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과 목초를 쌓아두는 창고를 뜻하는 사일로(Silo)는 경영학에서 '회사 안에서 성이나 담을 쌓은 채 다른 사람, 부서와 소통하지 않고 갇혀 있는 부서 이기주의 또는 전문가들의 행태'를 뜻한다. 오페라는 공연예술의 최고봉이자 집합체로서 여러 그룹들이 유기적으로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쳇바퀴 굴러 가듯이 착착 맞아떨어져도 이상적인 공연을 구현하기 어려운데 열약한 국내 클래식 음악 환경에선 고정이나 정규직 없이 거의 다가 비 규정직으로 다방면의 사람들이 동서남북에서 모여 헤쳐모여 식으로 한다. 모든 것들을 총괄하고 집행해야 매니지먼트는 사실상 연주회 성사를 위한 관리 이상의 영역엔 여력이 없다. 이 모든 게 언어와 풍토가 다른 외국 음악, 도저히 공감할 수 없고 즐겁게 빠질 수 없는 클래식 음악의 한계인데 음대를 나온 전공생들은 자신의 직업을 "예술활동"이라고 포장해서 예술가들이 배고프지 않게 관이나 기업에서 적극 후원하라고 호소한다. 마중물은 필요하다. 기회의 공정은 절대적으로 필수다. 하지만 그걸 바탕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키워 자생하고 독립해야지 언제까지 의타적으로 국가가 이들을 구제해 주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음악인이 음악인을 통해 돈을 버는 구조가 종속되어야 하는가?

경영학에서의 사일로라는 용어의 정의
경영학에서의 사일로라는 용어의 정의

콘체르탄테 류의 음악회는 궁여지책이다. 실제 오페라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래도 맥을 이어가기 위한 고군분투다. 그래서 기획의 타이틀이 오페라 눙크가 되었든 팝페라든 콘서트 오페라 등 오페라를 보급하고 이식시키기 위한 이름만 다르지 기획의 내용은 별 차이가 없을 음악회들의 성사는 실현 자체가 성과다. 사실 어떤 제목의 기획이든지 한계는 명확하다. 오페라라는 음악의 본질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콘서트 가이드를 세우든, 해설이 있는 오페라란 이름으로 하든, 자막을 띄우든, 편집과 각색을 해서 멋대로 오페라 자체를 가위로 난도질을 해서 올리든 뿌리는 오페라 자체에 있기 때문에 이제 이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될 시점에 온 거 같다. 주최한 합창단, 스페셜 게스트로 함께한 성악가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유기적으로 하나(One team)로 움직여야 하나의 감동과 정신(One spirit)를 선사할 수 있는데 그러지도 못하는 현실이자 환경이다. 그냥 듣는 게 아닌 알아들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하다. “고음과 소리를 잘 낸다”라는 외형적인 기교만 보지 말고 그 행위만 집중하지 말고 이면에 담긴 노래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 왜 눈물을 흘리고, 왜 칼에 찔려 어깨에 들러 메어지고 나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연주 도중 왜 갑자기 무대 뒤에서 괴성이 나오고 갑작스레 하얀 와이셔츠가 피로 물들었는지 알고 감상해야 하는데 그건 어렵고 가혹한 요구다.

음악의 가장 큰 적: 인정에 목마른 행위자들(Performer)과 몽매한 청중들(the Mass)

대중가수 싸이의 무대, 환호와 갈채를 보내고 같이 놀고 싶은가? 그럼 거기에 가라!
대중가수 싸이의 무대, 환호와 갈채를 보내고 같이 놀고 싶은가? 그럼 거기에 가라!

내용을 안다면 손뼉을 칠 데 쳐주고 웃어주고 호응하며 진정성을 담아 반응하며 같이 즐기고 소통이 될 건데 음악 자체가 막혀있으니 그걸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아닌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해석되고 칭찬, 박수갈채와 맹목적인 환호에 목말라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긴장과 떨림을 감추고 관객들의 브라보에 용기를 얻고 추켜세우는 말에 어린아이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노래 하나 부르고 들어와서 무대 뒤에서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고 서로 추켜세워주며 어깨를 토닥여준다. 자기 돈으로 개최하면서 몇년에 한번 올리는 독주회엔 무슨 큰 벼슬이나 한거 같이 예민하고 마치 입시를 앞둔 수험생 같다. 하긴 빈 수레가 요란하고 명인은 연장 탓하지 않으며 레슨이 아닌 음악이 일상인 사람은 무대 자체가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그들의 성취와 평생에 걸친 학문과 공부의 성과에 그렇게 목말라 있고 피드백이 전무하다는 방증이다. 그럼 차라리 클래식 하지 말고 다른 엔터테인먼트나 대중음악을 하지 왜 클래식 음악을 하면서 이율배반적인가? 곡의 내용에 맞는 반응이 나와야지 왜 알지도 못하면서 손뼉 치고 소리 지르는 야만적인 행위를 하고 그걸 방관하고 조장하는가!

