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 히말라야의 산길 - 물바토를 아시나요?
[ 17 ] 히말라야의 산길 - 물바토를 아시나요?
  • 김홍성 시인
    김홍성 시인 ktmwind@naver.com
  • 승인 2019.11.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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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진과 매연과 굉음을 뿌리는 자동차 꼴 안 보고, 송전탑과 고압선 꼴 안 보고, 대형 광고판이나 플래카드 안 보고, 아스팔트나 시멘트 포장 안 딛고 …. 그렇게 백날을 계속 걸어볼 수 있는 길이 우리나라에 있는가?

 

그때 나는 다만 푹 쉬고 싶어서 히말라야 산길을 걸었다. 히말라야 산길이라면 전문산악인들이 거창한 장비를 두르고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위험한 길을 연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도 그 밑동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고 경작지가 있으며 사원이 있다. 울창한 숲이 있고 시냇물도 흐른다. 그리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산길이 있다. 그때 내가 걸었던 피케(Pike;해발 4010m) 기슭의 길도 그런 산길이었다.

 

길의 형태는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등산로와 비슷하다. 그러나 피케 언저리의 산길은 관광객을 위한 길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을 지켜주는 길이다. 장에 다니는 길이며 마실 다니는 길이며 대처로 드나드는 길이다. 현지인들은 물바토라고 부르는 이런 길이 네팔 히말라야 연봉을 따라 동에서 서로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분진과 매연과 굉음을 뿌리는 자동차 꼴 안 보고, 송전탑과 고압선 꼴 안 보고, 대형 광고판이나 플래카드 안 보고, 아스팔트나 시멘트 포장 안 딛고 . 그렇게 백날을 계속 걸어볼 수 있는 길이 우리나라에 있는가? 없다. 그래서 히말라야 산길을 걸었던 것이다. 물론 백날을 걸은 것은 아니다. 봄과 가을 두 계절 합쳐서 겨우 5주를 걸었을 뿐이다.

 

 

현지인 한 명을 길동무로 삼았다. 그는 그 고장 출신이므로 길을 잘 알았고, 나는 만약에 대비하여 지도를 마련했다. 그는 내 짐의 반 이상을 나눠지고 있었으나 가볍게 걸었다. 길은 이따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줄로 서야할 만큼 좁아졌다. 그는 멀찍이 앞장서서 걷다가 갈림길이 나오는 모퉁이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현지인들조차 드물 만큼 한적한 길이어서 문득 혼자 걷는 느낌이 들곤 했다. 걷는 일정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으므로 천천히 쉬엄쉬엄 걸었다. 비탈을 오르느라 옷에 땀이 차면 고갯마루에 앉아서 쉬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내 귀에 난데없는 전화벨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 소리는 환청임이 분명했다. 한적한 초행길을 묵묵히 오래 걷다보면 환청이 있을 법도 하건만 나는 내 청각이나 정신상태가 정상인지를 의심해 보기도 했다.

 

 

훗날 다른 여행자들을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도 산길을 걷기 시작한 처음 며칠 동안에는 문득 전화벨 소리를 듣는 환청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자동차 소음이나 TV 소음 또는 냉장고 소음을 들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도회지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이며 각종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전화나 자동차나 TV나 냉장고에서 나는 소음과 더불어 일상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사흘을 걷고 난 아침이었던가. 속옷을 갈아입으면서 보니 러닝셔츠가 땀과 기름으로 누렇게 절어 있었다. 냄새도 심했다. 세제를 녹인 물에 푹 삶지 않는 한 아무리 빨아도 깨끗해 질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뱀이 허물을 버리고 가듯 러닝셔츠를 버렸다. 새 러닝셔츠도 1주일 쯤 지난 후에는 버려야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입은 세 번째 러닝셔츠는 1주일 이상 입은 후에도 그다지 더러워지지 않았다. 산촌의 부엌마다 자욱했던 매운 연기 냄새 말고 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버릴 수밖에 없었던 내 러닝셔츠들은 한국에서의 내 섭생과 피로도 그리고 그로 인한 몸 상태가 과연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또한 더 오래 입었음에도 다시 빨아서 입을 만 했던 세 번째 러닝셔츠는 날마다 산길을 걷는 단순한 일상이 사람의 심신을 얼마나 정화하는지를 말해줬다고 믿는다.

 

 

산길에서의 섭생은 주로 쌀밥과 녹두죽, 때로는 옥수수죽과 삶은 감자였다. 채소는 우리나라의 갓배추와 비슷한 과 무를 주로 먹었다. 옥수수 막걸리도 무척 마셨는데, 산중에서는 막걸리가 손님을 대접하는 차와 같은 것이었다. 육식이나 조미료를 곁들이지 않은 단순 소박한 음식과 날마다 걸으며 땀을 많이 흘리고 밤이면 일찌감치 침낭 속에 들어간 결과로 소변과 피가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잊을 만하면 귀에 들렸던 전화벨 환청도 사라졌다. 대신 심신을 안정시키는 그 무엇이 산길을 따라서 발을 통해 스며들어왔다. 그것은 어쩌면 꾸준히 산길을 걷는 데서 찾아지는 몸의 리듬 또는 마음 추스름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걸은 산길은 비탈이 많아서 가끔 고생은 될지라도 거부감이 없는 길이었다. 산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조상 대대로 맨발로 찾아 다져낸, 마치 산들이 스스로 허락한 듯 자연스러운 길이었다. 팍팍한 길은 팍팍한 그대로, 축축한 길은 축축한 그대로 거기 있어야만 하는 길이었다.

 

도회지의 소음 같은 환청은 더 이상 따라 올 수 없는 길이었다.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의 예산을 경쟁 입찰로 따낸 토건회사가 괴물 같은 장비를 투입하여 재빨리 뚫어내는 길과는 차원이 다른 길이었다. 도회지의 빌딩과 아파트에서 혹은 유흥지에서 밤을 낮같이 보내며 술과 고기를 물리도록 먹고 산 사람들은 고통 없이 적응하기 어려운 길이었다.

 

 

수 년 사이에 체중이 10kg가 늘어난 나는 비탈을 오를 때마다 숨을 헐떡이며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느릿느릿 쉬엄쉬엄 꾸준히 걸으면서 적응할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다리에 힘이 붙고 숨이 덜 찼다. 나중에는 심하게 헐떡이면서도 일부러 쉬지 않고 계속 걷기도 했다.

 

구슬 같은 땀방울이 눈앞에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계속 걸었다. 자꾸 그렇게 걷다 보니 조금씩 체력이 늘었다. 낮에는 그렇게 걷고, 밤이면 민가에 들어가 부뚜막 옆 호롱불 아래서 그 집 식구들과 감자 한 솥을 같이 삶아 먹고 일찍 자는 날들이 계속되자 여러 해를 따라 다니던 묵은 피로가 가셨다.

 

피로감 없이 깨어나는 새벽은 얼마나 산뜻했던가. 주인댁이 죽을 쑤기 위해 옥수수 가루를 내느라 맷돌을 돌리며 염불하는 소리에 잠을 깼던 새벽에는 다시 태어난 듯 외경심마저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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