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덴호(Lake Constance)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실레는 브레겐츠역으로 가면서 호숫가에 서 있는 작은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았다. 작고 앙상한 나무에 그는 마음을 빼앗겼다. 작은 나무는 살짝 굽은 아랫부분에 버팀목을 대고 서 있었다. 나무가 달고 있는 몇 개의 잎은 시들기 직전의 연녹색으로 하늘거렸고, 건너편 산은 투명한 초록보라빛으로 저물고 있었다. 옅은 그 색감에 실레는 건조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보덴호의 작은 나무 한 그루가 그에게 새로운 색감을 주었다.

실레는 초겨울 바람이 몰아치는 주둔지의 전원을 걸어 다니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생명과 죽음을 보곤 했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풍경의 겉과 밖으로 배접되어 있었다.
실레는 초겨울 바람이 몰아치는 주둔지의 전원을 걸어 다니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생명과 죽음을 보곤 했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풍경의 겉과 밖으로 배접되어 있었다.

그가 지난해 그린 <가을나무>는 엷은 회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비스듬하게 서 있는 모양이었다. 모서리 땅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는 색이 담담하고 어두웠다. 나무들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 나무버팀목과 대기의 색깔 등이 모두 하나로 어울려 늦가을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그림이었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풍경의 겉과 밖으로 배접되어 있었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에 생선가시 걸림 같은 것이 남아있던 실레는 다시 판지에 유화로 <사나운 대기 속의 가을나무>를 그렸다. 나무는 정사각형의 화폭 속에서 기묘한 형상으로 서 있다. 사방으로 꼬이고 비틀려 있어서 보는 이를 불편하게 했다. 이파리 하나 달지 않은 가지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구릉은 바람 속에서 해체돼 버렸고 땅 위에 홀로선 나무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잿빛과 갈색이 흘러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약한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사방으로 휘어지고 뻗치고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보덴호의 작은 나무>에서 실레는 새로운 색감을 얻었다.

'사나운 대기 속의 가을나무'에서 나무는 정사각형 화폭 속에서 기묘한 형상으로 서 있다. 사방으로 꼬이고 비틀려 있어서 보는 이를 불편하게 했다.
'사나운 대기 속의 가을나무'에서 나무는 정사각형 화폭 속에서 기묘한 형상으로 서 있다. 사방으로 꼬이고 비틀려 있어서 보는 이를 불편하게 했다.

스물다섯에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실레는 결혼을 하고 사흘 만에 징집되었다. 군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점차 야위어진다. 이미 유럽에서는 알아주는 화가였지만 군대에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아내와의 사이도 점점 나빠져 간다. 아내는 실레가 여자 모델을 세우는 것을 질투했다. 실레는 자신이 훈련받는 동안 아내가 옛날 남자동창생을 만났다는 것을 알고 불안해했다. 어느날 실레는 외박을 나갔다가 늦게 귀대했다. 외출 외박이 금지명령이 내려오고, 근무 성적이 안 좋아 전방으로 배치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아내는 면회도 오지 않았다. 실레는 아내가 자기를 버릴까봐 바짝 마르고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갔다.

그때 한 장교가 그의 실력을 알아보고 보급창고에서 그림을 그리게 해줬다. 일이 없으면 야외 스케치를 해도 좋다고 허락해줬다. 실레는 주둔지의 전원을 걸어 다니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생명과 죽음을 보곤 했다. 잔뜩 흐린 날씨에 무거운 먹구름이 하늘 가득 사방에 퍼져있다. 그는 말테(*릴케 <말테의 수기>의 주인공)의 말에 동의했다. 말테는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며 썼다. ‘사람은 무릇 기다려야 한다’고, ‘평생을 두고 꿀벌처럼 꿀을 모아 의미를 모아들이는 사람이라야 생의 끝에 가서 열줄 정도의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실레는 말테의 말에 동의했다.
실레는 말테의 말에 동의했다. "사람은 무릇 기다려야 한다"고, "평생을 두고 꿀벌처럼 꿀을 모아 의미를 모아들이는 사람이라야 생의 끝에 가서 열줄 정도의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실레는 초겨울 바람이 몰아치는 주둔지의 전원을 걸어 다니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생명과 죽음을 보곤 했다. 아내는 그를 여전히 불신했고, 실레는 얼굴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전쟁은 여전히 사방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뮐링은 비전투지역이지만 전쟁의 먹구름이 비켜가지는 않았다. 잔뜩 흐린 날씨에 무거운 먹구름이 하늘 가득 사방에 퍼져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나무들이 경고를 보냈다. 오두막집이 미미한 소리를 냈고, 나무들이 윙윙 거렸다. 새들이 나뭇잎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실레는 봄이 되자 상관의 배려 덕분에 틈이 나는 대로 스케치를 할 수 있게 됐다. 그의 나무 그림 시리즈는 <네 그루의 나무>로 이어졌다. 뮐링에는 모델도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아내 에디트의 질투가 심했다. 실레는 봄부터 가을까지 주둔지의 산과 하늘을 여러 차례 스케치했다. 그는 첫 스케치를 하러 야외로 나갈 때 에디트에게 함께 가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실레를 따라온 그녀는 남편이 오랫동안 나무를 스케치하자 지루해서 중간에 혼자 돌아오려고 했다. 그녀가 집으로 혼자 돌아가도 괜찮겠느냐고 물었을 때 스케치에 몰두하고 있던 실레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에디트는 홀로 집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조금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남편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에디트는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달 후 실레가 다시 스케치를 나갈 때 에디트는 로드를 데리고 갔다. 실레는 스케치를 하고 에디트는 온종일 개와 놀다가 돌아왔다. 실레는 늦여름에 접어들며 부쩍 이 그림에 열성을 보였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습작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에디트는 어느 날 지상의 모습이 화가를 통해 화폭 위에서 변이되는 경이로운 창조의 세계를 보았다. 밑그림 속의 나무들이 무성하게 가지를 뻗쳐 올리고, 푸른 잎들은 점점 색깔이 짙어지더니 붉은 색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남편은 혼자 중얼거리고, 끼니를 거르고, 내면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다 쓰러져 잠들곤 했다. 여러 번의 현장 탐방을 거쳐 나무들이 변해가는 것을 화폭에 옮겨내는 마력, 오랜 사색과 휴지. 색을 뒤섞을 때의 혼란스러움, 뒤섞은 색을 칠하지 않고 유보해놓고 있는 절제. 그런 것을 통해 에디트는 캔버스 앞에 선 화가의 천진스러움과 집요함을 동시에 보았다. 어떤 순간에 화가는 단칼에 사자의 멱을 따듯 강력하게 붓질을 하며 공격을 하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그리기를 멈추고 치욕스러움인지 자랑스러움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침묵 속에 빠져들곤 했다. 실레는 그렇게 밤새도록 채색을 하고 나이프로 긁다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인 후 벌떡 일어나 주둔부대로 가곤 했다.

