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생 출신 홈런 타자 J 선수, 오늘 밤 홈런 쳐 줄게

1980~90년대 J 선수의 인기는 대단했다.

‘연습생 출신의 홈런왕’이라는 기막힌 스토리를 갖고 있는 데다, 총각이고 방망이도 좋아서 전국 어딜 가나 팬들이 많았다. 특히 뭇 처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원정 경기에 나선 어느 날 J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연타석 홈런을 터뜨려 홈런 레이스 1위로 나선 데다 팀도 단독 선두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번째 홈런은 상금 100만 원이 걸린 ‘행운의 파랑새 존’을 넘어가는 일석삼조의 홈런이었다.

J는 세상이 다 자기 것 같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축하해 주었고, 팬들로부터 축하 전화가 쇄도했다. J가 평소 동생처럼 따르는 김영숙과 술자리를 함께한 것은 필수 코스였다. 영숙이는 J가 속해 있는 보라매 팀이 인천 원정 경기 때마다 묵는 송도호텔의 현금출납 직원이었다. 영숙은 열렬한 야구팬인 데다 마침 고향이 보라매 팀의 연고지인 충청도라 숙명적으로 J의 열렬한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J도 영숙이가 싫지는 않았다. 썩 뛰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서글서글한 눈매에 뽀얀 피부, 그리고 얘기를 할 때마다 쏙 들어가는 양쪽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

카페 ‘만루 홈런’은 송도호텔 주위에서 가장 분위기 좋은 술집으로 유명했다.

“영숙아! 이 밤에 나를 만나줘서 영광이다. 벌써부터 내가 한잔 사려고 했었다.”

영숙이는 대답 대신 보조개를 들여 보이며 싱긋 웃기만 했다.

‘이거 노총각 죽여주는구먼.’

J는 귀엽게 들어간 영숙의 보조개를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자, 오늘 신나게 마셔 보자고. 더블헤더로 마셔도 좋다고!”

J만큼은 아니더라도 영숙이도 권하는 대로 받아 마셨다.

“내일 경기에 지장이 없겠어요? 저 때문에 (홈런) 못 치면 어떡해요?”

“야구는 내가 하지 영숙이가 하는 거 아니잖아. 걱정 말고 마시라고.”

J는 오래간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오히려 영숙보다 더 취했다.

“아 참, 이제 들어가셔야 되잖아요, 제가 호텔에서 보니까 매일 밤 11시에는 코치들이 방마다 체크를 하는 것 같은데….”

“아~ 그거 괜찮아. 이 코치님이 오늘 밤 내 방은 체크하지 않는다고 하셨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풀고 오라면서.”

“좋아요, 그럼 2차는 내가 살 테니 이제 여기서 나가요.”

아직 9월 중순인데도, 송도의 밤바람은 차가웠다. 영숙이 안내한 곳은 회를 파는 포장마차였다.

“이분 힘 좀 쓰게 싱싱한 거로 한 마리 구워주세요.”

영숙이가 장어구이를 주문했다.

‘이 밤에 나더러 힘을 쓰라니…. 어휴.’

J의 기대는 이제 톡 건드리면 터질 것같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J와 영숙은 1차 ‘카페 만루홈런’에서 많이 마셔서 취한 상태에서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병씩을 더 나눠 마셨다. 이제 J는 바로 앞사람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대취했다.

“보조개 씨, 이제 갑시다. 나의 침실로!”

J가 영숙의 가냘픈 어깨를 자신의 팔로 감싸 안으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웬 침실?”

영숙이가 확- 술이 깬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럼 뭐야? 안 따라오겠다는 거야!”

“제가 어딜 따라가욧!”

영숙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 나 좋아하잖아. 그리고 엄청 팬이라며? 힘도 쓰라며, 장어?”

“팬 맞아요. 그런데 J 씨는 팬 관리를 이렇게 하세요? 그리고 야구장에서 힘쓰라는 거지. 머릿속에 그 생각 밖에 없어욧!”

영숙이는 말을 마치고는 포장마차를 뛰어나갔다. 돌발 상황에 멍하니 앉아 있던 J는 숙소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숙소에 도착한 J는 대취해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그러고는 송도호텔 여직원 숙소로 돌진했다.

“영숙이 돌리도~, 내 오늘 밤 홈런 쳐 줄게 그것도 만루 홈런!”

호텔 종업원과 손님들은 뜻하지 않은 프로야구 선수의 한밤중 홈런 소동에 밤잠을 설쳐야 했고, 다음날 보라매 구단 프런트는 J의 돌출행동에 대해 뒷수습을 하느라 바빴다.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었던 김현수(LG), 수비의 대명사 박해민(삼성)도 연습생 출신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었던 김현수(LG), 수비의 대명사 박해민(삼성)도 연습생 출신이다.

 

P.S 프로야구 연습생과 육성군

프로야구는 1군 엔트리 25명과 2군에 속한 40명 등 65명으로 한 팀을 이룬다.

그러나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가능성 있는 선수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과거에는 연습생 또는 신고 선수라 불렀고, 2015년 1월부터 육성선수로 통일해서 키우고 있다.

팀마다 육성군 코치를 따로 두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습생 출신 스타플레이어는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장종훈 선수다.

장종훈 선수는 1986년 배성서 감독의 배려로 빙그레 이글스에 연봉 300만 원을 받고 배팅 볼 투수로 입단했다.

장종훈은 1987년, 구단에 연봉 100% 인상을 요구했고, 구단은 300만 원을 줘도 아까운데, 600만 원을 요구했다며 자르려 했지만, 이재환 코치가 “내가 키워 볼 테니 한 번만 봐 달라”고 해서 겨우 재계약에 성공했다.

장종훈은 2007년 4월, 주전 유격수 이광길 선수가 부상을 당하자 유격수 자리를 꿰찬 후 승승장구, 1990~92년까지 3시즌 동안 홈런왕 3연패를 했는데, 특히 1992년 프로야구 최초로 40홈런(41개)을 돌파하는 등 19시즌 동안 340개의 홈런을 때려, 오른쪽 타자로는 최다홈런 기록을 갖고 있다(1위 이승엽 467개, 2위 양준혁 351개, 3위 장종훈 340개).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도 연습생 출신의 대명사이고, ‘역대 최고의 포수’로 불리는 SK 와이번스 박경완 코치도 연봉 600만 원의 연습생 출신이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었던 김현수(LG), 수비의 대명사 박해민(삼성)도 연습생 출신이다.

또한 LG 트윈스 한선태 투수는 프로야구 최초로 비등록 선수 출신 야구선수다.

그동안 프로야구는 초·중·고등학교 시절 야구선수로 등록하지 않았던 선수는 선수로 뛸 수가 없었다. 그러나 2018년 비선수 출신도 입단 할 수 있게 KBO 규정이 바뀌면서 2019년 6월 25일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LG 트윈스 대 SK 와이번스전에서 비선수 출신 한선태(LG) 선수가 정식으로 데뷔전을 가져, 새로운 프로야구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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