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명절 중의 하나로 우리말로는 한가위인 추석 연휴가 12일부터 시작됐다. 추석 즈음에는 대부분의 곡식이나 과일들이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시기로 추수를 하기 전, 무더웠고 습했던 여름과 추석 전이면 한반도를 꼭 관통하는 가을 태풍(올해도 어김없이) 등의 중요 고비를 넘기고 미리 곡식을 걷어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게 추석의 본 의미이다. 추수감사절 같은 추수 감사의 의미보다도 일 년 중 가장 날씨가 좋을 때 성묘도 하고 놀면서 즐기는 명절이었다. 농경 시대야 한 동네에 살면서 같이 즐기고 놀고 했겠지만 도시화, 산업화가 되면서 농촌이 텅 비다시피 할 정도로 서울이나 대도시로 사람들이 떠나다 보니 꼭 명절 때 고향을 방문하는 풍습을 생겨 민족의 대이동으로 극심한 교통 정체가 발생한다.

민족대이동, 명절의 시작은 이런 교통체증을 뚫고 장시간 밀폐된 장소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골로 내려가는 운전이다.
민족대이동, 명절의 시작은 이런 교통체증을 뚫고 장시간 밀폐된 장소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골로 내려가는 운전이다. 사진제공: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168

가족 간의 반가운 해후과 화목을 다져야 할 명절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정폭력, 이혼, 명절 스트레스, 교통사고율 등이 가장 높은, 문자 그대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시간이다. 그건 남녀노소 다 해당되는 사항으로 일단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에서 쉼 없는 운전이 고통의 시작이다. 광주가 고향인 필자는 음악회, 세미나, 학술대회, 강연 등의 이유로 평균 한 달에 두 번 정도 광주를 방문하고 여력이 될 때마다 부모님을 찾아뵈는데 평소에는 수서역에서 SRT타고 2시간이면 넉넉한 운행시간이 그제 11일 수요일 밤 9시 30분에 가족들을 데리고 운전해서 내려간 여정은 밤을 꼬박 새우고 졸음과 사투하며 빗속을 뚫고 장장 9시간 만에 광주에 도착한 고행이었다. 이러다 보니 도착하기도 전부터 만신창이가 되어 지치고 도착하니 온몸이 뻐근했다.

기름지고 고칼로리의 기름진 음식이야 먹을 것이 귀했을 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속담과 같이 추석 등의 명절 때나 포식하는 날이었겠으나 지금같이 영양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썩 반갑지 않다. 더군다나 이 음식들을 차리기 위해 하루 종일 쭈그려 앉아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 아내, 며느리, 딸들을 보는 것만 해도 미안하고 스트레스다. 남자들은 요령껏 고무장갑도 끼고 부지런히 상도 나르면서 법석을 떨며 여자들 눈치를 살핀다. 음식을 같이 장만하는건 오손도손 이야기도 나누고 화목을 다지는 좋은 방법이라 교회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자발적으로 봉사 또는 참여하는데 그 생활이야말로 어찌보면 이 시대의 진정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그렇게 살았다. 농사짓고 일하면서 서로 품앗이를 하는 공동체이자 집성촌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만나 서먹서먹 할 수 밖에 없는 동서와 시누이가 즐겁게 음식을 장만하기가 쉽지가 않고 동네 친하게 지내는 아주머니만도 못하다. 또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고학력에 동등한 고등교육을 받은 입장에서 유교의 예를 강요하는 게 시대착오적이다. 결혼은 안 하고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지원금이나 사회적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는 삶의 풍토와 풍습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말짱 도로아비타불이다.

에밀 길레스가 연주한 베토벤 3대 소나타의 커버에 삶의 지혜가 담긴 문구를 적었다. 사진제작 및 제공: 시인 박시우

명절 때만 모이는 모든 식구들이 서로의 비위를 살피고 신경을 곤두서야 하기 때문이며 서로의 사정도 잘 모르고 서먹서먹한 데다가 괜히 말 한마디 잘못하면 싸움 나기 십상이다. 또한 가족들이 다 모이는 날이 명절뿐이 없다 보니 집안 대소사를 같이 의논하려다가 나중에 난장판이 벌어져 이제는 어느 한쪽만이 아닌 모두에게 괴로워진다. 일가친척끼리의 재회에 기뻐하고 덕담을 나누면 좋은데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한다는 이야기가 어른의 충고와 공감 없는 위안에서 신변잡기 정도의 애들 교육, 취직, 연봉 비교, 결혼 등의 불편한 소재이고 추석 밥상머리 민심이라고 포장된 정치, 종교 이야기로 번지면 십중팔구 밥상을 뒤엎고 나오는 사람이 발생한다.

명절은 함께 즐기기 위한 시간이다. 예전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때는 이렇게 일률적으로 국가에서 딱 날을 정해 의무적으로라도 가족을 만나게 하고 또 그때 아니면 각자의 삶이 바빠 고향을 방문하기 힘들었는데 지금도 융통성 없이 농경시대의 전통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게 문제다. 정말 밤을 지새우며 끝없이 내려가는 자동차의 행렬을 지켜보면 길에 돈을 뿌리고 소모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커버에 적어 놓은 이번 추석 필수 행동지침, 사진제작 및 제공: 시인 박시우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커버에 적어 놓은 이번 추석 필수 행동지침, 사진제작 및 제공: 시인 박시우

이제는 명절을 없애자. 인위적으로 명절을 만들고 꼭 그때만 뭔가를 행해야 하는 게 아닌 그냥 쉬라고 하면 알아서 찾아가고 연락하면서 명절 아니어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만들어야지 명절이라 이름 붙여 괜히 눈치 보이고 부담 되는 뭔가 해야 되고 찾아가야 된다는 강박을 버리자는 뜻이다. 그냥 쉬자! 평상시에 자주 연락하고 찾아뵙자. 중장기적으로 명절의 개념을 바꾸자. 시대와 생활 양식에 맞게끔... 차례상 차리고 성묘 오는데서 발생하는 분쟁으로 가족 간의 사이가 멀어지는 걸 원하는 조상님은 한 분도 안 계신다. 본말 전도, 화목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고성이 오가고 서로 상처를 주며 스트레스를 받는 걸 원하는 조상님이 어디 계시고 그게 무슨 효도인가! 허례지....아마 지금의 세대(필자를 포함한) 한국의 전통적인 농경시대에서 파생된 명절의 모습을 겪게 될 마지막 세대가 될 터이다. 20년 후 우리 자식들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간다? 나부터 바라지 않는다.

말러 대지의 노래 음반표지에 곡의 가사 중의 하나인 이태백의 시 한 대복을 붙인 가장 마음에 드는 추석인사카드이다. 선군무분훤 (그대에게 속세의 소란스러움이 없으니....) 사진제작 및 제공: 시인 박시우
말러 대지의 노래 음반표지에 곡의 가사 중의 하나인 이태백의 시 한 대복을 붙인 가장 마음에 드는 추석인사카드이다. 선군무분훤 (그대에게 속세의 소란스러움이 없으니....) 사진제작 및 제공: 시인 박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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