'네 그루의 나무'는 부드럽게 달리는 몇 겹의 검은 구릉과 산의 리듬이 하늘로 이어지는 배경을 갖고 있었다. 연한 회청색과 잿빛이 감도는 하늘은 단조의 음계로 이루어진 듯했다. 구름 사이로 한줄기 푸른 바람이 일고 있었다.
'네 그루의 나무'는 부드럽게 달리는 몇 겹의 검은 구릉과 산의 리듬이 하늘로 이어지는 배경을 갖고 있었다. 연한 회청색과 잿빛이 감도는 하늘은 단조의 음계로 이루어진 듯했다. 구름 사이로 한줄기 푸른 바람이 일고 있었다.

에디트는 남편이 <네 그루의 나무>를 다 그린 늦가을 어느 날 방안으로 들어와서 와서 침대 위에 쓰러지던 새벽을 잊지 못한다. 색을 입히고, 마르기를 기다리고, 덧칠을 하고, 문지르고, 긁어내면서, 그림을 그리는 고통 때문인지, 군생활의 피로감 때문인지 간간이 신음을 내뱉으며 그림을 그리던 화가는 발을 절룩거리며 아내에게로 왔다. 잠에서 깨어난 여자는 화가에게 왜 발을 저느냐고 물어보았다. 화가는 손과 발에서 쥐가 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는지 찡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짧은 말을 뱉어냈다. 아내는 침대로 와서 쓰러진 남자가 수년간에 걸친 전투에서 다쳐 집으로 돌아온 부상병처럼 보였다.

에디트는 얼른 일어나 화실로 가 남편이 그린 그림을 살펴보았다. 아랫부분에 서명까지 넣어 완성된 <네 그루의 나무>는 부드럽게 달리는 몇 겹의 검은 구릉과 산의 리듬이 하늘로 이어지는 배경을 갖고 있었다. 연한 회청색과 잿빛이 감도는 하늘은 단조의 음계로 이루어진 듯했다. 구름 사이로 한줄기 푸른 바람이 일고 있었다. 네 그루 나무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란히 버티고 서서 각기 고유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색감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건조하고, 불투명하고, 맑았다. 남편이 과거에 그린 나무들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지금까지 실레의 나무들은 지독하게 음울했다. 그가 그린 나무들에서는 그의 고적한 심성이 배어있었다. <네 그루의 나무>도 쓸쓸하기는 하지만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나무들이 고통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따뜻한 색감을 얻어 물결치고 있었다.

