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일본에서 사망한 재일동포 장명부 씨는 선수 시절 너구리라는 별명답게 능수능란한 피칭으로 타자들을 농락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는 너구리보다는 ‘곰’짓을 해서 거액을 놓치기도 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이 끝나고 다음 시즌에 대비해 동계훈련 중이던 1983년 1월 어느 날 재일동포 1호 장명부 투수가 삼미 슈퍼스타즈 홈구장인 인천구장에 나타났다. 인천구장에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허영 사장을 비롯해서 김진영 감독 등 모든 관계자가 장명부의 일거수일투족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프로야구 원년 꼴찌를 한 팀의 구세주로 우리보다 한 수 위라는 일본 프로야구 중견급 투수가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와 입단계약을 체결한 장명부 선수(사진= 연합뉴스).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와 입단계약을 체결한 장명부 선수(사진= 연합뉴스).

그날 저녁 허영 사장은 장명부를 인천 올림푸스호텔 라운지로 불러 가볍게 한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이호헌 사무차장도 함께했다.

허영 사장이 이호헌 씨에게 물었다. “이 차장님, 지난해 OB 베어스 박철순 투수가 24승을 올렸는데, 20승 투수가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그렇구 말고요, 메이저리그도 20승 투수라면 최고 투수로 알아줍니다. 더구나 지난해는 팀당 84경기밖에 하지 않았잖아요. 아무리 올해부터 100게임으로 늘어난다 해도 20승 올리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자 허영 사장이 장명부에게 물었다. “후쿠시(장명부) 상, 20승 정도는 할 수 있겠지요?”

장명부는 자신의 일본 이름을 불러 주는 허 사장을 인텔리라고 생각했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한국에서 일본말을 하는 사람은 지식층이라고 들어 왔기 때문이다. “저는 한국에 올 때 각오를 하고 왔습니다.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정명부의 말을 들은 허 사장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30승도 할 수 있나?” 장명부는 허 사장 말을 듣더니 정색을 하고 물었다. “제가 30승을 올리면 뭘 해 주시겠스무니까?”

야구를 잘 모르는 허 사장은 장명부가 정색을 하고 나오자 옆에 있던 이 차장에게 자문을 했다. 이 차장은 서울대를 다닐 때 야구선수 생활을 했었고, 방송국에서 야구 해설을 할 정도로 야구에 관한 한 당대 최고수였다.

“허 사장님, 올해부터 팀당 100게임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 투수가 25경기 정도, 최대 35경기밖에 마운드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30승을 올립니까? 내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절대 못합니다.”

이 차장의 자문을 들은 허 사장은 자신 있게 말했다. “좋습니다. 후쿠시 상이 30승을 올리면 내 1억 원을 주겠소.” 장명부는 깜짝 놀랐다. 당시 1억 원이면 강남 아파트 10채는 사고도 남는 거액이었다. “헷, 1억 원이오?!” “그래요, 1억 원…. 내 각서라도 써 줄까요?”

“됐습니다. 증인으로 이 차장님도 있으무니까요.”

그런데 장명부가 허 사장에게 각서를 받아 두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시즌이 시작되자 장명부는 승리의 화신으로 변했다. 만약 오늘 패했으면 다음날 자청해서 마운드에 올라 반드시 이겨야만 그 다음날 쉬곤 했다. 그렇게 해서 무려 60경기에 출전해서 시즌 종료를 2경기 남긴 1983년 9월26일 해태 타이거즈 전에서 승리 투수가 됨으로써 30승(16패) 고지를 달성했다. 문제는 허 사장이었다. ‘30승=1억 원’은 사실 농담으로 한 얘기였다. 그런데 장명부가 거짓말처럼 30승을 올린 것이다.

어느 날 장명부가 사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사장님! 1억 원 어떻게 된 겁니까.” 영리한 장명부는 1년 동안에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특히 ‘1억 원’이라는 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난처해진 허 사장이 말했다. “내 줌세…. 하지만 10년에 나눠 주겠네…. 그 대신 자네는 매년 30승을 올려야 하네.”

“그렇다면 저도 30승을 10년에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장명부에게 말싸움에서 밀린 허 사장은 私費(사비)로 약간의 돈을 쥐여 주는 것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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