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소 가는 길 양옆의 하얀 목책을 친 화단에는 늘 나비가 날아왔고 꿀벌들이 잉잉거렸다. 채송화며 나리꽃, 수국이며 맨드라미, 과꽃이며 나팔꽃, 그리고 장미와 국화...... 이런 꽃들을 가꾸는 일은 고모부의 일이었다. 고모부는 이따금 술을 마시고 고모를 때리기도 했지만 평소에는 말없이 꽃밭을 가꾸거나 개밥을 끓여 개를 먹이면서 소일하는 분이셨다.

1960년 무렵의 필자와 필자의 고모 모녀 ⓒ김홍성  

 

햇살 좋은 날 고모네 집 대문에 들어서면 마당 가득 하얀 이불 호천이 널려 있었다. 고모네 여인숙에는 손님방이 열 개가 넘었고, 단 하룻밤이라도 손님이 자고 나간 방의 이불 호천은 반드시 뜯어서 빨아 널어야 직성이 풀리는 고모였다.

 

얼추 말라서 풀이 뻣뻣해진 호천은 밤늦도록 방망이로 다듬이질을 하고 숯불을 피워 넣은 다리미로 다림질까지 해서는 이불에 씌워 꿰매 놓아야 잠이 온다는 고모이기도 했다.

 

햇살이 가득한 한낮, 고요한 마당의 풀 먹여 널어놓은 이불 호천에서는 흰 눈 위에나 어리는 옅은 푸른빛이 감돌았고 비릿한 풀냄새가 풍겼다. 나는 그 푸른빛을 헤치며 풀 냄새를 맡는 재미에 이불 호천들 사이로 뛰어다니곤 했다. 그러면 내 얼굴이나 팔에 풀이 묻기 일쑤였고 고모가 애써 빨아 널은 하얀 이불 호천은 얼룩이 지기도 했다. 그러나 고모는 너무 바빠서 내 장난을 말릴 겨를이 없었다.

 

고모는 할 일이 많았다. 고모는 이불 호천을 널어놓은 뒤에 손님방에서 쓴 호야(심지에 붙은 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호리병 모양의 투명 유리 갓을 씌운 석유 등잔의 일종)의 유리 갓이나 요강을 비누칠한 수세미로 씻어야 했다. 하숙 손님이 많이 든 날은 빨아야 할 이불 호천도 많았지만 씻어야 할 유리 갓이나 요강도 많았다.

털고 쓸고 걸레질할 방도 물론 많았다. 그래서 고모는 쉴 틈은 물론 슬퍼할 틈도 없었다. 고모는 고모부에게 맞아서 멍이 든 눈 밑의 멍을 빼느라고 계란을 손에 들고 마사지를 하면서도 다른 한 손에는 파리채를 들고 방안의 파리를 잡거나 걸레로 방바닥을 문질러 닦는 분이셨다.

 

고모네 여인숙에는 철 따라 예쁜 꽃이 피는 화단도 있었다. 변소 가는 길 양옆의 하얀 목책을 친 화단에는 늘 나비가 날아왔고 꿀벌들이 잉잉거렸다. 채송화며 나리꽃, 수국이며 맨드라미, 과꽃이며 나팔꽃, 그리고 장미와 국화...... 이런 꽃들을 가꾸는 일은 고모부의 일이었다. 고모부는 이따금 술을 마시고 고모를 때리기도 했지만 평소에는 말없이 꽃밭을 가꾸거나 개밥을 끓여 개를 먹이면서 소일하는 분이셨다.

 

고모부의 꽃밭 속에는 조그만 연못도 있었다. 어느 해에는 옥잠화도 피어있던 그 연못은 우리나라 지도를 본뜬 것으로 백두산도 있었다. 백두산 꼭대기에서는 두 줄기 분수가 솟아서 한 줄기는 압록강이 되었고, 한 줄기는 두만강이 되었다.

 

연못 속에는 고모부가 개울에서 잡아다 넣은 붕어도 있고, 미꾸라지도 있고, 메기도 있었다. 연못 속에는 삼팔선이나 휴전선 같은 것이 없어서 물고기들은 남으로 북으로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장난감 같은 연두색 청개구리도 옥잠화 잎사귀에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청개구리처럼 연못에서 물고기들을 들여다보며 혼자 놀기도 했다.

 

고모부는 어느 누구도 꽃밭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다. 특히 꽃밭 속에 있는 연못가에서 어정거리는 것을 싫어했다. 어느 날 고모네 꽃밭 연못가에서 물고기들을 들여다보며 놀다가 고모부에게 잡혔다. 고모부가 내 등 뒤로 몰래 다가와 양쪽 귀를 잡아챈 것이었다.

고모부는 나의 두 귀를 잡은 손으로 내 귀뺨을 감싼 채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나는 귀가 찢어질까봐 발도 못 구르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그렇게 나를 당신의 머리 위로 쳐든 고모부가 말했다.

 

- 뭐가 보이니? 멀리 내다 봐라. 뭐 보이는 거 없니?

 

고모부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 낮부터 어디서 한 대포 하셨나 보았다. 그럴 때 고모부가 원하는 답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 원산이 보여요……. 원산 앞바다에 배가 새까맣게 떴어요…….

 

고모부에게서 놓여나기 위해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보이긴 뭐가 보이나. 내 눈에 보였던 것은 산맥이었다. 북으로 북으로 치달려간 산맥과 산맥 너머로 천천히 흘러가는 이불 보따리 같은 구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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