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와 이탈리아 파르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정통으로 성악을 전공했지만 대중음악 가수 못지않게 친숙한 대중과의 소통과 접근으로 인지도를 쌓아가며 클래식 음악계에 신선함과 자극을 주고 있는 테너 류정필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Happy Tonight'이 12월 10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 화이트홀에서 열린다.

12월 10일 화요일 오후 7시 30분,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테너 류정필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12월 10일 화요일 오후 7시 30분,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테너 류정필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나이 50을 넘은 세대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과거의 경직된 사회풍토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할 것이다. 그들의 청소년 시기, 음악을 한다고 하면 딴따라라 경시했다. 노래가 좋아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면 음악대학 진학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교육기관에서 요구하고 가르쳐 주는 건 입문 전까진 듣도 보도 못한 이탈리아 칸초네, 아리아, 가곡이었고 그걸 자신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익혀야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더군다나 70-80년대의 류정필이 진학한 서울대 음대에 가기 위해서는 실기보다 공부를 더 중시해서 지금으로 따지면 수능 1-2등급 정도의 실력이 아니면 서울대 성악과 입학이 힘들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도 음악을 전공한다 하면 당연히 베토벤, 쇼팽 류의 클래식이요, 노래도 성악을 해야 제대로 대접받고 고급예술로 우대했다. 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왠지 고급스럽고 멋지고 유럽/미국 사람들의 문화니 당연히 우수할 거다는 사대주의까지 겹쳐 클래식은 전공자들끼리만 통용되었고 정체화가 되면 카르텔이 생성되는 건 필연적이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외국 노래를 공부하고 인정받아야 했다. 대중들이 공감해 주지 못하니 전공생들끼리만 생태계를 형성하여 거기서 남과 차별받기 위해 유학을 통한 학위로 등급을 나누고 대학에서의 취직 후 다시 자기가 걸어왔던 학습체계를 후속세대에게 무비판적으로 전수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행태를 십수 년간 반복하고 있는데 저출산의 학령인구 감소와 클래식 음악의 한계 절감으로 공급자 위주의 클래식 음악이 자연 소멸되고 있는 형국이 도리어 다행일 지경에 이르렀다. 클래식 음악계의 모든 성공의 척도는 오직 취직으로만 좌우되었다. 그러지 못한 사람은 대학과 음악계 언저리에서 기생해야 되고 음악인들 사이에 실력이 아닌 직함으로 갑과 을 관계가 형성되어 음악인이 음악인을 통해 먹고사는 그런 생태계가 구성되어버렸다. 이런 구조, 기득권에 속해 있다면 너무나 편하고 서로 밀고 당기면서 살면 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은 차마 어디 갈 데도 불러주는데도 없으니 양극화만 가중된다. 류정필은 서울대 출신이다. 본인의 인정 유무를 떠나 현 네트워크 안에서 비 서울대 출신보다 무형의 혜택이 알게 모르게 많았을 거니 지금의 행보는 지극히 이단적이다. 굳이 서울대 출신이 가지 않아도 될 길을 가고 있으니 분명 선후배, 동문 스승들에게 백안시 당하고 아웃사이더 취급과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하고 꽉 막힌 기존 성악/음악계를 박차고 나와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면서 자기의 길을 개척하는 자세는 참으로 고무적이다.

음악인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대중의 박수와 갈채, 관심에 굶주린 사람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큰 무대에서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선 관객들 앞에서 멋지게 들려주고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하며 그들의 함성과 박수는 음악인들의 가슴을 고동치게 만든다. 연예인과 똑같은 기질이다. 하나 대중 연예인과 클래식 음악인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클래식 애호 인구의 부재와 시장의 미형성, 결코 좁혀지지 않은 음악의 벽과 그로 인한 불공감으로 야기된 공부하고 노력하고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의 반대급부를 못 얻은 데서 오는 고립성이다. 알아주지 않는다. 아니 모른다. 듣는 사람도 없다. 극소수의 클래식 감상 인구는 최고만 찾고 또한 클래식은 최고가 아니면 기량 차가 너무나 현저하게 드러나 감동의 폭과 깊이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수십 년 동안 한 우물만 파고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며 인정받은 재원도 한국에 들어오면 일거리가 없다. 그러니 서술한 음악인들이 만들어 놓은 땅굴로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평생 공감 받지 못하는 영원한 타자로 좌절하고 소멸해간다. 그래서 백발이 성성한 여자 소프라노든 80이 넘은 원로 작곡가든 나이만 많았지 조금만 칭찬해주고 감상평을 해주면 아이와 같이 좋아하고 어쩔 줄을 모른다. 왜? 막연한 박수와 잘한다는 건성의 대답, 무지에서 오는 무례에서 탈피해 진심으로 자신의 행위에 인정과 칭찬을 받은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칭찬의 게이지는 수시로 충전해야 한다. 오늘의 연주엔 오늘의 칭찬만 적용되고 내일의 연주에는 또 다른 응원과 격려, 칭찬이 필요하기 때문에 평생 음악가들에게는 칭찬의 분무기로 애정을 뿌려대야 한다.

그래서 류정필은 차라리 솔직한 거다. 대중의 사랑과 갈채, 인기를 얻고 싶고 그들과 호흡하면서 송가인이나 BTS, 최백호 같은 유명한 가수가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리며 보란 듯이 클래식 음악계의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것이다. 또한 우리 음악계도 류정필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있어야 한다.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에서의 미의 느끼고 받아들이고 판단할 사람은 한 줌도 안 된다. 미의 기준이 없이 대중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다 좋고 맹목적이다. '내용'이 아닌 '사람'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 추종한다. 류정필 같은 클래식을 배우고 정통으로 성악을 공부한 인재들이 '투우사의 노래', '나는 거리의 만물박사', '축배의 노래' 등의 관습에 젖은, 근시안적인 인기에 영합한 맨날 아는 노래 타령 제치고 위대한 클래식 명곡들을 소개하고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해준다면 클래식 음악 인구가 늘어나고 지경도 넓어지지 않을까? 예술성으로 좌지우지되는 게 아닌 상업성과 대중성, 포퓰리즘에 만연한 몇몇의 스타플레이어 인물 주도로 움직이는 우리 사회이기 때문에 류정필 같은 가수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를 통해 기존의 플랫폼이 아닌 새로운 문화 플랫폼을 창출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류정필은 정통이라는 범주에 담아두기에는 크로스오버라고 하기엔 너무 협소하다. 그런 가수, 테너 류정필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12월 10일 화요일 서초동 화이트홀이다. 류정필이 일개 가수를 뛰어넘어 마치 BTS가 대중음악 콘서트의 암표를 근절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가듯이 우리 클래식 음악계의 그런 존재와 역할을 해나가는 선도자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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