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우즈벡데이’ 맞아 자체 개발한 한국어 학습교재 어플 인증키 선뜻 기증

▲2019년 ‘우즈베키스탄 데이’를 맞아 인사말을 하는 김윤세 한국능력개발원 이사장. 그는 이날 행사에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자체 개발한 한국어 교재 어플 인증키를 대거 기증했다. Ⓒ최희영
▲2019년 ‘우즈베키스탄 데이’를 맞아 인사말을 하는 김윤세 한국능력개발원 이사장. 그는 이날 행사에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자체 개발한 한국어 교재 어플 인증키를 대거 기증했다. Ⓒ최희영

지난 13일 광주에서는 ‘2019 우즈벡데이’가 열렸다. 이 행사 취재차 KTX 시간에 맞춰 서울역으로 가던 길. 시청 앞 서울도서관 외벽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한글을 빛낸 28인 전’. 573돌 한글날을 기념해 서울도서관이 마련한 기획전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걸렸을까? 그리고 30명도 아닌 왜 28명일까? 또 이들에 대한 평가 기준은 뭐였을까? 몇 가지 궁금증을 갖고 벽면 그림들을 살폈다.

대부분 익숙한 이름이었다. 세종대왕이 맨 앞이었고, 그 뒤로는 정인지, 박팽년, 신숙주 등 집현전 학자들이 장식됐다. 또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지장보살 본원경’을 간행한 ‘정의공주’가 포함됐고, 훈민정음을 널리 유통시키기 위해 불전을 간행하는데 공을 세운 ‘신미대사’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이밖에도 허균이며, 김만중이며, 정약종이며, 고종임금이며, 주시경과 최현배가 자랑스러운 이름을 드러냈고, 한글타자기를 처음 만든 공병우 또한 마지막 순서로 장식됐다. 여기서 눈길을 끈 이가 헐버트(Homer Hulbert ․ 1863~1949)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를 집필한 미국인 선교사다.

▲10월 13일 ‘우즈베키스탄 데이’를 맞아 국내 체류 우즈벡 노동자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행사는 광주광역시와 광주지역 인사들의 지원으로 더욱 훈훈한 축제가 됐다. Ⓒ최희영
▲10월 13일 ‘우즈베키스탄 데이’를 맞아 국내 체류 우즈벡 노동자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행사는 광주광역시와 광주지역 인사들의 지원으로 더욱 훈훈한 축제가 됐다. Ⓒ최희영

광주로 가는 내내 그 사람 생각이 났다. 그는 23세 나이로 우리나라에 처음 왔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한양 땅을 밟은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우리말과 글을 배우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어 교재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아쉬움을 직접 해결했다. 그 결과가 ‘사민필지’다. 그는 한글 띄어쓰기와 점찍기를 도입한 최초의 한글학자이기도 했다.

헐버트가 머나먼 타국 땅에 와서 한글 발전에 기여했듯, 이국에서 한글전파를 위해 수고하는 몇몇 지인들이 떠올랐다. 허선행 타슈켄트 세종학당장이 그 경우고, 고려인연구가로 활동 중인 김병학 시인 또한 2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 카자흐스탄에 머물며 한류 전파 1세대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한국어 교육을 위한 김윤세 한국능력개발원 이사장의 역할 또한 특화돼 있다. 공교롭게도 이 세 사람 모두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기업에 취업하려면 ‘EPS-TOPIK’이란 한국어능력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외국인 구직자의 한국어 구사능력과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 정도를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밤잠 안 자고 한국어 공부를 합니다. 또 국내에 와 있는 노동자들도 취업연장을 위해 이 시험 준비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이용섭 광주시장(사진 왼쪽 줄 맨 앞쪽), 쿠드비예프 우즈베키스탄 노동부장관(사진 오른쪽 줄 맨 앞쪽)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주한 우즈베키스탄 노동사무소 개소식 모습이다. 김윤세 이사장(사진 왼쪽 줄 끝에서 두 번째)은 우즈베키스탄 노동부장관의 정책고문 자격으로, 국내 첫 주한 우즈벡노동사무소가 광주에서 문을 여는 데 산파 역할을 맡았다. Ⓒ최희영
▲지난해 9월 이용섭 광주시장(사진 왼쪽 줄 맨 앞쪽), 쿠드비예프 우즈베키스탄 노동부장관(사진 오른쪽 줄 맨 앞쪽)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주한 우즈베키스탄 노동사무소 개소식 모습이다. 김윤세 이사장(사진 왼쪽 줄 끝에서 두 번째)은 우즈베키스탄 노동부장관의 정책고문 자격으로, 국내 첫 주한 우즈벡노동사무소가 광주에서 문을 여는 데 산파 역할을 맡았다. Ⓒ최희영

김윤세 이사장은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수교를 맺던 1992년부터 광주에서 호남직업전문학교를 운영해 왔다. 그리고 고용노동허가제가 본격 가동(2004년)되기 직전인 2002년에는 러시아 모스크바국립항공기술대학 한국유학교육센터로 지정된 바 있고, 재외동포기술연수교육기관 지정(2010년), 광주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지정(2014년), 우즈베키스탄 EPS한국어교육센터 설립(2018년) 등, 이 분야와 관련된 노하우가 묵직하다.