최고의 연주는 아는 사람이 하는 거다. 자신의 스승이나 지인이 하면 무비판적인 박수와 환호다. 음악 본질을 너무나 망각해버린 개인 추종의 홍위병에 불과하고 그런 걸 조장하고 거기에 취해 그걸 음악 하는 희열로 착각한다. 일례로 국내 정상급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회가 끝나고 지휘자가 단원들 하나하나 소개와 인사시킬 때 한 연주자에 아이돌스타를 방불케 하는 괴성과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도저히 그 정도의 추앙을 받을 실력도 아니었고 그런 곡도 아니었는데 맹목적인 갈채에 화가 났다. 알고 보니 그 연주자의 제자들이며 다른 선생의 제자들이 소리를 지르니 그에 질세라 오기로 더 크게 고성을 내지른 것이다. 그렇게 악을 쓴 관객이나 좋다고 흡족해하는 선생이나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레퀴엠이 끝나고도 함성을 지를 우매한 인간들이다.

폴란드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 팬 사인회에 몰린 관객들, 부러운가? 당신은 이러고 싶어서 음악 하는가? 당신도 이 행렬에 동참해 음악이 아닌 좋아하는 사람의 연주회에 몰려가서 환호하고 일체감과 동질감을 얻고 싶은가? 그것보다 쇼팽이 남긴 선율이 대단하지 않는가? 푸치니의 작품에 집중하고 제대로 부르기나 해야지 그러지도 못하면 부끄러워 해야지....
폴란드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 팬 사인회에 몰린 관객들, 부러운가? 당신은 이러고 싶어서 음악 하는가? 당신도 이 행렬에 동참해 음악이 아닌 좋아하는 사람의 연주회에 몰려가서 환호하고 일체감과 동질감을 얻고 싶은가? 그것보다 쇼팽이 남긴 선율이 대단하지 않는가? 푸치니의 작품에 집중하고 제대로 부르기나 해야지 그러지도 못하면 부끄러워 해야지....

철저히 인물 위주로 움직인다. 자신의 감성과 판단, 기준이 아닌 남의 시선, 남의 판단에 의존하는 의타적이고 비 독립적인 사고방식 탓인지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고 하면 대번에 영웅이 되고 언론은 기삿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마구 달려들어 스타 만들기에 나선다.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쏠리게 되고 우르르 몰려가 그 사람만 열광적으로 추종한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냄비근성이란 말로 대변되는 일시적이고 맹목적인 여론몰이와 관심의 집중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교조화가 우려스러운 것이다. 근대 이후 우리는 빈곤과 각박한 현실을 타파해 줄 메시아를 원했고 그래서 누군가 주목받고 각광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소위 “대표성의 원리”가 발동하여 우리는 좀 과장해서 목숨을 건다. 맹목적인 애정을 보내기 일쑤이고 자신을 실망시킬 경우 필요 이상으로 욕을 한다. 해방 이후 모든 사회 분야에서 자수성가한, 불굴의 역경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개인적인 스토리와 영웅담에 위안을 받고 희망을 얻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롤 모델로 삼고 삶의 원동력으로 삼았으며 우상화시켰다. 그런 우상은 비판과 비난을 허용하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으로까지 승화되었다. 합리적인 의심과 발전적인 조언도 “지가 뭔데 감히”라는 공공연하고 광범위한 공감대로 묵살되고 무시되었으며 마녀사냥으로 매장시켰다.

최근에 유일하게 '안다 박수'와 대중음악 콘서트 풍의 요란스러움이 없는 고품격의 연주와 곡이 있었다.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이 암포르타스로 분한 서울시향의 바그너 파르지팔 연주회였다. 음악이 그리고 그 음악에 속해 부른 노래가 압도해 버렸기 때문이다. 음악에 집중, 무대에 올라갔으면 최고의 연주를 해야지 또 그러지 못한 클래식 음악은 본연의 찬란함을 발휘하지 못한다. 냉정하지만 '클래식 음악이야말로 1등만이 살아 남는 더러운 세상'이기 때문에 음대 나온 모든 사람들이 구제 받지 못한다. 영역 간의 소통을 가로막는 사일로를 부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작금의 끼리끼리 전공자들끼리 모여서 십시일반 운영하고 공연하고 자기들끼리 인정하고 모여서 손뼉 치고 위로하는 데 의의를 두면서 자기 돈 내고 무대에 올라 스스로 만족하고 자립과 독립하지 못하고 자신의 살을 깎아 먹으면서 재생(再生) 한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당신은 이 세 가지를 갖추었는가? 그러지 않으면서도 세상 탓하고 힘들다고만 아우성인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당신은 이 세 가지를 갖추었는가? 그러지 않으면서도 세상 탓하고 힘들다고만 아우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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