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의 초입, 한국정치사에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의석 110석과 막강한 정치권력을 가진 제1야당의 대표와 국회의원들이 줄을 지어 삭발식을 하고 있다. 국회도 멈추며 행정부도 가로막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헌법기관들이 보기 드문 집단 삭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필자는 34년전 입대할 때 결연한 표정의 청년 수백명이 삭발하던 기억을 되살려보지만, 내용은 완전히 판이하다. 배경음악은 애국가이고, 분위기는 내내 침통하고 엄숙하다. 이들의 삭발식은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고, 삭발을 감행한 황교안을 연호하는 지지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첫 삭발자인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 황교안 대표, 이주영 심재철 강효상 의원에 이어 19일에는 김석기, 최교일, 송석준, 장석춘, 이만희 의원이 삭발식을 거행했다. 이런 식으로 매일 10명씩 삭발한다면, 앞으로 열흘 정도면 자유한국당 의원 전원이 삭발할 것이다. 국회 본회의가 열린다면 삭발한 100여명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가득할 것이기에 참으로 생경한 풍경이 연출될 것이다. 이에 대한 우려와 우리 정치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언을 한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하면 우리 정치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대결과 갈등의 정치를 멈추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일하는 국회를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의, 경제와 민생의 발전을 이뤄낸다면 국민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국회 입법 팽개치고, 총선용 정치쇼 골몰한다면 심판받을 것

시민들은 황 대표와 의원들의 삭발 모습을 보면서 우리 정치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삭발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함께 총선과 공천을 겨냥한 정치적 셈법이 크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는 황대표가 19일 열린 당 후원회 행사에서 내년 4월 총선과 관련, "이 다음 총선, 7개월 정도 남았다"며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2년 반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런 ‘총선 압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번 삭발식이 지지자들에게 보여주기를 위한 정치쇼이자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행사라는 점에서 극렬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지만, 국민들은 도리어 그 시간에 국회에 복귀해 1만6천건에 달하는 계류법안을 심사하고 빨리 통과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9월 정기국회가 본격 개막하기 전 여론을 한국당 중심의 보수진영으로 바꾸고, 최근 리더십 위기론을 의식해 자신들의 당내 입지를 강화하고 당권을 확고히 장악한 뒤 내년 총선의 공천권 행사와 총선 승리 계획을 실행하려는 정치적 셈법이 훤히 읽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하는 잘못된 행태다. 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하거나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부림을 비유하는 말이다. 사마천 사기(史記) 〈진이세본기(秦二世本紀)〉》에 출전하는 이 고사는 진나라의 권력을 장악한 환관 조고가 신하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 사슴을 말이라고 했다는 말에서 유래한다. 요즘 자유한국당이 보여주는 행태는 자칫 ‘지록위마’와 같은 거짓된 행태로 국민을 오도하며, 국정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는 형국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성경 잠언의 말씀, “자신을 책망하기는 두텁게 하고, 남 책망하기를 가볍게 하라”(躬自厚而 薄責於人)【논어 위령공(衛靈公) 14】는 성현 공자의 말씀도 두루 살펴야 할 것이다.

여당은 정치력 발휘, 야당은 국회에서 일하며 경쟁해야

국민이 바라고 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민생과 국정의 성공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와 정부에 대해 직언과 고언을 아끼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야당을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해 국정의 성공을 이끌어야 한다. 집권여당의 무한책임을 살펴보고, 국정운영에서 실패한 부분은 철저하게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유능하고 실력있는 정치를 해야할 것이다.

한국당은 국회로 복귀해 입법 책임을 다하는 한편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방식으로 행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야당의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야당 입장에서 심각한 경제와 민생에 대해 비판과 협력을 보내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정책경쟁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극단적인 발목잡기나 반대를 위한 반대에 골몰하는 정략적 행태를 버리고, 과거 집권 경험과 다양한 정치적 자원을 활용해 대안을 제시하고 민생입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정상적인 정치, 국민의 편에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정치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민주주의의 삼권분립과 입법부의 정상작동, 국민을 위한 정치가 펼쳐져야 할 것이다.
 

[함께 읽는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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