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3월 27일 개막일.

“육군사관학교 주전 골키퍼였던 내가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역사적인 출발을 알리는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시구를 하다니….”

목숨을 건 5·18과 12·12, 그리고 대통령 취임식 때도 이같이 흥분되지는 않았다.

처음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 영부인이 된 이순자 여사가 “이게 꿈이에요”라며 살을 꼬집었지만 한국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를 하는 날 아침 전두환은 “이게 꿈이야 생시야. 내가 프로야구 원년 시구를 하다니”라며 벗겨진 민머리를 쓰다듬었다. 청와대에서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이 열리는 동대문야구장까지는 불과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도 많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지나갈 때는 10여 분 전부터 교통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동대문야구장에 들어서자 꽉 들어찬 관중, 그들이 뿜어내는 열기, 그리고 3군 군악대의 힘찬 연주 등으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동대문야구장 로열박스에서는 徐鐘喆(서종철) 한국야구위원회 초대 총재 등 많은 체육계 인사들이 나와서 전 대통령을 영접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로열박스에 앉아 개막식 전 행사를 바라보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전두환 대통령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3월 27일 개막일에 시구자로 나섰다. 사진 왼쪽부터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동대문야구장 개막전 전두환 대통령, 1989년 광주 개막전 배우 강수연(사진은 2008년 10월 사직구장 준플레이오프서 시구하는 모습), 1996년 잠실구장 개막전 배우 채시라, 2004년 수원야구장 개막전 가수 비, 2006년 잠실구장 개막전 배우 정준호, 2010년 잠실구장 개막전 스케이팅 이상화, 2015년 잠실구장 개막전 AOA 지민, 2015년 사직구장 개막전 고 최동원 어머니 김정자의 시구 모습(사진= 연합뉴스).
전두환 대통령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3월 27일 개막일에 시구자로 나섰다. 사진 왼쪽부터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동대문야구장 개막전 전두환 대통령, 1989년 광주 개막전 배우 강수연(사진은 2008년 10월 사직구장 준플레이오프서 시구하는 모습), 1996년 잠실구장 개막전 배우 채시라, 2004년 수원야구장 개막전 가수 비, 2006년 잠실구장 개막전 배우 정준호, 2010년 잠실구장 개막전 스케이팅 이상화, 2015년 잠실구장 개막전 AOA 지민, 2015년 사직구장 개막전 고 최동원 어머니 김정자의 시구 모습(사진= 연합뉴스).

 

그는 스포츠를 무척 좋아했다.

대구공고 시절에도 공부는 별로 잘하지 못했지만 체력이 뛰어나 체육시간만 되면 무슨 운동이든지 일등을 도맡아 했고, 특히 씨름과 복싱에는 남다른 소질을 보여 아무리 덩치 큰 녀석이라도 감히 그에게 덤비지를 못했다. 복싱 글러브를 목에 걸치고 다니는 허세를 부리기도 했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서는 복싱부와 축구부를 창설해서 두 부(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럭비부 한 팀 주장을 맡은 친구 노태우와 자신은 질적으로 달랐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스포츠는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아주 좋은 모티브였다. 사실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이 선수로 직접 뛰었던 축구를 야구보다 먼저 프로화 하려 했지만 축구인들이 주는 떡도 받아먹지 못하는 바람에 야구를 먼저 프로화한 것이다.

전 대통령은 야구와는 별 인연이 없었다.

그가 자랄 때만 해도 야구는 글러브, 배트 등 비싼 장비를 사야 하기에 부잣집 녀석들이나 하는 운동으로 알고 있었다. 전 대통령은 오늘의 시구를 위해 청와대 境內(경내)에서 몇 차례 연습을 해 봤지만 명색이 ‘스포츠 대통령’이니 멋지게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 있었다.

물론 다른 시구자들처럼 적당히 던지면 타자는 헛스윙을 해 줄 테고, 그러면 심판은 목이 터져라 “스트라이크”를 외칠 테지만, 실제로 타자의 어깨와 무릎 사이를 꽉 차게 통과하는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었다.

스트라이크를 던질 요량에 조급한 마음이 들자 ‘프로축구를 먼저 창단했으면 정말 멋지게 始蹴(시축)을 했을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자 축구인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드디어 장내 아나운서가 “전두환 대통령의 역사적인 시구가 있겠습니다”라고 소개했고, 전 대통령은 의젓하게 마운드로 걸어 올라갔다. 순간 내외 귀빈과 동대문야구장을 가득 채운 만원 관중은 전두환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전 대통령은 구심으로부터 공을 건네받은 후 입에 슬쩍 대더니 군인이 수류탄을 던지는 것과 비슷한 이상한 폼으로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공은 마치 敵陣(적진)에 투하되는 수류탄처럼 포물선을 그리더니 거짓말처럼 정확하게 포수의 미트에 박혔다.

“모두들 엎드려”

전 대통령은 모든 관중이 들으라는 듯이 크게 외치고는 마치 자신이 던진 야구공(수류탄) 파편을 피하기라고 하려는 듯이 마운드 위에서 무릎을 잔뜩 꾸부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전 대통령은 군인 출신 대통령답게 자신이 야구공 던진 것을 수류탄을 투척한 것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7월 17일 대전 한밭운동장에서 펼쳐진 2003 프로야구 올스타전 경기에 앞서 시구를 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스트라이크에 가까운 공을 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故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7월 17일 대전 한밭운동장에서 펼쳐진 2003 프로야구 올스타전 경기에 앞서 시구를 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스트라이크에 가까운 공을 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P.S 2017년 10월 25일 두산 베어스와 기아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구를 했다. 문 대통령은 사회인 야구 투수 정도의 폼으로 던졌다. 문 대통령은 롯데 자이언츠 열렬한 팬이다. 사실 그날 시구자로 예고된 사람은 김응룡 대한소프트볼야구연맹 회장이었는데, 문 대통령이 깜짝 나타나 시구를 했다.

야구경기에서 대통령이 시구를 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박 대통령은 1967년 4월 25일 제1회 대통령배 야구선수권대회에서 파란 모자를 쓰고 시구를 했었다.

프로야구 원년 1982년 3월 27일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야구장에서 개막한 프로야구 개막식 시구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강력한 권력을 발휘하던 전두환 대통령이 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에 이어 정권을 잡은 노태우 대통령의 시구기록은 없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LG 트윈스 대 태평양 돌핀스, 1995년 OB 베어스 대 롯데 자이언츠전 등 2년 연속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7월 17일 프로야구 올스타전 때 시구를 했는데,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스트라이크에 가까운 공을 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삼성 라이온즈 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벌어진 잠실야구장에서 시구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시구를 하지는 않았지만 2011년 9월 잠실야구장에 가족들과 함께 나타나 부인 김윤옥 여사와 ‘키스타임’을 가져 화제가 되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0월 25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시구를 마치고 손인사를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0월 25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시구를 마치고 손인사를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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