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2일 금요일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실내악시리즈는 일종의 음악원정대

11월 22일 금요일 예술의전당 IBK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실내악시리즈> 'The Four Seasons'(사계)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4개의 나라(앙코르까지 더하면 다섯 나라)를 여행하고 온 듯한 일종의 '음악원정대'였다. 첫 곡인 보테시니의 '클라리넷과 더블베이스를 위한 듀오'는 재미있었다. 이탈리아 작곡가답게 명랑한 선율과 악풍에 타란텔라의 부점리듬이 계속 이어져 흥겨웠다. 클라리넷과 더블베이스 거기에 피아노까지 가미되어 아기자기했다. 그런데 음악을 듣고 보다 보니 점점 장신의 흰색으로 염색한 더블베이스 주자와 작지만 호인 같아 보이는 클라리넷티스트의 대비가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의 건달프와 호빗을 연상케 했다. 본인의 체형과 인상만큼이나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와 일치할 수 있는지, 백발의 장신 건달프의 키만큼이나 큰 더블베이스와 푸근하고 우아한 호빗의 클라리넷이 서로 악기 특색만큼 비주얼적인 요소도 충족시킨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효과였다.

비발디의 사계, 독주자로 나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 수석 이지수와 부수석 이유현
비발디의 사계, 독주자로 나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 수석 이지수와 부수석 이유민

가을엔 역시 비올라다. 요크 보웬의 '4대의 비올라를 위한 환상곡, op.41 no1'은 떨어지는 낙엽과 쓸쓸하면서도 적적한 가을, 엘가의 영향을 받은 듯한 기품 있는 보웬의 악풍이 가을의 운치를 더하였다. 치밀한 구성과 풍부한 표현력이 뒷받침된 영국 음악 특유의 고적하면서도 쌉쌀한 맛을 더해준 역작이었다. 적적한 분위기가 일품인 4대의 비올라가 연주하는 독특한 그래서 실황으로 감상하기 힘든 곡을 만추의 가을에 만끽한 보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앙코르로 '탱고'가 나왔다. 보웬의 악풍과는 전혀 맞지 않은 무슨 대중음악 콘서트에 왔는지 알고 열심히 괴성을 질러대어야지 자기 선생님이 돋보이고 응원이라고 여기는 제자들이나 지인들의 곡의 내용과 상관없는 꺅 하는 비명은 여운을 음미하는 감상자의 꿈을 확 깨는 일등공신이다. 탱고보단 좀 더 보웬의 악풍과 연결되는 앙코르를 듣고 싶었지만 함성을 지르는 몇 명의 관객에겐 피아졸라의 신나는 '리베르탱고'가 최고의 화답이 되었을 듯. 덕분에 비올라 4대로 리베르탱고도 처음 감상하고 아르젠티나까지 다녀왔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수석 이지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수석 이지수

앙상블(Ensemble)의 의미는 조화와 일체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의 소리로 일체가 되고 서로의 호흡을 맞춘다는 건 장기간의 단체 연습과 시간을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악단의 단원들로 멤버를 조성하면 그만큼 장점이 크다. 이탈리아의 이 무지치나 캐나디안 브라스 등등의 독자적인 실내악 단체나 앙상블이 전무한 대한민국 음악계 현실에서 오케스트라가 관현악 연주 외에 실내악까지 해준다면 청중 입장에선 감사한 일이다. 물론 같은 직장의 단원들이라 해서 호흡이 더 잘 맞고 다른 멤버들에 비해 연습을 더 많이 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여건은 조성되어 있다. 특히나 지휘자도 없이 현악 앙상블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맞춘다는 건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현의 어택부터 보잉까지, 곡의 처음과 끝이 한목소리로 시작하고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계적인 반복 연습이 요구된다.

비발디의 사계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코리안심포니의 제1바이올린 부수석으로 있는 이유민이,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제1바이올린 수석인 이지수가 독주자로 나선 포맷이었다. 한 사람으로 4계절을 다 연주하는 것이 아닌 이런 분리가 생소했지만 악장을 각각 다른 연주자를 통해 한 작품 안에서 분해해서 비교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가을부터 솔리스트로 나선 이지수는 곡에 대한 소화와 원숙미를 보여주며 굉장히 생기 있는 수확의 기쁨이 넘치는 가을을 연출했다. 앙상블에 종속되는 듯하면서도 끌고 갈 데는 끌고 가고 대등하면서도 여유 있는, 1부의 보웬이 들려준 영국의 가을과는 확연히 다른 반도 국가 이탈리아의 가을이 연상될 정도로 호방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연주회 The Four Seasons의 공식포스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연주회 The Four Seasons의 공식포스터

앙코르는 독일의 바흐였다. 두 대의 바이올린이 현악 오케스트라와 같이 할 수 있는 곡은? 바로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라단조'! 그중에서 기품 있고 바로크 시대 직조적인 대위법 음악의 결정체인 2악장으로 오늘의 실내악 여행이 막을 내렸다. 오케스트라에서와 같이 장대하고 웅장한 거대함은 없지만 평상시 듣지 못한 신선한 실내악 레퍼토리와 만추에 만끽한 비발디의 사계, 거기에 옵션으로 피아졸라와 바흐까지 가미된 '뮤직 투어'를 잘 마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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