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미지를 실천하는 자유시민, 음악으로 남녀노소 공감하고 서로 위안과 사랑을 받는 유토피아.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에 관한 여러 의혹 중 가장 뜨거운 요소는 딸 입시 특혜다. 불의는 못 본체하고 견뎌내도 절대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불이익과 차별에 대한 민감한 국민성과 그에 상응해 건드리면 절대 안 되는 역린인 교육과 병역이 걸린 문제다. 대한민국에서의 교육은 더불어 잘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닌 ‘내 자식만 특수하고 잘 돼야 된다’는 이기심의 발로니 어느 누구 앞에도 교육에 대해 어떤 이성적인 논리를 들이대도 설득과 이해가 안 되고 막무가내다. 교육은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 욕망이 명문대 입학, 자격증 취득, 임용고시 합격 등 다양하지만 말이다. 학위는 배움의 인정 이자 학문적 성취지만 이젠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증으로 전락되었다. 그러니 하나라도 더 남들과는 다르려고 발버둥 치는 증거가 스펙이다.

2019 선화예술고등학교 정기연주회
2019 선화예술고등학교 정기연주회

 필자 역시 자식 키우는 아빠로서 자녀가 속한 유치원이나 학교 행사에 기회 될 때마다 재능기부를 하고 피아노를 쳤으며 진로체험, 학부모 일일교사 등 여러 방식으로 참여를 했다. 그럴 때마다 참 안타까운 게 게 배우는 대상과 학문, 그리고 그 본질에 대한 이해와 존중 대신 모든 포커스는 참가한 부모들의 모든 포커스는 자기 자식에게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호로비츠의 연주보다도 더듬더듬 거리는 자기 자식의 연주가 더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카라얀과 베토벤이 환생해도 관심 없다. 부모들은 객관성을 상실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음악이나 수업의 과목보단 자식들의 움직임과 반응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한다. 50명 이상 연주하는 초등학교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번에 자기 자식은 발견한다. 콩쿠르나 발표가 있으면 당사자보다 더 떨리고 긴장된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오직 나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공부한 사람이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낙관이다. 사실 공부는 누굴 위해서 하는 게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이기적인 행위이지만 그걸 뛰어넘어 자신의 장단점을 알고 보완하면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서로 배려하고 동정과 교감을 이루면서 살아야 하고 그걸 배우는 게 공부다. 8월 28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선화예술고등학교 관현악 정기연주회는 이런 세태에 그래도 한줄기 희망과 긍정의 불꽃을 꽃피운 시간이었다.

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 선화예술중고등학교 현관에 걸려 있는 학교 표어
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 선화예술중고등학교 현관에 걸려 있는 학교 표어

 선화예술고등학교 예술 교육 비전은 예천미지(藝天美地), 즉 '최고의 감동을 주는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이다. 이만큼 예술의 목적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설정한 이정표가 또 어디 있을까! 인생에 있어 끈기를 담을 체력, 덕성 그리고 지적 감수성을 갖춘 예술인으로 가르치는 게 학교 교육의 목표라고 천명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극단적으로 복잡하고 인간성이 상실한 시대, 카오스의 세계에 예술가로서 성장, 아니 예술적 소양을 갖춘 사회인으로서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인재, 그게 선화인이다. 진심을 다해 연주하면서 성실을, 내가 아닌 남과 같이 협주하면서 배려와 협력을, 악보에 기입된 걸 올바르게 해석하고 연주하면서 약속과 신의를 배운다. 오늘의 관현악 정기연주회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지휘자 강창우 선생님과 여름 방학도 반납한 채 연습에 열과 성을 다한 관현악단 학생들
지휘자 강창우 선생님과 여름 방학도 반납한 채 연습에 열과 성을 다한 관현악단 학생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4명의 협연자들의 기량은 출중했다. 특히 2부에선 협연자에서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변신한 트럼펫의 김나연 양은 호흡과 인토네이션이 기성 음악가 못지않게 안정적이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억제한 기운은 2부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통해 점점 잃어가고 협연자와 오케스트라가 같이 고등학생의 풋풋함으로 돌아왔다. 돌도 씹어먹을 왕성한 에너지가 하늘 끝까지 뻗치는 10대의 시간의 흐름과 어른들의 시간의 속도가 어찌 같겠는가. 선화예술고등학교 관현악단이 뮌헨 필하모닉 같은 장중함과 묵직함으로 무소르그스키를 하기를 바랐는가.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각각의 그림을 보고 음악으로 표현한 표제음악인데 프로그램에 곡들에 관한 설명이 없었던 게 아쉬웠다.

2019 선화예술고등학교 정기연주회 공식 포스터
2019 선화예술고등학교 정기연주회 공식 포스터

 이제는 예술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기다. ‘예술의 역사는 예술에 대한 재정의의 역사다‘라고 할 만큼, 예술의 대가들은 앞뒤가 꽉 막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을 타계하고 예술의 흐름을 바꾸었다. 사회가 자유분방해졌지만 오직 돈만 아는 일원화가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자가 되려고 전 세대가 혈안이 되어있고 그런 욕망을 두려워해서 삼가기보다는 조작되고 상품화된다. 이런 심각한 세태에 그래도 한줄기 희망이요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작은 버팀목이 있으니 그게 바로 예술이다. 예술의 존재 이유는 감성과 이성, 육체와 영혼이 조화를 이룬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영위이다.

 음악회가 끝나고 할머니 두 분이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너무 길고 늦게 끝난 데다 관절도 약한데 다리도 펴지 못하고 2시간이 있어 힘들다"라는 하소연을 듣고 넌지시 여쭤보니 본인의 손주들도 아니고 친구 손주가 연주한다고 초대받아서 오셨다고 한다. 그분들께 그래도 오늘 연주회는 그리 길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으나 별 위안이 안 되고 종종걸음으로 바삐 잠실역을 향하셨다. 그분들도 와서 힘들지 않고 같이 공감하고 행복에 빠질 예술, 그게 바로 지금 시대의 클래식 음악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자신의 분야에만 함몰하여 '기능인'이 되어 출세의 테크트리를 타려는 욕망인이 아닌 융합과 감성, 미디어와 예술의 만남, 타 장르와의 경계를 허문 크로스오버, 재미와 감동 그리고 교육적인 효과까지 두루 갖춘 미래 성장형 문화콘텐츠를 제작하고 선도하는 예술인 육성의 선두주자가 선화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첼로와 소프라노가 들려준 30년 전에도 학교에서 연주했고 대학 진학을 위해선 연주해야 할 엘가의 협주곡과 로시니의 아리아 대신 예천미지를 실천하는 자유시민, 음악으로 남녀노소 공감하고 서로 위안과 사랑을 받는 유토피아. 이제 그 문을 열고 개척하는 게 지금 시대 예술과 예술 교육의 새롭고 진정한 정의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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