급화에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클래식 음악 감상층이 확산되게 아니다. 한 번을 듣고도 대번에 그 소절을 파악하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생기는 반면 몇백 번을 들어도 그저 지나가는 소리에 불과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SW아트컴퍼니가 주최하는 자그마한 카페에서의 살롱콘서트에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 중인 관객들
SW아트컴퍼니가 주최하는 자그마한 카페에서의 살롱콘서트에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 중인 관객들

 클래식 음악, 엄밀히 말하면 오페라 아리아 몇 개가 삽입된 20세기 초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연극인 <렌드미어 테너>를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관람하였다. 대사가 한국말이다. 내용을 편안히 이해해 드라마를 따라가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같이 간 일행 중 한 분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연극의 팬이 되어 그때 받은 감동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주변 분에게 적극 홍보하면서 2번을 더 보러 가는 회전문 관객이 되었다. 그 연극에 출연했던 일평생 오페라와 이태리 노래 등 성악만 했던 대한민국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가수들은 오페라와 가곡발표회 등에서는 겪어 보지 못한 비 음악인, 전공자의 자발적인 참여와 환호 그리고 동참에서 우러난 팬심 현상을 맛본다. 오페라? 아마 대단하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겠지만 정말 처음 간 사람이 거기에 빠져 <렌드미어 테너> 열광한 것처럼 입소문 마케팅을 한걸 못 봤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회 관객들은 인간관계상 1-2번은 가게 되지만 더 이상 가지 않는다. 한 명의 팬이 팬덤 확산을 위해 백방으로 뛴다 하더라도 그게 2명 3명으로 늘어나는 게 어렵다. 클래식 음악은 그래서 그 한 명의 팬이 일당백이 되어 머문다.

음악은 음악 외적인 것을 차단한 음악 자체만으로의 순수성과 고유성이 보존되어야 하는 예술
음악은 음악 외적인 것을 차단한 음악 자체만으로의 순수성과 고유성이 보존되어야 하는 예술

 클래식 음악인, 예술가는 그래서 타자(他者)다. 글자 그래도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아닌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해석되고 그런 모습과 기질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타인이 아닌 타자로서 클래식 음악과 예술가들을 존중해야지 문화예술의 특수성을 자꾸 예술 외적인 걸로 외부에서 끌어와서 희석시키면 안 된다. 그럴 때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다중을 위한 콘서트홀에 빠진 상업이자 경영이 되어 버린다. 음악가가 연주회를 놔두고 어떻게 하면 1000석에 가까운 대공연장을 채울까 하는 고민에 빠지면 안 된다. 구조적으로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한 개인이 순수 음악만을 가지고 대공연장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티켓파워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없고 그 정도의 음악애호가 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예술가는 그 시간에 공부하고 연습해야지 타자로서 타인을 만나기 위한 비즈니스에 골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회는 서로 이해하는 못하는 타자와의 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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