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차범근 선수의 기량이 워낙 뛰어나서, 축구인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도 차범근 선수가 세계 축구 최고 무대에서 뛰면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여주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

1976년 9월에 열린 제6회 박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 후반 7분을 남겨 놓고 1대4로 뒤지던 화랑팀의 차범근 선수가 불과 7분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대4 동점을 이뤄냈고, 결국 한국은 브라질의 상파울루 선발팀과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당시 국가대표는 2원 체제로 운영됐다. 1진은 화랑, 2진은 충무팀이었다)

그 후 차범근은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축구 경기에 출전해서 한국이 북한과 공동 금메달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방콕 아시안게임 직후 독일에서 초청장이 날아왔다.

1954년생인 차범근 선수는 1972년 그러니까 18살 때부터 유럽축구를 꿈꾸었다. 그러나 병역의무가 앞으로 가로막았다.

그러다가 6년이 흐른 1978년에야 꿈이 실현돼서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와 가계약을 맺고 독일로 날아갔다.

차범근 선수는 1978년 12월 23일 가계약 상태에서 보쿰 팀과의 경기에 출전해서 몸이 부서져라 뛰어서 결국 그 한 경기로 다름슈타트 팀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차범근 선수는 공군병 신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의 복무기간은 32개월인데, 공군은 공군축구팀의 전력강화를 위해서 국가대표 에이스 차범근 선수를 영입하면서 기초훈련과정 6개월은 수료한 것으로 인정을 해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니까 차범근은 다른 공군병 32개월 복무기간보다 6개월이 짧은 26개월만 복무하면 되도록 하고 입대를 한 것이다.

차범근 선수는 1976년 10월에 입대했기 때문에 1978년 12월 말이면 만기 제대를 할 수 있었다.

차범근 선수는 그렇게 알고, 또 단수 여권 기간 만기도 1979년 1월 5일 이기 때문에 12월 말, 다름슈타트 팀의 휴식기간을 이용해서 귀국을 했다.

그 기간 동안에 제대 신고를 마친 후 다시 독일행 수속을 밟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차범근 선수가 다른 사병보다 6개월 단축복무)를 한다는 약속이 있었다는 것을 축구단에서 공군 상층부까지 알리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당시 주영복 공군참모총장이 엄청 화가 나 있었다. 오히려 차범근 병사가 소속부대를 무단이탈 했다면서 제대를 승낙하지 않았다.

결국 차범근 선수는 참모총장이 제대를 인정하지 않아서 다름슈타트 팀과의 계약은 취소됐다.

또한 분데스리가의 선수등록도 자동적으로 파기되었다. 결국 차범근은 6개월 더 복무를 한 다음 1979년 5월에 제대를 해야 했다.

차 선수는 제대한 후 1979년 6월 말 다시 독일로 갔다. 그때 그의 나이 만 25살 우리 나이로 26살이었다.

차범근은 다름슈타트 팀의 부흐만 감독을 찾아갔지만, 팀의 외국선수 등록이 이미 끝나 있었다.

그래서 퀼른 공원에서 개인연습을 하면서 다시 연락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러던 차에 프랑크푸르트 팀에서 테스트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테스트 끝에 1979년 7월 16일 프랑크푸르트와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 팀에서 24만 마르크 우리 돈으로 1억 원이 넘는 돈이었고, 팀 내 연봉 서열 4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뉴스파격에서 차범근 감독에게 공군복무 시절 잃어버린 6개월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전화를 했다.

 

뉴스파격 ;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 일인데, 원래 복무기간을 6개월 단축해 주기로 하고 공군에 입대 한 거잖아요?

 

차범근 ; , 맞습니다.

 

뉴스파격 ; 그러면 26개월만 복무하면 되는데 왜 32개월 모두 채운 건가요? 다름슈타트와 계약도 파기되고 말이에요, 손해가 막심했잖아요.

 

차범근 ; 글쎄 모르겠어요, 저는 공만 열심히 찼을 뿐이에요.

 

뉴스파격 ; 억울하지 않으세요.

 

차범근 ; 어쩌겠어요.

 

뉴스파격 ; 공군에 이의제기를 할 생각 없으세요?

 

차범근 ; 공소시효가 지났잖아요.

 

뉴스파격 ; 그런 것도 공소시효가 있을까요?

 

차범근 ; 공소시효, ()군에 ()를 제기할 수 있는 (시효) 말이에요.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P.S 공군 사병 복무기간

공군사병의 군 복무기간은 6.25 직후인 1953년 무렵에는 육군, 해병대, 해군과 마찬가지인 36개월이었다.

그 후 김신조 일당이 남한으로 침투한 1968년 1.21사태 이후 3개월이 더 늘어 39개월이 되었다. 그러다가 사병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35개월, 32개월로 줄었다가 1993년에 30개월이 되었다.

공군사병 복무기간은 1994년 28개월, 2003년에 26개월로 점점 줄다가 2011년에 육군과 해병대보다 2개월이 많은 23개월로 정착되어 시행되고 있다.

단, 올림픽에서 금·은·동메달을 따거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경우, 4주일 동안 기초훈련을 받은 다음 체육 분야의 공익근무요원으로 편입되어 34개월 동안 정해진 분야에서 기준에 따라 선수나 지도자로 복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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