이런 전문성을 인정받아 2000년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20년가량 서울시립 북부기술교육원을 위탁 운영해 왔는가 하면, 금년부터는 서울시립 남부기술교육원을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 중인 국내 최대 규모의 직업교육 산실이다. 그 과정에서 김윤세 이사장은 제2, 제3의 헐버트를 꿈꾸게 됐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글교육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어플 교재를 개발한 것,

“우즈베키스탄 EPS 한국어교육센터를 직접 운영하면서 보다 현실적인 체감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취업 욕구와 현실은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현지에서 유능한 한국어 교사를 찾기도 힘들었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재도 부족한 현실을 보며 어플 교재 개발로 이를 해결해보고자 했습니다.”

▲지난 4월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려인마을 신랑신부들이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모습. 이날 합동결혼식에서 김윤세 이사장 부부는 혼주를 맡아 넉넉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희영
▲지난 4월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려인마을 신랑신부들이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모습. 이날 합동결혼식에서 김윤세 이사장 부부는 혼주를 맡아 넉넉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희영

김 이사장은 이렇게 개발한 한국어 교재가 국내 체류 중인 중앙아시아 고려인 노동자들에게 폭넓게 사용될 수 있도록 우선 배려했다. 그 일환으로 이번 ‘우즈베키스탄 데이’를 맞아 고려인 노동자들을 포함한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에게 이 교재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어플 인증키를 기증 했다. 또 앞으로는 인도네시아어, 몽골어 등 다른 버전의 어플들도 개발해 광주, 김해 등지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열공 중인 여러 나라 노동자들의 한국어 교육도 지원할 예정이다.

이날 ‘우즈베키스탄 데이’에는 400여명의 우즈베키스탄인들이 참석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들만의 축제를 즐겼다. 그들이 좋아하는 축구대회를 열고, 그들만의 전통음식을 만들어 한국 친구들과 나눴으며, 또 춤과 노래로 오랜 타국생활의 지친 몸과 영혼을 달랬다. 광주광역시의 지원과 광주 지역 뜻있는 인사들의 여러 협조가 보태져 더욱 훈훈한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즈베키스탄 데이’에 참석한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의 하이다르 파이지예프 영사(참사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희영
▲‘우즈베키스탄 데이’에 참석한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의 하이다르 파이지예프 영사(참사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희영

이날 행사에는 이연복 한국산업인력공단 국제인력본부장과 김경호 광주광역시 노동협력관, 이은주 서울사이버대학 총장, 김대수 한국산업인력공단 광주지역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또 하이다르 파이지예프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영사(참사관)와 알리세르 슈라이모노프 주한 우즈베키스탄 노동사무소장 등 우즈벡 정부 관계자들도 참석해 김 이사장의 속 깊은 마음을 축하했다.

“김 이사장님의 따뜻한 역할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광주 지역 거주 중앙아시아 고려인들과 이 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참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는 광주 고려인마을에 사는 고려인 신랑 신부 8쌍의 합동결혼식이 있었는데, 그 행사에서 혼주를 맡아 여러 지원을 해주셨고, 또 5월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해 외국인노동자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펼쳐 아주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데이’ 행사장에서 만난 우만선 광주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장의 귀띔이다. 하긴 기자도 그의 통큰 봉사 정신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8월 그는 국제로타리 3710 지구 봉사단원들과 우즈베키스탄의 서부 오지인 카라칼파스크탄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다녀왔고, 또 9월에는 동부 지역 페르가나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의 서부도시 누크스에서 있었던 아랄해 국제 환경포럼을 마치고 반기문 전 UN사무총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김윤세 이사장 모습(사진 오른쪽 끝) Ⓒ최희영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의 서부도시 누크스에서 있었던 아랄해 국제 환경포럼을 마치고 반기문 전 UN사무총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김윤세 이사장 모습(사진 오른쪽 끝) Ⓒ최희영

이어 11월에는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등과 함께 카라칼파크스탄의 주도 누크스에서 개최됐던 아랄해 환경복원 문제를 위한 국제회의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 전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그러다보니 그의 넉넉한 미소가 부인인 유순옥 국제로타리 3710지구 여성봉사위원장 덕분이라는 것까지 알게 됐다.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아니하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하리오. 이러므로 한 외국인이 조선말과 언문법에 익숙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특별히 언문으로서 천하각국 지도와 목견한 풍기를 대강 기록한다.

앞서 소개한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가 ‘사민필지’ 서문을 통해 남긴 글이다. 1890년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130년. 한글은 이제 지구촌 곳곳으로 전파되는 겨레 최고의 자산이 됐다. 그런 점에서 김윤세 이사장의 이번 역할에 박수를 보낼만하다. 그의 내년 봉사내역서엔 또 어떤 항목이 추가될까? 서울로 오르는 길, 만추의 호남평야가 더욱 풍요롭게 보여 사뭇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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