내실로 돌아온 아내는 절망한 듯 침대 위에 쓰러진 남편의 눈가에 물기가 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남편의 추락에 당황한 여자는 그의 이마를 짚어주고 얼굴에 묻은 물감과 눈의 물기를 닦아주었다. 그런 후 자신의 젖을 꺼내 환자의 입에 물려주었다. 새벽의 으스스함 속에서 오랜 허기에 시달린 듯 환자는 젖을 입에 물고 몸을 떨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여자는 환자에게 자신이 떠나가지 않고 그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며 그의 옷가지를 벗겨냈다. 환자는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새벽의 당황스런 사태에 직면한 여자는 자신의 가슴이 주는 치유력에 스스로 놀라 오랜 냉기를 버리고 전신으로 화가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오랜 의심과 불감의 잠자리에서 깨어난 아내는 자신의 몸 위에 쓰러진 남편의 전율을 보면서 오래 끙끙대며 작업을 마친 예술가의 몸살기운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그림 그리기를 마친 직후의 한 순간이 얼마나 폭발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 순간 그녀는 남자와 여자의 섞임이 예술 창조와 얼마나 비슷하게 고통스럽고 격렬한 것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여자는 그 깨달음에 항복하여 소리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불감증에서 치유 받았음을 선언했다. 그녀는 남편에게로 올라가 누어있는 화가의 앙상한 갈비뼈와 빈약한 가슴, 쪼그라든 뱃가죽, 여러 주둔지를 오가며 얻은 얼굴의 주름살 같은 것을 세밀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남편의 내부에 오랜 상심과 고통이 자리했다는 것을 느끼며 그의 모든 아픔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에곤, 이제 저는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에디트, 진실로 그 오랜 고통에서 깨어난 거요?”
“에곤, 이제 당신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됐어요.”

화가와 아내는 하나의 작품을 통해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차가운 강을 건넜다. 사랑에 불타오른 유럽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북부 유럽의 문호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가 한 손은 사랑을 나누는데 사용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통과 기쁨이 결합된 순간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했듯, 실레도 한 손으로 사랑을 나누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들이 나누는 사랑을 종이 위에 그리는 새로운 학습을 시작했다. 검정 목탄으로 그린 사랑의 크로키에는, 표정까지 다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이 세세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힘들어했던 아내의 얼굴에 적극적인 수용성이 넘치고 마스크와 같이 무표정했던 남편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들어찬 그림이 나왔다. <네 그루의 나무>를 그린 이후 실레의 그림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최고의 구스타프 클림트 이후 최고의 화가로 올라섰다.

"곧장 그쪽으로 가서 그림 앞에 서는 순간 눈물이 뚝뚝 쏟아졌다. 그 때 나는 젊은 나이였고, 너무 일찍 절망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도판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사이즈로 본 실레의 그림은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절망을 대면하는 것과 같았다.”
"곧장 그쪽으로 가서 그림 앞에 서는 순간 눈물이 뚝뚝 쏟아졌다. 그 때 나는 젊은 나이였고, 너무 일찍 절망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도판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사이즈로 본 실레의 그림은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절망을 대면하는 것과 같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미국의 록그룹 레이첼스가 만든 실내악 ‘뮤직 포 에곤실레’의 앨범 재킷에는 ‘가을나무’를 표지그림을 실었다. 그 재킷의 실린 해설에 한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뮌헨 피나코테크였을 것이다. 인상주의와 다리파의 그림이 쫙 걸려 있는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20m쯤 되는 건너편에 있는 그림이 눈에 띄었다. 에곤 실레의 그림이었다. 곧장 그쪽으로 가서 그림 앞에 서는 순간 눈물이 뚝뚝 쏟아졌다. 그 때 나는 젊은 나이였고, 너무 일찍 절망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도판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사이즈로 본 실레의 그림은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절망을 대면하는 것과 같았다.”

소멸하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던 실레는 <네 그루의 나무> 이후 새로운 생명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유럽의 중요화가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인물화에 웃고 있는 사람을 그린 그림은 없다. 생전에 그를 찍은 사진 중에서도 웃고 있는 모습은 없다. 그의 작품과 삶에는 미소가 없었다. 그는 서른을 못 채우고 세상을 떴다. (*)

임순만 소설가·언론인(전 국민일보 편집인·편집국장)


화가와 아내는 하나의 작품을 통해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차가운 강을 건넜다. 실레도 한 손으로 사랑을 나누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들이 나누는 사랑을 종이 위에 그리는 새로운 학습을 시작했다. The Family, 1918 by Egon Schiele
화가와 아내는 하나의 작품을 통해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차가운 강을 건넜다. 실레도 한 손으로 사랑을 나누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들이 나누는 사랑을 종이 위에 그리는 새로운 학습을 시작했다. The Family, 1918 by Egon Schiele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

오스트리아 화가. 8년제 중·고교(김나지움)에서 낙제하고 중부유럽 최고의 미술대학인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20대 후반에 오스트리아 최고의 화가로 올라섰으나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기 3일전 28세의 군인으로 숨졌다. 그 후 실레와 같은 해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 지원했다가 낙방한 히틀러에 의해 ‘퇴폐화가’로 몰려 미술사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사후 50년경부터 뉴욕에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해 날이 갈수록 재평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실레는 같은 해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 지원했다가 낙방한 히틀러에 의해 ‘퇴폐화가’로 몰려 미술사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사후 50년경부터 뉴욕에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해 날이 갈수록 재평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소멸하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던 에곤 실레는 <네 그루의 나무> 이후 새로운 생명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유럽의 중요화가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인물화에 웃고 있는 사람을 그린 그림은 없다. 생전에 그를 찍은 사진 중에서도 웃고 있는 모습은 없다. 그의 작품과 삶에는 미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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